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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학의 전라도에서] 5·18 가짜유공자 이석기를 돌아보며
  • 정재학 시인
  • 등록 2026-05-13 15:3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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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5·18이 돌아옵니다. 지금 민주당은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들이 정권을 잡은 이상, 5·18 유공자 속으로 무수히 많은 가짜유공자를 들이밀 것입니다. 이마빡에 민주당 간판 붙인 놈들은 대부분 유공자가 되기를 희망할 것이고, 광주시는 곧 8차 유공자 발표가 있을 겁니다. 이게 코미디인지, 환장할 슬픔인지는 여러분께서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필자 주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 좌익을 생각할 때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지난날 통진당 이석기라는 주사파 하나가 수면 위에 떠올랐다고 해서, 그것이 빙산의 전부라고 믿을 사람은 없다는 것. 필자는 대한민국 좌익의 뿌리와 그 후손들에 대한 추적에서 이를 확신하고 있었다.

 

민혁당을 만든 김영환은 북한 체제에 대해 회의를 품고 민혁당을 자기 손으로 해체했다. 그러나 이 해체를 반대해 온 인물들이 살아남아 경기동부연합을 만들었다. 김영환은 대한민국 내 김일성 일가를 추종하는 주사파가 약 30만에 이른다고 추정하고 있었다.

 

김영환이 간과한 ‘남로당’의 종횡무진 암약  


그 자리에서 필자는 김영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바 있다.

 

“주사파 외에 김일성 노선을 따르는 좌익이 있습니까? 있다면, 그 규모는 얼마나 됩니까?”

 

그러나 김영환은 주사파 외에 다른 좌익들과의 접촉은 없었던 듯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필자가 김영환과 만났을 때는, 여순반란사건에서부터 빨치산 토벌 전반에 이르는 자료를 이미 살펴보았고, 그리고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호남과 영남 일대에 얼마나 많은 좌익들이 몸을 숨기고 있었는가를 파악하고 있을 때였다. 

 

텔런트 문근영의 조부 류낙진 같은 인물은 백선엽 장군의 토벌작전에서 항복하고 나온 지리산빨치산이었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김영환은 그저 순수하게 나타난 학구적인 주사파였을 뿐 대한민국 좌익의 그 뿌리가 종횡으로 얼마나 엮어져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남로당 역사를 공부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필자의 고향은 영광군 불갑산에서 가까운 전북 고창이다. 이곳도 빨치산의 피해에서 무사할 수 없어 많은 피해를 입었다. 영광군 불갑면 불갑산에는 빨치산 전남북 관할 하에 있던 제5지구 불갑지구당이 있었다. 당시 불갑지구당 위원장은 김용우였으며 불갑지구 빨치산사령관은 박정현으로 두 사람은 구빨치 출신이었다. 

 

당시 불갑산에 모인 세력은 함평군당·영광군당·장성군당의 일부, 목포시당 일부, 무안군당 일부, 완도·진도·서나주 그리고 인근 섬 지역 등이었다. 

 

그 당시 불갑산에는 약 2500명 정도가 들어왔다고 한다. 그리고 무장투쟁을 위한 훈련장은 용천사 앞마당에 있었으며 뒷산에는 군량미를 확보해 정미할 수 있는 시설 등을 마련해, 불갑지구대의 생활근거지를 구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변 사람들이나 당시 그곳에서 살아나온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다수가 좌익활동가를 추종하는 무장세력들이었으며, 일부는 좌익동조 성향의 민간인들이었다고 한다.

 

사라진 2500명의 빨치산,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당시 한국 정부는 산악지대를 비롯한 전국 각지의 공산주의자들을 소탕하기 위해 1950년 10월2일 경남 삼랑진에서 육군 제11사단을 창설했다. 사단장은 최덕신 준장이었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11사단 20연대는 1950년 10월15일 광주여자중학교에 본부를 두고 예하 1대대는 담양지구 소탕전에, 2대대는 장성과 함평지구 소탕전에, 3대대는 2대대의 일부 중대와 함께 나주지역 토벌작전에 투입됐다. 이와 같은 작전구도로 이른바 ‘대보름작전’이 전개됐다.

 

이 ‘대보름작전’으로 불갑산 일대의 빨치산들은 거의 소탕되었고, 나머지 세력은 군산을 향해 나아갔다. (이태의 ‘남부군’에서도 그의 여자 친구는 군산으로 간다는 전언을 선요원에게 전한 바 있다.)

 

필자의 고향 군유리에도 토벌군이 들이닥쳤다. 11사단 20연대 3대대 6중대 병력이었다. 국군은 마을 사람들을 모두 마을 앞 논으로 모아 놓았고, 빨치산을 추적 중인 국군에게 피해가 생기면 모두 사살할 것이라는 엄포를 놓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빨치산들은 교전을 포기하고 도망치고 있었고, 우리 조부모님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모두 무사하였다. 그리고 국군은 공음면을 지나 해리 상하, 심원으로 들어갔다.

 

빨치산 후퇴 시에 학살 대상자로 지목되어 끌려가 고초를 당하시던 아버님의 증언으로는 상당히 많은 수가 군산 방향으로 간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국군의 행적엔 심원까지가 끝이었다. 

 

한때 불갑산 용천사를 중심으로 2만의 동조자가 모여들어, 심지어 인민화폐를 쓸 정도였다는 소문과는 전혀 다른 결과였다. 사살자도 그 규모가 수백 명 정도로 작았다. 2500명이라는 무장 빨치산, 또 그 몇 배나 되는 좌익성향의 민간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제2의 군경 토벌로 참된 대한민국 건설해야 


답은 하나다. 그들은 정체를 숨기고 민간이나 절로 숨어들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 동네 사람들을 죽창으로 죽이고, 산 채로 생매장까지 시키던 빨치산들. 그리고 좌익성향의 민간인들이 모두 감쪽같이 사라진 그 사실에서 우리는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해야 한다.

 

이석기 배면(背面)에 잠재하고 있던, 범민련 소속 오종렬 같은 빨치산의 후손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를 살펴보면,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석기는 빙산의 일각이다. 

 

이제 우리는 민주당과 좌파로 일컬어지는 그 전부를 대상으로 우리 시대의 적색을 찾아 밝혀야 한다. 우선 이적단체 5개(민자통, 범민련, 연방통추 등)와 지난날 이석기 체포동의안에 기권, 반대한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과 그동안 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폐지를 외치던 종교계와 교육계, 농민단체가 그 대상이다.

 

이석기는 5·18 유공자가 되어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5·18에는 반역세력들이 무수히 몰려 있다. 5·18이 좌익들의 온상지로 변질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건을 계기로, 이제 다시 ‘군경의 토벌’을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한민국 애국세력은 대동단결해야 한다. 그들이 전에 군산으로, 이북으로 도망치던 것처럼 그리하여 어느 순간 흔적을 감출 때까지 토벌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 끝은 우리가 참된 대한민국을 건설하고, 세계를 향해 웅비해 나갈 때까지다.

 




◆ 정재학 시인

 

시인, 국가유공자, 칼럼니스트, 박정희 대통령 홍보위원, 전라도에서 36년 교직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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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2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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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6-05-13 18:07:48

    이석기가 5.18 유공자라는건 5.18이 어떤건지 한마디로 대변한다. 물론 일부이겠지만. 흑암의 고을 광주. 어쩌다... ㅠㅜ 혹여 자유 대한민국이 무너진다면 1등 공신들이 이쪽 동네 종자들. 난 이 동네 쳐다보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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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6-05-13 16:05:39

    이석기는 국민들이 다아는 간첩넘인데
    국가유공자로 변신했네
    뻔뻔한 간첩넘들이 국민혈세로 배불리다 설사나해라 감옥에 쳐넣어야됨
    새 정부로 거듭나서 간첩넘들 무기징역이나 사형시켜야함 분단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안보에 무심하고 안일했다 타락한 보수당도 버리자
    간첩넘들 보다 더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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