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자의 안보실패는 전시에 우리들의 자식과 후손이 피를 흘리는 것으로 돌아온다.
미국 정가에서는 이란과 러시아 다음은 북한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떠돌았다.
그런데 현 정부는 세계 통치의 칼자루를 누가 잡고 있고 이제 그 칼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전작권 환수는 한미 연합사가 해체되고 온전한 ‘환수’가 아니라 전작권 ‘반쪽’이 되는 것도 모르고, ‘평화와 자주’라는 주접을 떨고 있다
자력으로 지킬 힘도 없고 자기 위치도 잘 모르면서 친중에 줄을 선, 대한민국 정부는 지금 거대한 격랑의 한복판에 서 있다.
세계 패권국인 미국이 친중 정권의 도를 넘는 도전에 참는 것도 지쳐서 독한 마음을 먹는다면, 그동안의 동맹의 의리도, 우리들의 강점인 조선업과 방산 기술도 우리를 보호하는 요새가 아니라 화마가 휩쓸 전장으로 우리 젊은이를 밀어 넣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국민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안보 불안은 단순한 기우가 아니다. "정치가 안보의 빗장을 잘못 채우면, 그 대가는 고스란히 현역 군인들과 동원되는 예비군과 혈기에 전장으로 나갈 젊은이의 몫이 될 것"이라는 탄식은 이미 공상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1. 동맹의 정의가 바뀐다면 어떻게 바뀔 것인가
이제 한미동맹은 ‘한반도 수호’라는 고전적 프레임을 넘어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거대한 체스판의 말로 재구성되고 있다. 미국 안보 전략가들의 시선은 이미 대만 해협과 남중국해를 향해 있으며, 한반도는 그 거대한 전선의 일부로 편입시키려는 추세다.
만약 대만에서 전운이 감돌고 중공이 북한 도발을 6.25사변처럼 또 사주한다면, 주한미군의 전력이 대만과 한반도로 분산되는 순간,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우리 청년들이 감당해야 할 안보적 부담은 지금껏 우리가 상상해 온 수준을 넘어설 것이다.
2. 정치적 미숙함이 부른 안보의 참극, 고대전부터 월남전까지
안보는 물리적 전력의 총합이면서 정치적 리더십이 빚어낸 신뢰의 결합체다. 역사적으로 국가 지도부의 판단 착오와 정치적 미숙함은 동맹을 와해시키고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치명적 함정이 되어왔다.
고대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아테네는 팽창주의적 야욕을 절제하지 못하는 정치적 미숙함을 보였다. 스파르타와의 세력 균형을 파괴한 아테네의 독선은 동맹국들의 이탈을 불렀고, 결국 물리적 전력을 뛰어넘는 정치적 고립이라는 자멸의 길을 걸었다.
근대 영국의 대독일 유화정책은 정치적 안일함이 부른 안보 비극의 정점이다. 히틀러의 야욕을 ‘정치적 협상’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체임벌린의 오판은 동맹국들과의 신뢰를 저버린 채 유럽을 파멸로 몰아넣었다. 예측 불가능한 평화주의는 결코 적의 칼날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가장 뼈아픈 사례인 베트남전 또한 마찬가지다. 남베트남 지도부는 부패 정치와 대적관 부재로 민심을 잃었고, 미국은 확고한 안보 전략 없이 내부 정치 상황에 따라 개입과 철수를 반복했다. 일관성 없는 미국의 전략과 남베트남의 정치적 무능이 결합하여 동맹은 종이장처럼 찢겨나갔고 남베트남은 사라졌다.
결국 안보는 군사력의 ‘하드웨어’와 정치적 통찰이라는 ‘소프트웨어’가 조화를 이룰 때만 성립한다. 지력과 통찰력으로 안보 전략을 정교하게 다듬지 못하는 정치적 안보 미숙과 안보 실패는 그 어떤 적보다도 위험한 국가적 자살 행위임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3. 우리에게는 정치적 미숙함이 없는가?
정치적 미숙함은 국가 안보의 치명적인 함정이다. 안보 역사는 물리적 전력보다 지도부의 일관된 전략과 정치적 역량이 동맹의 성패를 결정함을 입증했다.
오늘날 우리의 방위비 분담금 협정 역시 이러한 ‘정치적 미숙함’의 연장선에 있다. 트럼프식 ‘거래의 기술’ 앞에 서두른 합의는 천문학적 비용을 감수하고도 대중국 병참 기지화라는 전략적 덫에 스스로 갇히는 결과를 초래했다.
반도체, 조선, 방산이라는 핵심 자산을 보유하고도 이를 주권적 협상의 동력으로 전환하지 못하는 무능은 곧 안보 자해다. 안보는 ‘종이 한 장의 평화’라는 도박이 아닌, 지정학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군의 전략적 통찰과 이를 정교한 정치 기술로 조화시킬 때 완성된다.
4. 정치가 안보에 실패하면 누가 피를 흘리는가
정치적 미숙함이 초래한 안보 실패의 대가는 언제나 전선의 청년들이 치른다. 국내 권력 다툼에 매몰되어 국제 정세의 거대한 흐름을 읽지 못할 때, 그 파국은 고스란히 우리 군인들의 희생으로 되돌아온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지도부의 외교적 오판은 수백만 청년들을 참호 속에서 죽게 만들었다. 베트남전에서는 정치적 명분을 잃은 미국의 철수와 남베트남의 정치적 오판과 부패가 결합하여 끝까지 전선을 지키던 월남 청년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푸틴의 오판으로 시작된 전쟁은 러시아군에게 막대한 인명 피해를 입혔다. 그 규모는 누적 사상자 14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국제사회의 전황 분석과도 궤를 같이하는 심각한 수치다. 결과적으로 지도부의 잘못된 결단은 군인의 희생뿐만 아니라 국가적 경제 파탄이라는 비극적인 청구서로 돌아와 무고한 국민의 고통을 가중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
오늘날 우리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졸속 사관학교통합은 현 장교단과 생도의 사기 저하와 미래 전장의 전투력 약화를 초래한다. 안보는 정치권력의 오만한 평화 도박이 아니라, 차가운 국제 역학을 꿰뚫어 보는 치열한 주권 의식에서 비롯된다.
정치가 안보의 본질을 외면하고 실패의 방패 뒤에 숨을 때, 역사의 심판대 위에 서는 것은 권력자가 아닌 묵묵히 나라를 지키던 청년들의 희생임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우리 정치가 감당해야 할 엄중한 책무는 바로 그 청년들이 전선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전쟁을 막는 외교적 통찰과 군사대비태세의 만전과 강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국익의 마지노선을 지켜내는 것이다.

◆ 박필규 위원
한미일보 편집위원
육군사관학교 40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