기사 메일전송
[단독 인터뷰] 진 커밍스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것
  • NNP=홍성구 대표기자
  • 등록 2026-04-22 10:00:45
기사수정
  • 뉴스앤포스트(NNP) 특집
  • 신원 비공개로 오해 받은 부분 있어
  • 본명, 직업, 이력 등 상세 공개


페이스북에서 칼럼니스트로 활약하는 진 커밍스의 신분 논란이 불거지자, 본인은 뉴스앤포스트와 통화하고 사실 관계를 확인시켜 줬다. 오른쪽 박스사진은 호남일보 방문 당시 보도 내용. [사진=진 커밍스 본인 제공]

지난해 혜성처럼 등장한 재미 컬럼니스트 진 커밍스(Jean Cummings)에 대한 허위 주장이 유포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그녀가 "남의 이름을 사칭한 인물" "허구의 인물" "가짜"라는 등의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뉴스앤포스트는 커밍스와 두 차례 전화 인터뷰를 갖고, 왜 그녀가 자신의 신분 노출을 제한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동안 어떤 활동을 했었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큰 오해는 그녀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영어명 Jean Cummings가 발음은 비슷하지만 스펠링이 다른 Jeanne Cummings라는 인물이 있기 때문이다.


Jeanne Cummings와는 다른 인물


Jeanne Cummings는 1989년부터 백악관 특파원을 지낸 정치 저널리스트이자 칼럼니스트로, PBS 방송, AJC(애틀랜타 저널-컨스티튜션), 월스트리트저널, 블룸버그 뉴스, 폴리티코 등에 속한 워싱턴 특파원으로 활동했다.


그녀와 달리 한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던 칼럼니스트 Jean Cummings는 과거 워싱턴 한인사회에서 언론계에 몸담았던 인물이자 다양한 사업체를 운영했던 사업가 출신으로, 현재는 정부 컨트랙트를 수행하는 민간 기업에서 정치, 외교, 안보 분야 백엔드 분석가로 근무하고 있다.


그녀의 직업 특성상, 회사에서는 구체적인 업무관련 내용과 민감한 개인정보에 관해 외부 노출을 제한하고 있다. 정부 기관은 아니지만 정부와 계약을 맺는 업체에 속한 분석가로 활동하기 때문에, 개인의 활동이 회사 및 회사와 계약을 맺은 정부 기관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인 셈이다.


이 때문에 그녀는 회사 지침에 따라 페이스북과 엑스의 프로필 사진을 AI 합성 사진으로 교체하고, 되도록 개인 신분 노출을 자제하고 있다.


진 커밍스는 자신이 백악관 특파원을 지냈다거나 미국 정부 소속이라고 언급한 일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와 그에 대한 '역펙트체크' 때문에 본의아니게 남의 이름을 "사칭"하는 "가짜" 취급을 받게 된 점을 속상해 했다.


뉴스앤포스트는 진 커밍스 본인으로부터 제공받은 여러 사진과 서류 사본 등을 통해 그녀의 신분과 경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몇몇 워싱턴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인사들에 문의한 결과, 그녀가 실제로 워싱턴 한인사회에서 오랫동안 언론사를 포함한 여러 사업에서 활동했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20대 초반이던 1990년에 미국으로 온 커밍스는 1991~1992년 필라델피아 소재 동아일보 지사에서 근무한 바 있다. 1993년 워싱턴으로 이주해 매릴랜드 볼티모어 채널13을 거쳐, "선데이타임즈" 편집국장(1994~1996), "주간워싱톤(The Korean Weekly)" 사업국장(1996~2000)을 역임했고, 2000년부터는 주간워싱톤의 발행인으로 활동했다.


주간워싱톤서 한국명 박진현으로 활동


여기에서 또 하나의 오해가 이름 때문에 발생한다. 주간워싱톤에서 활동할 당시 한국명 '박진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커밍스는 뉴스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당시에는 한국어로 된 매체였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한국식 이름이 더 좋겠다는 생각에서 한국 이름을 썼다고 설명했다. 또한 당시 가족이나 미국 지인들과는 한국어 발음이 어려워 '유리'(Yuri)라는 애칭도 사용했다고 그녀는 밝혔다.


2006년에 워싱톤지구 한인연합회와 미주한인재단이 공동을 발간한 "워싱턴지역 한인사 1983~2005" 209쪽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주간 워싱턴은 1991년에 송현을 발행인으로 창간되어 10년간, 이후 박진현이 인수 4년간 발행하다, 2004년 10월에 코리아 포스트와 워싱턴 중앙일보 출신의 현 발행인인 이종성이 인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커밍스는 주간 워싱턴을 발행하던 기간인 2003년에 백악관, 미국 정부기관, 포춘500 기업 등에 한국 및 아시아 정세를 영어로 전달하는 워싱턴 지역 최초의 영자신문 "The Asia Post"를 창간했다.


"The Asia Post"는 미국 정책 연구기관의 자료로 채택되기도 했고, 창간 당시에는 비즈니스 저널로부터 단독 인터뷰를 받는 등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이 주간지는 2006년까지 발행됐다.


미국 시민권자인 그녀는 이때서야 비로소 자신의 영문 이름인 '진 커밍스(Jean Cummings)'를 발행인으로 표기하기 시작했다.


2003~2006년 발행된 'The Asia Post". 오른쪽은 명단에 진 커밍스가 발행인으로 표시돼 있다. 사진속 눈부분은 본인 요청에 따라 가림 처리했다. [사진=진 커밍스 본인 제공]

커밍스는 언론계에 몸담고 있는 사이에 여러 사업체를 운영했다. 그녀는 뉴스앤포스트에 건설(Class A Contractor), 인테리어, 광고, 식당 등 약 7개의 사업체를 운영했다고 밝혔다. 당시 신문사 재정의 안정성을 위해 여러 회사를 신문과는 별개로 투자해서 운영했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그녀는 Yong Construction과 Cedarland Construction이라는 건설회사를 운영하면서 버지니아 프린스 윌리엄 카운티 지역에서 다수의 상업용 건물 신축 공사를 수행했다. 또한 정부 컨트트랙터로 카운티 일을 수행했고, 디어파크 워터 컴퍼니, 네슬레 유통센터 프로젝트와 관련해 시설 재구축 공사에서 엔지니어링 기반 공사 감독 및 검사 용역 계약 등을 수주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업을 통해 커밍스는 다양한 주류사회 정재계 인사들과 공무원 등의 넓은 인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건설 관련 사업체를 줄여가면서 컨설팅 회사로 전환했고, 그때부터 기존에 맺은 인맥들과 다시 연결되면서 투자 컨설팅과 정치분석 컨설팅 분야로 자연스럽게 넘어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녀는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2016년부터 작년까지 '제네시스 컨설팅(Jenesis Consulting)'과 '진 커밍스 컨설팅'이라는 이름으로 정치 컨설턴트 및 정치 분석가로 활동해 왔다.


신문 발행 외에도  사업가, 자문위원 등으로 활약


한편, 커밍스는 발행인으로 활동하는 동안 다양한 부대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여러 단체에서 자문역할을 맡기도 했고, 육군 및 예비군과 ROTC 모집 지원 활동을 통해 다수의 한국계 청소년들의 입대를 도왔고 그로 인해 육군부(Department of the Army)로부터 감사장도 수차례 받았다.


아울러 전라남도 해외투자유치 자문위원, 뉴욕 크튀르 패션쇼(New York Couture Fashion Show) 인터내셔널 디렉터, 솔리스트 앙상블의 첫 케네디센터(Kennedy Center) 공연 주최 등의 활동은 사진과 프로그램 책자, 기사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2001년 7월, 솔리스트앙상블의 케네디센터 공연을 주최했을 당시 진 커밍스(박진현) 발행인 모습(왼쪽)과 프로그램에 실린 인사말(오른쪽). [사진=진 커밍스 본인 제공]

그녀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취임식 참석, 마크 워너(Mark Warner,민주)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 활동 취재, 탐 데이비스(Tom Davis,공화·버지니아) 당시 연방하원의원 단독 인터뷰, AIPAC 정책 컨퍼런스 취재, 브루킹스 연구소 사반 센터 포럼 취재,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 컨퍼런스 취재 등 다양한 정치인 인터뷰 및 정책 관련 현장을 취재하기도 했다.


2000년 당시 연방하원의원이던 탐 데이비스(Tom Davis,공화·버지니아)와 진 커밍스 발행인이 단독 인터뷰한 기사가 주간워싱톤에 실렸다. [사진=진 커밍스 본인 제공]

2000년대초 화려한 활약상을 펼쳤던 커밍스는 자서전적인 간증책을 출간하기도 했으나, 2012년 이후 오랫동안 SNS에서 떨어져 있었다.


커밍스가 다시 페이스북으로 돌아온 건 2025년의 일이다. 새로운 회사 업무와 관련한 이슈도 있었지만, 소셜미디어 계정들을 정리하고 과거 썼던 글들을 저장해두려는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그녀의 눈에 한국의 상황이 들어오면서 커밍스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뉴스앤포스트에 당시 한국 언론이 트럼프와 미국 소식에 대해 너무 잘못된 보도를 하고 있어서 화가 날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진실이 뭔지 제대로 알려줘야겠다는 마음으로 다시 쓰기 시작한 그녀의 페이스북 글들은 얼마지나지 않아 수많은 보수층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최근 한국에서는 보수층 내부에서의 갈등이 지나치게 깊어져 우려를 낳고 있다. 비판, 비난, 공격의 경계가 무너져버린 모습이 실망스럽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때 마치 영웅처럼 여겨졌던 인사가 잠시 후 오해를 사고 비판을 받고 모함을 당해 떨어져나가고, 그 뒤로 또 다른 인물이 영웅처럼 등장하고, 또다시 그에 대한 공격이 일어나는 이 악순환이 지난 1년 5개월 사이에 몇 번이나 있었던가 되돌아보게 된다.


더이상 프레임화 시키지 말길...


커밍스는 뉴스앤포스트에 보내온 별도의 이메일에서 "본인은 SNS상에서 개인의 안전과 사생활 보호를 위해 신상 정보를 제한적으로 공개할 권리가 있으며, 이는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당연한 권리"라고 지적하고, "그럼에도 저의 신원 비공개라는 이유만으로 '가짜' '사칭' 등의 터무니없는 프레임을 씌워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는 중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미국에는 익명으로 자신의 이름과 경력을 노출하지 않고도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크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많고 자연스러운 문화"라며 "더욱이 SNS 활동은 공직자가 아닌 이상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인데 이걸 가지고 마치 언론의 보도처럼 여기거나 정부의 발표로 오해하거나 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엔추파도스(Enchufados) 열풍이 불어닦친 이후, 한국내 보수층에는 서로에 대한 불신감이 팽배해졌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인플루언서들에 대한 검증은 필요하고 중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정확하지 않은 '카더라' 수준의 정보로 모함하는 행위는 반드시 경계해야 할 암초다.


진 커밍스라는 인물을 둘러싼 이번 논란은 결국 보수진영 내 만연한 불신감이 얼마나 위험한 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뭉치면 산다'는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슬로건 아래 보수대통합을 추구해야 할 한국 보수진영에 교훈이 될수 있을지 주목된다.


미국 NNP=홍성구 대표기자 / 본지 특약 NNP info@newsandpost.com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0
감동이에요
0
정기구독배너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