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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山의 시사읽기] 좌파 민족주의가 북한을 대한민국의 주적이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심리적 이유
  • 松山 작가
  • 등록 2026-05-24 16: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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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지난 3월22일 평양에서 최고인민회의 제15기 1차 회의를 열고 김정은을 국무위원장으로 재추대했다. 이날 김정은은 “한국을 가장 적대국”으로 공인하고 “건드리면 무자비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사진=조선중앙통신]

대한민국의 좌파 민족주의자들이 북한을 대한민국의 “주적”이라고 명확하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이를 정치적 계산이나 표 계산 정도로 이해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깊은 역사 인식과 심리적 기반이 깔려 있다. 이것은 한두 정치인의 발언 실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가 만들어낸 집단적 사고 방식의 문제다.

 

한국 좌파의 출발은 민족주의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 좌파 민족주의의 출발점 자체가 “국가”보다 “민족”을 먼저 놓는 경향이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보수 진영은 대체로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생존과 체제를 우선적 가치로 본다. 

 

반면 민족주의 좌파의 흐름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보다 “한민족 공동체”를 더 상위 개념으로 이해해 왔다. 여기서 북한은 외국이라기보다 “분단된 민족의 절반”으로 인식된다.

 

이 차이는 매우 크다. 보수 진영에서는 북한이 핵무장을 하고 대한민국을 군사적으로 위협하는 순간 곧바로 “적”이라는 개념이 성립한다. 그러나 민족주의 좌파에게 북한은 위험한 상대일 수는 있어도, 완전히 타자화된 외부 국가로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같은 민족이라는 감정적 연결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 근현대사의 민족주의 담론은 오랫동안 “민족의 피해 의식”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일제 강점기 경험은 한국 사회 전체에 매우 강한 역사 기억을 남겼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민족은 피해자이며 외세가 우리를 갈라놓았다”는 서사가 강하게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여기서 분단 역시 민족 내부의 선택이라기보다 냉전과 외세의 산물로 해석되었다.

 

이 시각에서는 북한 체제의 폭력성과 독재성보다 “왜 분단이 생겼는가”가 먼저 강조된다. 그리고 그 원인을 미국, 일본, 냉전 체제에서 찾는 흐름이 생긴다. 그러다 보니 북한은 가해자라기보다 “역사적 상황 속의 결과물”처럼 이해된다. 물론 북한 정권의 문제를 모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심리적으로는 비난의 화살이 북한보다 외부 조건을 향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1980년대 운동권 문화의 영향도 매우 컸다. 당시 학생운동 진영에서는 민족해방(NL) 계열 담론이 강한 힘을 가졌다. 이 흐름에서는 대한민국을 완전한 독립 국가라기보다 미국 영향 아래 있는 반쪽 국가로 보는 시각이 존재했다. 반면 북한은 “왜곡되었지만 민족 자주 노선을 추구한 체제”처럼 해석되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오늘날 모든 좌파가 그런 생각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사고는 젊은 시절 형성된 세계관의 영향을 오래 받는다. 당시 만들어진 민족 중심 사고는 지금도 정치, 교육, 문화 영역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분단 원인이 외세라는 인식도 한몫해

 

특히 중요한 것은 “도덕적 자기 이미지” 문제다. 많은 좌파 민족주의자가 자신을 평화와 화해를 추구하는 세력이라고 인식한다. 그들에게 “북한은 주적이다”라는 표현은 냉전 시대 반공주의의 어휘처럼 들린다. 따라서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자신이 군사주의나 냉전 논리에 동조하는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이것은 일종의 심리적 거부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 “가족 중 범죄자가 있으니 가족 자체를 적으로 규정하라”고 말하면 감정적으로 어려움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북한 정권을 비판할 수는 있어도 “민족 전체의 적”이라는 표현까지 가는 순간 심리적 저항이 발생하는 것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한국 좌파 민족주의가 “반국가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초국가적 민족주의”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법적 국가보다 “민족 공동체의 역사적 정통성”이다. 그래서 국가 간 충돌보다 민족 내부 화해를 더 우선 가치로 두는 경우가 나타난다.

 

문제는 여기서 현실과 충돌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국제정치는 감정이 아니라 군사력과 체제로 움직인다. 북한은 실제로 핵무기를 개발했고, 한국을 향한 군사 위협을 지속하고 있으며, 헌법적으로도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같은 민족”이라는 감정만으로 안보 현실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대한민국 보수 진영은 좌파 민족주의를 향해 “민족 감정이 국가 현실 감각을 압도했다”고 비판한다. 반대로 좌파 민족주의 진영은 보수를 향해 “민족 내부 문제를 지나치게 적대와 대결 중심으로만 본다”고 비판한다. 결국 양측은 국가와 민족 중 어느 쪽을 더 우선 가치로 보느냐에서 충돌하는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현상이 한국만의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독일 통일 이전 서독 좌파 일부도 동독을 완전한 적국처럼 보지 않았다. 중국과 대만 관계에서도 비슷한 심리가 나타난다. 민족과 국가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늘 이런 긴장이 발생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는 여기에 식민지 경험과 냉전, 분단, 민족주의 교육이 오랫동안 겹치면서 더욱 강한 형태로 굳어졌다. 특히 교육과 문화 영역에서 “민족”이 거의 도덕적 가치처럼 다뤄진 영향도 컸다. 그 결과 일부 사람들에게는 대한민국이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보다 “민족” 자체가 더 신성한 개념처럼 자리 잡게 되었다.

 

결국 일부 좌파 민족주의자들이 북한을 대한민국의 주적이라고 쉽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북한의 현실을 몰라서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랫동안 형성된 민족 중심 역사관과 정서, 그리고 자기 정체성의 문제 때문이다. 그들에게 북한은 단순한 외국이 아니라 “같은 민족의 비극적 분열 상태”로 남아 있다.





◆ 松山(송산)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인문서 ‘신화가 된 조선’ ‘다다미 위의 인문학’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를 펴냈다. 松山은 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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