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와 남미 메르코수르 간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추진에 대한 항의로 프랑스 유럽의회 주변 광장을 대규모 트랙터가 점령하고 있다. [YTN 뉴스 캡처]유럽 전역을 뒤흔든 농민 시위는 더 이상 보조금이나 가격을 둘러싼 산업 갈등이 아니다.
2023년 말부터 누적된 분노는 2026년 초 유럽연합–메르코수르 FTA 타결을 계기로 폭발했고, 그 에너지는 곧바로 신우파(New Right)의 정치적 동력으로 흡수됐다.
한때 좌파적 보호주의의 전형적 수혜자였던 농민들이, 이제는 반엘리트·반규제·자국민 우선의 언어를 가장 선명하게 밀어붙이는 전위로 변모한 것이다.
농민이야말로 진짜 국민이다
전환의 핵심은 정책이 아니라 프레임이다. 브뤼셀의 환경 관료는 ‘현장을 모르는 기후 엘리트’로, 농민은 ‘진짜 국민’으로 재정의됐다.
그린 딜과 ‘농장에서 식탁까지(Farm to Fork)’ 전략은 도덕의 언어를 입었지만, 현장에서는 경유·비료·질소 규제와 휴경 의무라는 생존 비용으로 돌아왔다.
목표의 옳고 그름을 떠나, 속도와 방식이 무시된 환경 정책은 곧 ‘그린래시(Greenlash)’를 낳았고, 이 반작용은 규제 철폐를 외치는 신우파의 메시지와 정확히 맞물렸다.
자유무역 역시 결정적 기폭제였다. 우크라이나산 곡물 유입과 남미산 농축산물 개방은 농민들의 체감 공정성을 무너뜨렸다.
“우리는 엄격한 기준을 지키느라 비싸졌는데, 규제가 느슨한 수입품은 무관세로 들어온다”는 인식은 자유무역의 추상적 효용을 압도했다.
농민들이 이를 ‘Cars for Cows’라 부르며 분노를 조직화하자, 자국민 우선주의는 곧바로 선거의 언어가 됐다.
이 분노를 수확한 정치 세력들이 급부상했다. 네덜란드의 농민시민연합(BBB), 프랑스의 국민연합(RN),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대표적이다.
농민은 더 이상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동원의 주체가 되었고, 신우파는 그 분노를 제도 정치로 번역하는 데 성공했다.
농민은 생산에 대한 대가 존중받기 원해
이 장면은 한국 우파에 분명한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생활 밀착형 규제를 이념 전쟁의 전면으로 끌어와야 한다. 유럽 신우파는 거대 담론이 아니라 경유 보조금, 비료 규제 같은 현장의 문제를 지켰다.
물가, 에너지 비용, 과도한 환경 규제를 ‘현장을 모르는 엘리트 권력의 폭거’로 재정의할 때, 민생 중심의 우파 서사가 형성된다.
둘째, 자유무역을 부정하지 않되 신보호무역주의를 제도화해야 한다.
개방의 이익을 인정하는 대신, 피해 계층에 대한 직불·보험·전환 투자 같은 명시적 상쇄 장치를 공약의 중심에 놓지 않으면 FTA는 언제든 정치적 역풍이 된다. ‘대한민국 우선(Korea First)’은 구호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셋째, 반PC·반엘리트의 생산자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 유럽 농민의 질문은 단순했다. “왜 우리가 저들의 도덕적 우월감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가.”
한국에서도 과도한 환경 지상주의와 규제에 피로한 농민, 제조업 노동자, 자영업자를 묶는 가치 연대가 필요하다.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를 정치의 중심에 놓는 선택이다.
마지막으로 조직의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 신우파의 승리는 대도시가 아니라 트랙터가 달리는 지방과 현장에서 시작됐다. 수도권 담론을 넘어 농업 현장과 지방 공단을 상시 조직의 아지트로 만드는 일, 그것이 동원의 지속성을 담보한다.
유럽의 교훈은 명확하다. 규제에 신음하는 생산자 집단이 결집할 때 정치의 파괴력은 최대화된다. ‘세련된 보수’에 머물면 동력은 약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현장의 분노를 제도권의 힘으로 전환하는 투쟁적 보수다. 좌파의 보호대상이던 농민이 신우파의 엔진이 된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은 생산하고, 그 대가로 존중받기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 심규진 교수
스페인IE대학교 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 전 국방부 정책자문위원과 전 여의도연구원 데이터랩 실장을 역임했으며 호주 멜버른 대학교 전임교수와 싱가포르 경영대학교 조교수로 근무했다. 저서에 ‘K-드라마 윤석열’ ‘하이퍼 젠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