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이후 북한 지역을 점령한 소련군.
종북 좌파 담론의 가장 큰 문제는 “몰랐다”가 아니라 “알면서 말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모르는 건 무지다. 하지만 알고도 입을 닫는 건 선택이다.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해방 직후 북한 정권은 자연스럽게 생긴 정부가 아니었다. 외부 점령 세력이 틀을 만들고, 특정 정치 세력이 그 틀을 집행했으며, 반대 세력은 제도적으로 제거되는 과정을 밟았다.
이 흐름은 당시 자료만 봐도 충분히 확인된다. 그런데도 종북 좌파는 이 이야기를 피했다. 말하는 순간 ‘진보’나 ‘민족’이라는 말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가 조직의 생사여탈권 쥔 소련군정
1945년 8월 이후 북한 지역은 소련군이 점령했다. 이 점령은 단순한 군사 주둔이 아니었다. 행정·치안·정치 조직의 생사여탈권을 소련군정이 쥐었다. 허가받지 못한 정치 조직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었다.
이 시기 북에서의 정치란 주민이 자유롭게 고르는 선택이 아니었다. 이미 정해진 선택지 중 하나를 확인하는 형식이었다. 경쟁은 봉쇄되었고, 다른 길은 제거되었다.
이것이 북한 정권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종북 좌파는 이 출발점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해방 직후의 혼란”이나 “그 시대의 제약” 같은 말로 책임의 윤곽을 흐린다.
이 구조는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수립으로 제도화된다. 위원장은 김일성이었고, 위원회는 소련군정의 승인 아래 작동했다. 인민위원회는 주민 자치 기구로 설명되지만, 실제로는 소련군 정치장교의 검증을 통과한 인사만이 핵심 직책을 맡을 수 있었다.
반대 의견은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배제의 대상이었다. 같은 해 시행된 토지개혁 역시 ‘대중의 요구’로 포장되었으나, 집행 과정은 무장 조직과 행정력을 동원한 강제 방식이었다. 절차를 문제 삼거나 비판한 인사 상당수는 체포되거나 월남했다.
해방 직후 평안도 지역에서 압도적 명망을 가졌던 민족주의 지도자 조만식은 신탁통치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는 이유로 1946년 1월 소련군에 의해 연금되었다.
이는 대중적 지지와 무관하게, 점령 권력의 노선에 어긋나면 제거된다는 신호였다. 이 사건 이후 북의 정치 공간에서 비공산 민족주의 노선은 사실상 소멸했다.
1948년에 이르러 정권의 외형은 빠르게 갖춰졌다. 선거가 있었고, 헌법이 제정되었으며, 국가 수립이 선포되었다. 종북 좌파는 이 형식을 반복해 강조한다. 그러나 정권의 정당성은 형식의 나열로 확보되지 않는다. 핵심은 과정의 개방성이다.
반대 후보가 실제로 출마할 수 있었는가, 권력 비판이 허용되었는가, 정권 교체의 가능성이 열려 있었는가. 이 질문들에 북한 체제는 출발점부터 답이 없었다. 선거는 경쟁이 아니라 확인 절차에 가까웠다.
당이 국가 위에 서는 구조 확립
정당 체제도 다르지 않았다. 1940년대 후반 북의 정치 구조는 빠르게 하나로 정리됐다. 여러 좌파·민족주의 계열은 ‘통합’이라는 이름 아래 흡수되거나 사라졌다. 1949년 남·북 노동당이 통합되어 조선로동당이 출범하면서, 당이 국가 위에 서는 구조가 굳어졌다.
1946년경의 박헌영.
이 과정에서 남로당을 이끌던 박헌영은 명목상 지도부에 포함되었으나 실권에서는 배제되었다. 이는 이후 숙청의 전조였다. 1953년 이후 권력 재편 속에서 그는 ‘미제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었고, 1955년 처형되었다.
같은 시기 중국에서 활동하던 연안파와 소련과 직접 연계를 가졌던 소련파 인사들 역시 단계적으로 제거되었다. 정권 수립 이후의 사건이지만, 애초에 권력이 경쟁을 허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설계되었음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당이 국가를 지휘하고, 국가는 사회를 통제하며, 사회는 개인을 관리하는 수직 구조가 이때 완성되었다. 이 구조에서 자유는 권리가 아니라 충성의 대가가 된다.
여기서 ‘공범’이라는 말이 나온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점령 권력의 직접 개입, 반대파의 제도적 제거, 일당 체제의 고착이라는 구체적 사실을 알고도 말하지 않는 태도는 결과적으로 그 권력을 보호하는 태도다.
종북 좌파는 이러한 사실들을 토론의 영역에서 금기의 영역으로 옮겼다. 금기가 생기면 토론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신념과 충성뿐이다.
침묵, 특정 권력 감싸는 공범의 언어
이 침묵의 태도는 한국 사회 내부에서도 반복된다. 북한 체제에 대해 “선거는 실제 선택이었는가” “반대파는 왜 사라졌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질문의 내용보다 질문자의 의도가 먼저 문제 된다.
사실 확인은 ‘분열 조장’으로, 구조 비판은 ‘적대 행위’로 번역된다. 이는 분석이 아니라 방어 습관이다. 종북 좌파는 북한 체제를 고치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 체제를 묻는 언어를 차단하는 데 더 많은 힘을 쏟았다.
북한 정권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두고 종북 좌파가 침묵해 온 것은, 몰라서가 아니라 알고도 선택적으로 입을 닫았기 때문이다. 그 침묵이 반복되면서 북한은 점점 비판해서는 안 되는 대상이 되었고, 한국 사회는 “그게 정말 맞느냐”고 묻는 힘을 잃어 왔다.
이 습관이 계속된다면, 종북 좌파는 앞으로도 평화와 민족을 앞세우며 정작 국민에게 꼭 필요한 질문은 미뤄 둘 것이다. 누가 검증했는지, 누가 책임지는지, 개인의 자유는 어떻게 보장되는지 같은 문제들 말이다.
침묵은 개인의 판단일 수 있다. 그러나 알고도 침묵을 택했다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피할 수 없다. 그럴 때 침묵은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특정 권력을 감싸는 공범의 말이 된다.

◆ 松山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로 전 이승만학당 이사를 지냈으며 현재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 고문,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으며 ‘후크고지의 영웅’을 공동 번역했다. 松山은 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