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3일 일본 나라현에서 정상회담 후 환담장에서 드럼 합주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넷플릭스의 인기작 ‘오징어 게임’은 병든 물질세계의 병리적 구조 속 돈 때문에 목숨을 거는 도박의 잔혹함이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허구 세계를 그린 작품이다.
그 세계에는 질서가 있다. 그 질서란 간단히 말해 총기로 무장한 진행 요원들에 의한 힘의 지배, 참가 여부와 게임 방법만큼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 게임 참가자는 불법 게임을 만들고 지켜보면서 즐기는 상부의 구조는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게임 참가자는 게임 참가 여부와 게임 규칙별 방법은 개인 의지로 선택하지만 인간의 물질적 욕망을 이용해 특별법과 특검 악법처럼 일방적인 게임 규칙을 정하고 즐기는 게임 설계자의 의지에 이용당한다.
이 허구적 장치는 인간이 궁지에 몰려서 선택의 자유를 가질 때 어떤 우매한 결정을 내리게 되는가 하는 것과 동시에 목숨을 건 선택을 잘못하면 허망하고 무모한 결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징어 게임’은 정권과 안보 지도부가 국가 생존이 걸린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국제 정세는 오징어 게임보다 훨씬 더 냉혹한 선택을 강요한다
신냉전 구도가 굳어지는 가운데, 반미·반서방 진영의 핵심 거점이던 베네수엘라와 이란이 동시에 체제 붕괴 위기에 빠졌다. 두 국가는 막대한 자원을 보유하고도 독재와 부패, 무리한 대외정책으로 스스로 정권과 국가가 지녀야 할 신뢰를 잃고 붕괴의 문턱에 섰다.
이들 국가의 국민은 인기 정책을 공약으로 내건 위정자를 선택해 나라를 위기로 내몰았고, 선택된 위정자는 장기 집권을 위해 부정선거를 채택함으로써 신냉전 구조의 희생물이 되었다.
오징어 게임의 등장인물은 대부분이 사회적 신뢰를 잃은 빚쟁이들이다. 이들은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에 희생된 70여 국가를 연상시킨다.
베네수엘라는 포퓰리즘 정책과 좌파 연대로 인해 국고를 탕진하며 경제 기반을 무너뜨렸고, 마두로 정권은 부정선거와 마약 카르텔에 연루되어 국내외의 신뢰를 모두 잃고 종말을 고했다.
이란 역시 장기간에 걸친 신정(神政) 독재로 국민의 신뢰를 잃었고, 경제 파탄으로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며 체제의 존립마저 흔들리고 있다. 외부의 적을 강조하며 내부 결속을 유지하던 고전적인 방식도 내부 신뢰와 경제, 민심이 무너지면서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일부 평론가는 지금 우리가 사법부를 독재의 도구로 만든 베네수엘라의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닌지를 우려하며 이란 다음은 북한이라고 지목하고 있다.
오징어 게임에 중도가 없듯이 안보 게임에도 중도는 없다
오징어 게임은 게임 규칙에 따라 짝과 편을 선택하는 게임을 하고, 그 선택은 승자가 아니면 패자가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패자는 규칙에 따라 총기 무장 요원에게 사살당한다. 죽느냐 사느냐의 안보 게임에도 중도는 없다.
안보 정책의 모호함은 공백이 되고, 공백은 오판(誤判)을 부르며, 오판은 위기를 초래한다. 진영이 명확한 구도에서 모호한 태도와 역행 발언을 내놓는 것은 국가의 생존을 위태롭게 한다.
지금의 국제 정세는 외국 정상과 셀카를 찍고 드럼을 치는 등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안보 현안부터 해결해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가 전략적 거점을 잃고 외교적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대만과 중동과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군사 도발을 감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 역시 중국과 러시아의 여력 감소로 인해 전면 도발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이 불안한 안정 상태는 구조적 변화가 아니라 일시적 진영 재편성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오래 가지 못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국제 정세는 이제 더 이상 진영 선택을 미루고 이중적 자세를 취하는 국가에 이익을 주지 않는다. 그랬다가는 어떤 형태로든 해코지를 당하게 되어 있다.
동맹은 오징어 게임의 짝처럼 상황에 따라 조정되는 옵션이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함께 작동해야 하는 일심동체의 안전장치다. 단호했던 안전장치를 깨뜨리면 이상 기후, 인위적 지진과 악성 화재, 전산 장애, 환율 폭등 등 험난한 고난이 예상된다.
오징어 게임과 국제 정세는 닮은꼴… 참가자가 매순간 갈등하고 분열하는 게임판
오징어 게임에선 짝을 찾고 어느 편에 설 것인지 결정을 놓고 갈등하는 장면이 많다. 선택을 주저하거나 미루는 순간 선택을 당한다. 선택의 규칙은 자발적이거나 비자발적이다.
국가의 선택은 자발적이어야 한다. 국가 내부의 갈등과 이견은 존재할 수 있지만, 그것이 대세와 외부 위협 앞에서 선택을 유보할 명분이 되지는 못한다.
안보는 내부의 분열을 혐오한다. 분열은 외부의 공격을 유도할 뿐이다. 오징어 게임의 참가자가 규칙에 따라 선택을 강요받듯, 국가도 생존의 순간에는 단일한 방향과 태도를 요구받는다.
안보 게임에서 어느 정도의 갈등은 허용되지만 방향을 상실한다면 치명적이다. 안보에 중도와 실용을 적용하여 선택을 유보하거나 반대로 가면 동맹에게 버림받고 적의 오판을 불러온다.
중국과 러시아는 베네수엘라와 이란을 각각 중남미·중동의 전략적 교두보로 활용해 왔지만, 지금은 이들을 지원할 여력이 없다. 반(反)서방 연대의 균열은 결국 신냉전의 균형을 미국 쪽으로 기울게 만들었다. 국제 정세의 판도가 명확한 지금, 중국으로 기우는 것은 국가 자살 행위다.
신냉전의 변화를 읽고 명확한 입장을 보여라
오징어 게임은 456명의 참가자가 총을 든 진행요원들에게 무기력하게 당한다. 오징어 게임에선 선택을 잘했어도 게임에 지면 곧바로 탈락하고 시체로 변한다.
경찰이 불법 게임장으로 잠입하지만 힘에 밀리면 그냥 개체일 뿐이다. 인간을 오락용 경마로 생각하는 게임 설계자와 투자자를 징벌하지 못한다. 소수의 정의는 힘으로 구축된 카르텔의 상부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
군사·안보 영역에서 ‘균형과 실용’이라는 말은 선택 회피이자 모호함의 표현이다.
안보에서의 모호함과 새로운 출구 모색은 전략이 아니라 위험한 행동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한·중·일의 소통’이 아니라 ‘한·미·일 공조’다.
민심과 군심은 정부가 안보를 가지고 오징어 게임처럼 무모한 도박을 하지 말고 명확한 입장을 표명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군은 단일하고 확고하며 명확한 명령체계로 대비 태세를 유지해 주어야 할 것이다.
◆ 박필규 위원
한미일보 편집위원
육군사관학교 40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