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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국가안보전략 무엇인가 ④] 한반도에 적용되면 무엇이 달라지나
  • 김영 기자
  • 등록 2025-12-25 17: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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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동 개입에서 조건부 개입으로, 억제의 문법 바뀐다
  • 도발 막는 전략에서 확전 관리하는 전략으로의 이동
  • 선택권은 미국에, 첫 부담은 한국에 놓이는 구조
이 시리즈는 지난 8년간 발표된 미국 국가안보전략(NSS) 문서를 바탕으로, 미국 안보전략이 어떤 단계적 변화를 거쳐 왔는지를 구조적으로 해설하기 위해 기획됐다. 해법을 제시하기보다, 무엇이 이미 바뀌었는지를 문서와 정책 신호를 통해 정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판단의 근거가 된 국가안보전략 원문은 독자가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참조 문서로 함께 제시한다.

 고려대기환경연구소가 2022년 2월4일 공개한 국제우주정거장(ISS·International Space Station)에서 촬영한 한반도 야경 사진 [사진=고려대기환경연구소]

 [목차]

 

① NSS로 읽는 트럼프-바이든-트럼프의 연속성

② 트럼프 2기 안보전략이 보내는 정책 신호들

③ 위기 관리형 억제 전략의 종착역은 어딘가

④ 한반도에 적용되면 무엇이 달라지나

 

‘전쟁 막는 억제’에서 ‘위기 통제하는 억제’로 이동

 

미국의 동맹 전략이 실리를 추구하는 이른바 ‘수금(收金)’ 국면을 지나 다음 단계로 접어들면서 가장 크게 달라지는 부분은 억제의 개념이다. 

 

전통적 억제는 상대가 도발을 시도하지 못하도록 ‘개입의 확실성’을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전략이 향하는 방향은 다르다. 개입을 자동으로 약속하기보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확전과 비용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상대를 억제하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를 ‘위기 관리형 억제’라고 부를 수 있다.

 

이 변화가 한반도에 적용될 경우, 한국이 체감하게 될 변화는 군사 전력의 증감보다 정책 신호의 구조 변화에서 먼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자동 개입의 약화가 아니라 ‘개입 조건화’의 강화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달라지는 것은 ‘미국이 오느냐, 안 오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은 동맹을 유지하고 억제의 틀 역시 유지한다. 다만 그 억제가 ‘자동’에서 ‘조건부’로 이동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미국은 위기 시 개입의 원칙은 유지하되, 개입의 시점·범위·방식은 상황별 판단과 조건에 따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 결정엔 동맹국의 기여도, 사태의 성격, 확전 위험, 중국 변수, 미국 내 정치 부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결과적으로 한반도 억제는 더 복잡해지고, 한국이 마주해야 할 전략 환경은 더 불확실해진다.

 

여기서 말하는 ‘불확실성’은 미국의 약점이 아니라 전략적 도구이다. 선택적 개입을 위해 모호성을 유지하면서도, 동맹국에 대해서는 명확한 역할과 부담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미국의 책임은 모호해지고, 동맹의 책임은 명확해진다. 이것이 위기 관리형 억제의 기본 작동 원리다.

 

억제의 초점… ‘도발 차단’에서 ‘확전 차단’으로 이동

 

전통적 억제의 목표는 도발 자체를 막는 것이었다. 그러나 위기 관리형 억제에서는 도발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대신 도발이 발생하더라도 그것이 전면전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이를 한반도에 적용하면, 미국은 북한의 모든 도발에 ‘즉각 응징’으로 대응하기보다 사태의 규모와 의도를 분석해 확전 리스크를 낮추는 방향으로 대응을 설계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 변화는 한국 사회에서 ‘미국이 약해졌다’는 인상을 낳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 이것은 약화가 아니라 최적화에 가깝다. 

 

북한의 국지 도발을 전면전으로 확대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는다면, 응징의 강도는 조절될 것이다. 


긴장은 관리되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도발을 해도 관리될 수 있다”는 신호가 북한에 잘못 전달될 위험도 존재한다. 이것이 ‘위기 관리형 억제’의 딜레마이다.

 

한국의 역할… ‘선택’이 아니라 ‘선행 부담’으로 재배치

 

위기 관리형 억제가 작동하는 환경에서는 한국이 ‘결정’하는 영역이 줄어든다. 대신 한국이 먼저 부담해야 하는 영역이 커진다. 위기 초기에 누가 무엇을 하느냐가 핵심이 되면서, 이른바 ‘첫 72시간’의 부담이 구조적으로 한국에 전가된다.

 

정보·감시·정찰, 지휘통제, 미사일 방어, 민방위·후방 안정, 사이버 대응 등 위기 초기 상황에서의 실무 부담은 한국이 떠안고, 미국은 그 결과를 바탕으로 개입의 규모와 방식을 결정하는 구조로 바뀌는 것이다.

 

이 구조는 종종 “한국이 주도권을 갖는다”는 언어로 포장된다. 그러나 실제는 다르다. 이는 주도권의 확대라기보다, 위기 흡수 능력을 요구받는 구조에 가깝다. 위기 관리형 억제는 동맹국에게 선택권을 주기보다, 먼저 버텨낼 책임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北의 국지 도발은 ‘관리 대상’으로 정의될 수도

 

북한이 당분간 국지 도발을 자제한다면, 그것은 선의에서라기보다 비용 대비 효율을 계산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위기 관리형 억제가 자리 잡을수록 북한은 전면전 위험을 낮추면서 정치·심리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도발을 정교화할 수 있다.

 

군사적 피해는 최소화하되 한국 사회의 불안을 증폭시키는 형태, 사이버·인지전과 결합된 회색지대 행동의 비중이 커질 수 있다. 이때 가장 위험한 것은 “도발이 줄었으니 안보가 안정됐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도발의 축소는 안정이 아니라, 도발 방식의 최적화를 의미할 수 있다.

 

위기 관리형 억제는 도발을 완전히 막지 못하더라도 확전을 차단하면 성공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도발의 존재 자체를 불안으로 체감한다. 미국의 성공 기준과 한국의 체감 기준이 어긋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중국 변수의 비중 더 커져

 

한반도는 더 이상 단독 전장이 아니다. 위기 관리형 억제에서는 특히 중국이라는 변수가 크게 작동한다. 미국은 한반도 위기 대응이 대만·남중국해와 어떻게 연동되는지를 계산하며, 북한 도발이 중국의 전략적 목적과 연결되는지를 평가할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은 북한만을 기준으로 위기를 해석하기 어려워진다. 한반도 대응이 대중 전략의 일부로 편입될수록 개입의 조건은 더 복잡해지고, 결정은 더 늦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한반도 문제는 한반도 문제”라는 식의 접근 방식은 점점 힘을 잃을 것이다.

 

징후는 ‘병력’이 아닌 ‘문구’에서 먼저 나타난다

 

위기 관리형 억제는 탱크나 전투기 숫자로 먼저 드러나지 않는다. 변화는 문서의 문구와 외교 언어에서 시작된다. ‘자동’ ‘즉각’ ‘철통’ 같은 단정적 표현은 줄고, ‘조율’ ‘상황 기반’ ‘단계적’ ‘옵션’ 같은 표현이 늘어난다.

 

공동성명 문구의 변화, 훈련 방식의 조정, 작전계획 업데이트의 논리, 억제 공약의 조건화가 누적되면 억제의 성격은 이미 바뀌어 있다. 이를 ‘말의 변화’로 치부하는 순간, 전략 변화는 뒤늦게 비용으로 돌아온다.

 

마침표 없는 결론, 남겨진 여백

 

위기 관리형 억제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을 가능성을 높일 수도 있고, 동시에 북한의 회색지대 도발을 정교화할 여지를 넓힐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것이 “미국이 약해졌다”는 단순한 이야기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힘의 약화가 아니라 선택권의 강화이며, 그 대가로 동맹국의 선행 부담을 늘리는 전략이다.

 

이 전략이 한반도에 깊숙이 적용될수록 한국이 마주해야 할 질문은 더욱 냉혹하고 직접적인 것으로 바뀔 것이다. 억제의 핵심축이 ‘미국의 방어’에서 ‘한국의 초동 대응 능력’으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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