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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진 칼럼] 필리버스터의 정치적 의미: 대의를 위해 고난을 자처하다
  • 심규진 대학교수·작가
  • 등록 2025-12-25 17: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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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력은 지지층에게서 나온다” 역사적 금언
  • “현대판 태종은 지지층”… 권력에는 공짜 없어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22일부터 23일까지 24시간 동안 필리버스터를 진행, 역대 최장 기록을 경신했다. [사진=연합뉴스]

심규진 스페인IE대 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태종은 극도로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측근들을 거의 절멸하다시피 정리했다.

 

세종 역시 태종의 신뢰를 얻기 위해 개인적·정치적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세종은 태종이 여러 차례 던진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나겠다”는 떡밥을 끝까지 이겨내야 했고, 그것이 바로 세 번의 석고대죄였다.

 

세종은 실제로 아무런 잘못도 없었다. 그럼에도 태종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며, 제발 상왕으로 물러나겠다는 명을 거두어 달라고 호소했다. 

 

이는 사실상 요식행위에 가까운 담금질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세종은 태종에게 충성을 재확인했고, 더 이상 의심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한 정치적 의례를 완수했다.

 

그럼에도 태종이 세종을 100% 신뢰한 것은 아니었다. 국정 전반의 권한은 넘겼지만, 병권만큼은 끝내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자신의 최측근이었던 강성헌이 병권과 관련된 사안을 태종을 거치지 않고 세종에게 보고하자, 태종은 대노했고 그를 능지처참했다. 한마디로 본보기를 보인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둘러싼 평가는 지금까지도 엇갈린다. 과연 그 정도의 처벌이 필요했을까? 강상인이 의도적으로 태종을 패싱하려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태종이 정해놓은 권력의 의전과 프로토콜을 어겼다는 점이다.

 

전쟁사 전문가 임용한 박사는 이 사건을 두고, 그것이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수 있다고 평가한다. 권력이란 본질적으로 비정한 것이며 통제의 균열이 한 번 생기면 댐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이번 장동혁 대표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일종의 담금질 테스트이자 신뢰 회복을 위한 현대판 석고대죄라고 볼 수 있다.

 

그는 24시간 동안 극한의 고통을 감수하며 대여투쟁의 선봉에 섰고, 윤석열 대통령이 직면한 이른바 ‘내란 몰이’와 사법부 장악의 위험성을 정면으로 성토했다. 그 과정에서 쏟아지는 모든 비난을 홀로 감내하는 고행의 길을 자처했다.

 

그렇다면 오늘의 태종은 누구인가.

바로 지지층이다.

 

지금의 정치는 위에서 끌어가는 정치가 아니라, 지지층이 아래에서 끌어올리는 정치다. 

 

그리고 지지층은 태종처럼 의심이 많고, 아군과 적군을 분명히 가려내려는 냉혹한 권력자다.

 

이번 필리버스터는 장동혁이 스스로 고난을 감수하며 대여투쟁, 더 나아가 체제 전쟁의 제단 위에 자신을 올려놓은 사건이었다. 그 결과, 그는 지지층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했고, 낙점을 받은 셈이다.

 

역사적 전환점. 그렇게 불러도 과하지 않다.

 

대학교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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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2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12-26 16:19:23

    심교수님의 장동혁칼럼이 훗날 우파결집에 도움이 되는지. 문수믿었다가 등신된 우파처럼 만들것인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장동혁도 결국은 한동훈일거라 의심하지만, 중립기어박고 지켜볼께요

  • 프로필이미지
    hmj2025-12-26 13:02:42

    심교수님께는 아픈 이야기겠지만
    장동혁이 제2의 한동훈은 아닐까요?
    한동훈에 속고 김문수에 속고...
    배신자의 공통점은 부정선거를 부정한다는 것이지요.
    장동혁도 계엄해제 때 국회에 들어간 국힘 17명중 한명이고
    부정선거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말한바 없습니다.
    아직 한동훈을 내치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 장동혁을 믿어야 할 이유가 부족합니다.
    필리 24시간이 아니라 240시간을 해도
    한동훈을 내치지 않으면 나는 그를 지지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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