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집회 현장에서 주옥순 대한민국엄마부대 대표.
대한민국엄마부대 집회는 늘 흥겨움과 뜨거움이 함께한다.
23년간 한결같이 아스팔트 집회를 이끌며 애국 보수 진영의 입장을 대변해 온 주옥순 대한민국엄마부대 대표. 기온이 많이 내려간 15일에도 주옥순 대표는 광화문광장에 나가 있었다.
엄마부대 집회는 일주일에 3일 △월요일(서울 광화문) △화요일(서울 교대입구) △수요일(경기도 양주) 진행한다.
양주 집회는 국회의원을 겸하는 정성호 법무장관(7400억 원 항소 포기 지시 의혹)의 양주시 고읍동 사무실 앞에서 열린다.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와 관련해 정 장관에게 항의하는 집회다.
노무현정부 때 처음 시작해 23년째
누구도 선뜻 나서기 힘든 일을 23년간 해 온 것에 대해 주옥순 대표는 “노무현정부(2003~2008)의 실정과 대북 정책을 비판하는 집회에 나갔다가 지금에 이르렀다”며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다. 23년 동안 8000번 집회에 나갔다. 1만 번이 다 되어 간다”고 말했다.
광화문 집회 현장.
주 대표는 23년 동안 집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해 윤미향이 이끄는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현 정의기억연대)에 맞서 16년간 투쟁한 것을 꼽았다.
“위안부 강제동원설에 반대해 오랫동안 평화의 소녀상 철거 투쟁을 벌였어요. 2015년 박근혜정부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정부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 최종 타결에 합의하자 좌파들이 죽자고 달려들었어요. 저도 죽기 살기로 싸웠죠. 일본 기자들이 참 많이 취재 왔어요. 기사 하나가 300만 조회를 넘길 정도로 일본에서 큰 반향을 끌었던 사건입니다.”
당시 아베 총리는 박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사죄와 반성의 의미로 10억 엔(약 100억 원)을 출연해 ‘화해치유재’을 설립하고 피해자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그러나 양국이 합의한 문제를 두고 문재인정부가 일방적으로 파기해버렸다.
문재인정부의 감시와 사찰 이겨내
주 대표는 광화문광장에 나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일본 사회에 사과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재명정부 6개월, 정상적인 시스템 다 무너졌다” 외치는 주옥순 대한민국엄마부대 대표.
또 기자들에게 “국가가 정상과 정상이 합의한 사항을 깨뜨린 것은 단순한 정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에 피해가 온다. 나도 일본에 사과하겠다. 우리 아버지는 일제시대에 징용 갔었다. 우리 가족도 피해자지만 과거는 과거다. 과거는 역사로 기억하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또 “나도 딸이 있다. 입장 바꿔 생각해 언제까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성노예라고 손가락질할 건가. 악몽은 잊고 새 출발 할 수 있도록 해 드려야 한다. 100년 전 일 이제 그만 우려먹자. 한·미·일 동맹 깨지면 끝이다” 하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 대표는 기자들에게 “일본 싫어하면서 왜 카메라는 소니냐”고 따졌다고 한다.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문재인 정부에 의해 2년8개월간 사찰당했어요. 사돈네 친척까지 다 뒤졌어요. 문재인이 박근혜 특검할 때는 경찰에 불려가 16시간 넘게 조사받았구요. 그렇다고 제가 물러나나요? 특검 다녀와서 더 세게 싸웠죠.”
통진당 해산 위해 상복 입고 헌재 앞서 시위
그는 또 하나의 성과로 통합진보당(통진당) 해산을 끌어낸 것을 들었다. 박근혜정부 때 이석기 의원 등이 주축이 된 통진당은 유사시 국가시설 파괴를 논의하는 등 내란음모를 벌였다.
광화문 집회에서 연설 중인 이건희(왼쪽) 청년. 엄마부대가 길러낸 자랑스런 대한민국 청년이다.
결국 헌법재판소는 2014년 12월19일 통진당의 해산을 결정했다. 대한민국 역사상 첫 정당 해산 사례였다. 당시 주 대표는 상복을 입고 헌재 앞으로 매일 출근해 “통진당 해산!”을 외쳤다.
또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불법 정치자금 9억 원을 받은 혐의로 2년 실형을 살고 나오던 날도 의정부 구치소까지 엄마부대를 몰고 찾아가 규탄대회를 벌였다.
이런 일련의 일들로 주옥순 하면 극렬 시위꾼, 친일 보수, 골수 우파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세간의 시선에 대해 억울한 점이 있을 것도 같았다.
“극우, 친일, 시위꾼 소리 다 괜찮습니다. 민주당은 엄마부대를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일부 보스도 극단적이라며 슬쩍 선 긋기 하는 거 알아요. 하지만 상관하지 않습니다. 신앙의 힘으로, 동지의 지지로 이겨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뒤에는 청년이 있잖아요. 그들이 믿고 따라와 주는데 어떻게 좌절할 수 있겠어요.”
한·일 정상화 촉구하다 폭행당하기도
그의 아버지는 1943년 일본으로 강제 징용돼 몸이 많이 상한 채로 귀국했다. 어릴 때 자식들이 일본말을 쓰면 크게 화를 낼 정도로 아버지는 ‘반일’이 몸에 배어 있었다
“제 개인사를 볼 때 저는 결코 친일파가 될 수 없습니다. 다만 문재인정부의 대일 정책이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을 뿐이죠.”
그는 또 민주당이 후쿠시마 처리수 관련해 2022~2024년 3년간 국가 예산을 1조6000억 원이나 낭비하는 것을 보고 엄마부대를 이끌고 일본 의회를 찾아가 기시다 총리실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주 대표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가 안전 기준에 부합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위기를 조장하는 세력이 처리수를 오염수라고 부르는 등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우리는 한일 관계가 나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일로 주 대표는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2019년 8월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백은종 서울의소리 대표가 주옥순 대표를 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현행범 체포됐다. 당시 백씨는 매국노 운운하며 주 대표를 공격했다.
당시 주 대표는 전치 3주 진단이 나왔다. 하지만 주 대표는 기도로 아픔을 이겨냈다고 한다.
“(하나님이) 그런 말씀을 주시더라고요. 36년 지배했던 일본도 용서한다고 하면서 아무리 악질이지만 동포 하나 용서 못 하겠느냐…. 그래서 툭툭 털고 용서하기로 했죠.”
그래도 보람은 있었다. 작년에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 두 정상이 12년 만에 만나 ‘셔틀 외교’를 복원한 데는 자신의 공도 조금 있지 않나, 싶다며 주 대표는 웃었다.
청년들 고무시키기 위해 전단지 뿌려
주 대표는 가장 보람된 일로 청년들에게 길 터준 것을 꼽는다. 그는 청년들이 “연설도 너무 잘하고 노래도 잘한다”며 자랑이 대단하다. 그들의 에너지 덕에 자신도 힘이 난다고.
엄마부대 광화문 집회에서 노래로 흥을 돋우는 박원일 청년.
“작년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이 부정선거로 집권했을 때 엄마부대가 16개 대학에 한 달 보름 동안 전단지 1백만 장을 뿌렸어요.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됐을 때 유튜브 다 접고 한남동 집회 참석했는데 그때 그 젊은 친구들 400명이 함께했지요.”
주 대표가 청년들 뒤에서 “윤석열 대통령 힘내세요” “계엄은 정당했습니다” “윤 어게인” “내란 선동은 거짓입니다”를 외치면 청년들이 피켓을 흔들며 따라 외쳤다고 한다.
이때쯤 ‘자유대학’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2030 청년 운동 붐이 있었다. 엄마부대와 함께하던 청년들도 자유대학 등으로 많이 이동했다. 하지만 그래도 몇 명은 남아 엄마부대 집회를 이끌고 있다.
집 팔아 가면서 집회 이끌어
그는 또 하나 자랑스러운 일로 문재인정부 때 2년8개월간 탈탈 털어 조사해도 아무것도 안 나온 것을 든다.
주 대표는 “이제 사람들이 엄마부대는 깨끗하고 정직한 거 안다. 좌파들도 그 부분을 인정해서 만나면 “대장님!” 이러면서 인사한다”고 어깨를 으쓱했다.
어느 조직이든 이권이 개입하면 싸움이 일게 돼 있다. 이렇게 오래도록 엄마부대가 똘똘 뭉친 것을 보면 그의 성품이 짐작이 간다.
그러면 어떻게 비용을 감당하느냐는 물음에 “솔직히 후원금 갖고는 모자란다. 집 팔아가면서 운동하고 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하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1987’ 같은 항쟁 일어난다. 군사정권보다 더 막가파다. 어느 독재자보다 더하고 과거 유신 때보다 더 악랄하다. 이 정권 무너질 때까지 운동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주 대표는 엄마들이 깨어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민국 엄마들이 깨어나야 합니다. 여성이 깨어나야 해요. 자녀가 행복한 세상 열어주려면 우리 여성이 깨어나야 합니다.”
글·사진 임요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