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가을 ‘붉은 군대 환영 평양시민대회’에 소련군을 대동하고 나타난 김일성.
종북 좌파 담론의 원죄를 하나만 꼽으라면, “김일성을 해방 영웅으로 만들었다”는 그 최초의 포장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단순한 인물 평가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을 신화로 바꾸는 기술, 그리고 그 신화를 근거로 한국 사회의 판단 기준을 뒤집는 방식이 이 지점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해방 직후의 혼란과 정보 부족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혼란은 설명의 재료일 뿐,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특히 ‘민족’을 내세워 사실을 비틀어 온 담론이라면, 그 책임은 더 무겁다.
치스차코프, 김일성을 민족영웅으로 소개하다
1945년 10월14일 평양의 공설운동장, 당시 평양 시립경기장에서 열린 군중 집회는 상징적 사건이다. 이 자리에서 소련군 장성 이반 치스차코프(Ivan Mikhailovich Chistyakov)가 김일성을 군중 앞에 “유명한 유격대 지도자” “민족 영웅”으로 소개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장면의 핵심은 수식어가 아니다. 누가, 어떤 권한으로, 어떤 맥락에서 그 인물을 영웅으로 규정했는가다.
해방 영웅은 대중의 검증과 시간의 축적 속에서 형성된다. 하지만 점령군 장성이 단상 위에서 “이 사람이 영웅이다”라고 선언하는 순간, 그것은 민족 서사가 아니라 점령 권력의 정치 프로젝트로서 위력을 발휘한다.
이 장면은 김일성이 대중적 합의의 결과로 등장한 지도자가 아니라, 점령 권력이 필요로 한 얼굴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소련군정은 북부 지역의 행정, 치안, 선전 체계를 장악하고 있었고, 새로운 체제를 정당화할 상징이 필요했다. 김일성은 그 상징으로 선택되었다.
종북 좌파가 저지른 최초의 왜곡은 바로 이 장면의 성격을 지워버린 데 있다. 점령 권력이 만든 무대를, 민족이 스스로 만든 영웅 서사로 둔갑시켰다.
김일성의 영웅 서사 창작한 종북좌파
김일성은 1948년 9월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국가 지도자로 군림했고, 1972년 국가주석이 되었으며, 1994년 7월8일 사망할 때까지 권력을 놓지 않았다.
광복 후 38선 이북에 진주한 소련군 최고 군사 책임자 이반 치스차코프 제25군 사령관. [사진=미디어한국학]
이 단순한 연표는 권력의 성격을 설명하는 데 충분하다. 그러나 종북 좌파 담론에서 이 연표는 사실을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신화를 고정시키는 배경 장치로 사용돼 왔다.
“해방 영웅”이라는 말로 시작해, 결국은 비판 불가의 성역을 세웠다. 영웅 서사는 질문과 비판을 막는 가장 값싼 장치다.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할 질문은 하나다. 해방은 누구의 손으로 이루어졌는가. 1945년 8월 일본의 패전은 특정 개인의 업적이 아니라, 태평양전쟁 전체의 귀결이었다. 미국과 연합국의 전쟁 수행, 그리고 소련의 대일 참전이 맞물린 결과였다.
소련군은 8월 만주와 한반도 북부로 진주했고, 북부 지역은 곧 소련군정 체제 아래 재편되었다. 이 조건에서 특정 인물이 ‘해방 영웅’으로 부상하는 경로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점령 권력이 행정과 치안, 선전의 기계를 쥐고 있고, 그 기계가 한 인물에게 후광을 씌우면, 대중은 정보의 부족 속에서 그 이미지를 받아들이기 쉽다. 특히 해방 직후처럼 언론이 정비되지 않고, 대안적 정보 유통이 차단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종북 좌파의 책임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점령 권력이 만든 이미지를, 민족이 스스로 확인한 진실인 양 재포장했다. 이것은 단순한 오해가 아니라 적극적인 왜곡이었다.
곧바로 따라붙는 반론은 늘 같다. “하지만 북은 개혁을 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주도한 토지개혁은 1946년 3월5일 공표되었고, 단기간에 실행되었다. 그러나 개혁의 존재가 곧 영웅의 자격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개혁이 어떤 권력 구조 위에서, 어떤 자유의 희생 위에서 실행되었는가다. 반대파가 제도적으로 봉쇄되고, 언론과 결사의 자유, 선거 경쟁이 사라진 상태에서의 개혁은 시민의 선택이 아니라 억압적 통치 기술에 불과하다.
신화 떠받치는 기둥 ‘침묵’
종북 좌파의 논리는 항상 이 지점에서 멈춘다. “무엇을 했는가”는 반복해서 말하지만, “어떤 자유를 제거했는가”는 말하지 않는다.
토지개혁은 말하지만, 그 과정에서 제거된 정치적 경쟁과 숙청된 반대 세력은 지운다. 영웅 신화는 바로 이 침묵 위에서 유지된다. 말하지 않는 것이 곧 신화를 떠받치는 기둥이 된다.
김일성을 해방 영웅으로 포장하는 서사는 한국 사회 내부에서 매우 편리한 무기가 된다. 김일성을 비판하면 “민족을 부정한다”는 낙인이 찍히고, 북한 체제를 비판하면 “분단을 고착한다”는 비난이 따라온다.
이 프레임이 작동하는 순간, 토론은 끝난다. 남는 것은 논증이 아니라 신앙이다. 종북 좌파는 종교를 비웃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김일성 신화는 종교보다 더 취약하고 더 위험하다.
종교는 적어도 자기 교리를 정교하게 다듬고, 내부 논쟁을 거치며, 일정한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반면 김일성 신화는 그런 지적 성실성조차 요구하지 않는다. 금기와 낙인, 도덕적 협박만으로 유지된다. 질문하는 순간 배제되고, 따지는 순간 공격받는다. 이것은 사상이라기보다 독재 권력의 잔재다.
해방 직후 김일성을 ‘해방 영웅’으로 만든 것은 사실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점령 권력의 선전 구조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종북 좌파는 80년 동안 수많은 현실을 덮고, 수많은 질문을 죽여 왔다.
여기서부터 모든 것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영웅을 세운 것이 아니라, 비판 불능의 우상을 세웠다. 그리고 우상이 세워진 사회는, 예외 없이 비극으로 향한다.
시인, 역사·철학연구자, 번역가

◆ 松山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로 전 이승만학당 이사를 지냈으며 현재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 고문,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으며 ‘후크고지의 영웅’을 공동 번역했다. 松山은 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