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객은 자유인(自由人)이다. 자유인은 그 무엇으로부터 혹은 그 누구로부터, 인간과 대상을 막론하고 구속받지 않는 자유의 영혼을 지닌 사람들이다.
자유(自由)는 논객의 생명이다. 따라서 자유인은 스스로 자유를 추구하면서, 남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는다. 자유의 범위는 무한의 경지이다. 그러므로 손부터 발까지, 머리의 자유부터 영혼에 이르기까지 완벽하게 자유롭지 않은 사람은 논객이 될 수 없다. 이것이 논객의 첫 번째 조건이다.
논객은 자잘한 사유(思惟)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논객의 시야는 나라와 민족이라는 대의에서 머물러 있어야 한다. 작은 나(小我)를 잊고, 보다 큰 자아를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논객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는 작은 내가 아니다. 보다 큰 자아, 민족이며 조국이다.
논객은 민족과 조국을 위해서라면, 나의 모든 것을 잊고 헌신할 줄 알아야 한다. 생명과 재산, 돈과 명예에 얽매인 논객은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없다.
논객은 허무(虛無)를 배운 자여야 한다. 진정한 자유는 허무에서 나온다. 모든 것이 허허로운데 무엇이 두려울 것인가. 돈도 허무이며, 명예도 허무임을 깨달을 때, 비로소 내가 두려움과 공포, 탐욕과 이기(利己)로부터 자유로워짐을 깨달을 것이다.
생명(生命)도 한번 나고 죽는 이치일 뿐, 천년을 사는 것은 아니다. 인류의 모습으로 살다 간 모든 이들이 떠날 때는 허허로운 허무의 목소리를 남겼다. 허무를 느끼지 않는 자는 버리지 못하고, 버리지 못하는 자는 떠날 수 없다. 논객은 버리고 떠날 줄 알아야 한다.
논객은 폭력(暴力)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어떤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논객들이 두려운 것은 오직 나이다. 내가 약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내가 탐욕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 할 뿐이다. 논객은 민족과 조국을 숭상하고, 신의 교리(敎理)를 받들어 나아가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논객은 적(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논객은 영원(永遠)히 사는 길을 걸어야 한다. 영원한 것을 찾아 그 영원한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영원한 것은 나라와 민족이지, 내가 아니다. 그러므로 논객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영원히 사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논객은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폭력(暴力)은 논리(論理)의 부족에서 나오는 비열한 행동이다. 논리가 부족한 자는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지금의 좌파진보주의자들이 그렇듯, 그들은 부족한 논리를 폭력으로 대체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좌파진보와 다른 차원의 사람들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의 뜻이 고결하기 때문에 논객은 폭력을 사용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논객은 구걸(求乞)하지 않는다. 아무리 힘들고 배고파도, 고개를 낮추지 않는다. 거친 밥과 탁한 술 한잔에도 만족하는 자만이, 가난을 즐길 줄 아는 자만이 논객의 이름으로 살 수 있다. 많으면 나누고, 부족하면 부족함을 즐기는 자는 가난하지 않다. 그래서 논객은 구걸하지 않는다. 가슴에 품은 위대한 뜻을 가난으로 인해 낮추지 않는다.
논객은 낮게 살지 않는다. 오직 높은 곳만이 논객의 거처이며 집이다. 하늘의 푸른빛과 눈 닿은 먼 지평선의 노을이듯이 비루(鄙陋)한 것은 논객이 걸칠 옷이 아니다. 남이 던진 것을 받아먹지 않으며, 기름진 음식을 위해 이름을 팔지 않는다.
논객은 민족의 영광과 조국의 창달을 위해 성심을 다해야 하고, 북한의 위협과 조국 대한민국을 배신하는 진보주의자들에 대해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적을 향해서는 사자(獅子)의 눈과 포효로 대하는 투지를 보일 줄 알아야 하고, 벗과 아군을 위해서는 목숨을 나눌 줄 알아야 한다.
끝으로, 논객은 이 모든 것을 글로 말한다. 논객의 무기(武器)는 글이며, 논객의 방패(防牌)도 글이다. 무기와 방패는 조국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것. 그리하여 우리는 이것을 신성(神聖)이라 부른다. 서로 존경하고, 서로를 공경하며, 자유인으로서 살아가는 위대한 이름 논객.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충신(忠臣)들이다.

◆ 정재학 시인
시인, 국가유공자, 칼럼니스트, 박정희 대통령 홍보위원, 전라도에서 36년 교직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