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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松山] “나는 왜 합방에 서명했는가”… 21세기 이완용의 변백서(辨白書)
  • 松山 작가
  • 등록 2026-06-17 17:4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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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이완용

이완용, 내 이름은 이미 역사의 죄인으로 굳어져 버렸다. 학교에서는 나를 매국노라고 가르치고, 사람들은 나라를 팔아먹은 대표적인 인물로 나를 기억한다. 내 이름은 충신의 반대말이 되었고, 누군가를 심하게 비난할 때조차 내 이름이 비유로 사용된다. 

 

나는 내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후세 사람들이 나를 재판하려 한다면, 적어도 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했는지는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승자의 기록도 필요하지만 패자의 진술도 남아야 한다. 

 

나는 영웅으로 기억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내가 살았던 시대가 어떠했는지, 그리고 내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를 말하고 싶다.

 

내가 바라본 대한제국은 교과서 속의 낭만적인 나라가 아니었다. 국권을 지켜야 한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권을 지킬 힘은 어디에 있었는가? 

 

조선은 수백 년 동안 성리학의 질서 속에서 살아왔지만, 세계는 이미 산업혁명 이후의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고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은 거대한 공업국이 되었고, 미국은 태평양 건너 아시아에까지 영향력을 넓히고 있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국가 체제를 바꾸고 군대를 현대화했으며 서양의 기술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조선은 여전히 붕당과 문벌, 명분과 의리에 매달려 있었다. 우리는 세계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했고, 알아도 따라갈 능력이 없었다. 나라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많았지만 실제로 국가를 개혁할 역량은 부족했다. 나는 이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청일전쟁이 벌어졌을 때 나는 이미 조선의 운명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 조선은 오랫동안 청나라를 의지해 왔지만 청나라는 일본에게 처참하게 패배했다. 러시아가 새로운 후원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러일전쟁의 결과 역시 일본의 승리였다. 

 

나는 그 전쟁이 끝난 순간 조선의 미래가 사실상 결정되었다고 생각했다. 일본은 승리했고 러시아는 물러났다. 국제사회는 힘의 논리로 움직였다. 미국은 일본과 이해관계를 조정했고 영국은 일본을 동맹국으로 인정했다. 조선을 위해 총을 들어 줄 나라는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는 세계의 중심이 아니었다. 열강의 계산 속에서 조선은 하나의 변수일 뿐이었다. 나는 냉혹했지만 그 현실을 인정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럼에도 끝까지 싸웠어야 한다고 말한다. 의병의 희생을 이야기하고 독립정신을 이야기한다. 나는 그들의 충정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다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싸워서 이길 수 있는가? 

 

전쟁은 의지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군대와 무기, 재정과 외교가 있어야 한다. 일본은 근대 국가였고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일본군은 청나라와 러시아를 꺾은 군대였다. 그런데 조선은 제대로 된 군수산업도 없었고 근대적 국방 체계도 갖추지 못했다. 

 

감정은 총알을 막아주지 못한다. 애국심은 포탄을 이겨내지 못한다. 나는 승산 없는 전쟁이 백성들의 희생만 늘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그것을 비겁함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무모함과 용기를 같은 것으로 보지 않았다.

 

내가 생각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백성이었다. 국가란 결국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왕조가 유지되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나는 나라의 이름이 남느냐 사라지느냐보다 수많은 백성이 살아남느냐 죽느냐를 먼저 생각했다. 

 

만약 일본과 전면 충돌이 벌어졌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겠는가? 수많은 마을이 불타고 농토가 황폐해지고 사람들이 굶주렸을 것이다. 패배가 확실한 싸움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명예일지 몰라도 백성들의 삶은 아니었다. 나는 적어도 그 피해를 줄이고 싶었다. 

 

후세는 그 판단을 비난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당시의 현실 속에서 선택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시대의 변화였다. 나는 일본을 사랑해서 합방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일본이 가진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보았다. 그것은 근대화였다. 철도와 항만, 통신망과 금융제도, 근대 교육과 행정 체계가 일본을 강하게 만들었다. 조선은 그런 변화를 이루지 못했다. 

 

나는 일본의 지배 아래 들어가더라도 결국 새로운 제도와 기술이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이 식민지 지배의 정당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당시 조선의 힘만으로는 그 변화를 이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 

 

후세 사람들이 보기에는 잘못된 판단일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조선의 미래를 완전히 포기한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생존을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내가 권력과 부귀영화를 위해 움직였다고 말한다. 나는 그 비난을 피할 생각이 없다. 실제로 나는 합방 이후 작위를 받았고 경제적 혜택도 누렸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단순히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했다면 이렇게까지 거대한 비난을 감수할 이유도 없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언젠가 나라가 독립하면 내 이름은 가장 먼저 단죄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후세의 존경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 판단을 바꾸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보고 있던 현실은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이상보다 더 무겁고 더 냉혹했기 때문이다.

 

나는 영웅이 아니다. 독립운동가들처럼 목숨을 걸고 싸운 사람도 아니다. 나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고 판단한 정치가였다. 어떤 사람은 나를 비겁하다고 부를 것이고 어떤 사람은 현실주의자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내가 무엇을 선택했는지 알고 있었다. 

 

나는 조선이 이미 패배했다고 보았다. 그리고 패배한 나라가 살아남을 길을 찾으려 했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는 지금도 논쟁의 대상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말하고 싶다. 후세 사람들은 결과를 알고 과거를 판단한다. 그러나 나는 결과를 모르는 상태에서 결정을 내려야 했다. 

 

내 앞에는 수많은 가능성이 있었고 그중 어느 것도 완전한 길은 아니었다. 나는 그 시대의 정보와 조건 속에서 가장 현실적이라고 믿는 길을 택했다. 그것이 나의 변명이라면 변명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역사 앞에서 남길 수 있는 마지막 진술이기도 하다. 

 

나는 조선을 사랑한 영웅으로 기억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내가 살았던 시대의 현실을 외면한 채 결정을 내린 사람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다.




 

◆ 松山(송산)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인문서 ‘신화가 된 조선’ ‘다다미 위의 인문학’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를 펴냈다. 松山은 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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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2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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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6-06-17 19:03:29

    김대중(전자개표기 도입한 빨갱이 원조), 김영삼(우파인척 빨갱이), 노무현(지방분권화 및 빗나간 역사교육으로 세뇌한 빨갱이), 문재인(들떨어진 빨갱이), 이죄명(악랄한 빨갱이 종북인) 이들은 매국노인가 아닌가?, 6.3 부정선거와 민노총/대진연 등이 하루아침에 이런 꼬락서니를 만드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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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6-06-17 18:26:20

    이완용! 매국노라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인물이다.100년이 지난 지금 과연 이완용을 제대로 평가할 인물이 있을까 모르겠다.이완용이 매국노라 한다면 중국에, 북한에 굴종하고 사회주의 국가로 노선을 잡고 밀어부치는 현재의 좌파정권,즉 문재인과 이재명은 매국노 아니겠는가? 이들이 과연 이완용을 매국노라 욕할 수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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