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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진 칼럼] 단식이라는 선택, 장동혁이 판을 다시 잡는 방식
  • 심규진 교수
  • 등록 2026-01-16 14:3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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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혁의 무기한 단식은 단순한 항의나 감정적 제스처가 아니다. 그것은 장동혁이 다시 주도권을 쥐기 위해 택한 고위험·고보상의 정치적 전환이다. [사진=연합뉴스]

한동훈 징계 국면에서 당내 반발이 거세지자, 장동혁은 재심이라는 절차적 유예를 선택했다. 이는 밀려난 타협이 아니라, 책임을 분산시키면서도 당사자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정치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판단이었다. 

 

징계를 즉각 밀어붙였다면 장동혁 개인이 모든 비난을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반대로 유예는 “기회는 줬다”는 정당성을 남겼고, 이후의 결과를 개인의 독단이 아니라 구조의 귀결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 수가 단식이었다.

 

무기한 단식은 단순한 항의나 감정적 제스처가 아니다. 그것은 장동혁이 다시 주도권을 쥐기 위해 택한 고위험·고보상의 정치적 전환이다. 

 

이 선택으로 그는 관리자의 위치에서 투사의 위치로 이동했다. 당내 갈등을 조정하는 대표가 아니라, 대여 투쟁의 한복판에 서 있는 인물로 스스로를 재정의한 것이다.

 

단식의 효과는 분명하다. 첫째, 논쟁의 초점을 바꾼다. 징계 절차의 정당성이나 당내 권력 다툼이 아니라, “몸을 걸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전면에 등장한다. 

 

이 순간부터 장동혁을 공격하는 세력은 정치적 반대자가 아니라, 자기희생을 폄하하는 냉혹한 존재로 보일 위험을 떠안게 된다. 비난의 비용이 급격히 올라가는 구조다.

 

둘째, 단식은 아젠다를 만든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그의 존재 자체가 메시지가 된다. 장동혁은 더 이상 반응하는 대표가 아니라, 보도의 주어가 된다. 

 

기사 제목의 중심에 서고, 해석의 기준점이 된다. 개혁 신당과의 공조 역시 ‘장동혁 중심의 투쟁 서사’로 묶이면서, 야권 투쟁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게 된다.

 

셋째, 이 선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표”라는 가장 치명적인 프레임을 제거한다. 정치에서 무능은 치명적이지만, 논쟁은 오히려 생존의 증거가 된다. 단식에 대한 비판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가 여전히 판의 중심에 있다는 방증이다.

 

물론 단식은 위험하다. ‘과하다’ ‘쇼다’라는 비난이 뒤따를 수 있다. 그러나 장동혁은 이미 계산을 마쳤다.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아 소모되는 정치적 체력보다, 욕을 먹더라도 행동하며 쌓이는 상징 자본이 더 크다는 판단이다. 이 선택은 동정에 기대는 전략이 아니라, 리더십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방식이다.

 

지금 장동혁이 그리고 있는 그림은 명확하다.

나는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고,

나는 선택을 미루지 않았으며,

나는 지금도 싸우고 있다.

 

단식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이 수단을 통해 그는 다시 한 번 메시지를 고정시키고 있다. 대여 투쟁의 중심에 내가 있다는 그림을.

 

그리고 정치에서, 이 그림을 먼저 그리는 사람이 결국 판을 주도한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심규진 교수

 

스페인IE대학교 디지털미디어학과 조교수. 전 국방부 정책자문위원과 전 여의도연구원 데이터랩 실장을 역임했으며 호주 멜버른 대학교 전임교수와 싱가포르 경영대학교 조교수로 근무했다. 저서에 ‘K-드라마 윤석열’ ‘하이퍼 젠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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