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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진 칼럼] “장동혁이 장제스와 무슨 상관?”… 잘못된 비유가 현실을 가릴 때
  • 심규진 교수
  • 등록 2026-02-02 00:2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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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혁(왼쪽) 국민의힘 대표와 장제스 대만 초대 총통. [사진=연합뉴스 외]

‘노원명 에세이’(매일경제 2월1일자)는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선택을, 장제스 대만 초대 총통의 전략적 실패에 빗대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비유는 흥미로운 수사일 수는 있어도 정치 현실을 설명하는 분석으로는 성립하지 않는다. 역사적 맥락에서도, 정치 구조에서도, 그리고 현재 한국 정치의 동학에서도 이 비교는 어긋나 있다.

 

특히 장동혁의 선택이 실패의 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동원한 인식의 틀은 매우 잘못됐다.

 

장제스는 대중정치 불신한 엘리트 통치자

 

먼저, 장제스의 실패는 ‘내부 숙청’이 아니라 ‘대중 정치의 실패’였다

 

노원명 기자는 장제스의 “공산당 먼저 소탕” 논리를 장동혁의 한동훈 제명과 연결한다. 그러나 이는 장제스 정치의 핵심 실패를 잘못 짚은 것이다.

 

장제스는 시안사변 이후 국공합작을 수용했다. 문제는 그 이전의 ‘강경함’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유지된 엘리트 중심의 통치 구조라는 것이다.

 

그는 △군·관·당을 관료·군벌 엘리트로 운영했고 △농민·도시 하층·청년을 정치적 주체로 조직하지 못했으며 △대중을 신뢰하지 않는 질서 중심의 통치를 고집했다.

 

반면 공산당은 토지, 생존, 분노라는 언어로 대중을 조직했고, 정치의 무게중심을 아래로 끌어내렸다. 장제스의 패배는 군사적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대중 기반의 붕괴였다.

 

즉 장제스는 ‘내부의 적을 먼저 친 강성 지도자’가 아니라, 대중정치를 불신한 엘리트 통치자였다.

 

장동혁은 다중 연합형 대중 정치로 스펙트럼 확장

 

장동혁의 선택은 장제스와 정반대 지점에 있다.

 

그렇기에 장동혁을 장제스에 비유하는 순간, 비유는 붕괴할 수밖에 없다. 장동혁의 정치적 선택은 장제스의 실패 원인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

 

장동혁이 제거한 것은 ‘보수 내부 전체’가 아니다. 제거된 것은 한 개인을 중심으로 한 ‘단일 숭배 구조’였다. 반대로 확장된 것은 전선이다.

 

실제 장동혁 체제에서 포섭되고 있는 스펙트럼은 △박근혜 세력 △안철수·유승민 계열 △원내·제도권 보수 △장외의 김민수·김효은·박민영·장예찬 등 청년 스피커 등으로 확장됐다.

 

이는 엘리트 순수주의가 아니라 다중 연합형 대중 정치에 가깝다. 배제는 하나였고, 포용은 다수였다. 이를 ‘극우화’나 ‘협소화’로 규정하는 것은 정치 지형을 거꾸로 읽는 것이다.

 

‘20% 정당’은 데이터 착시 현상

 

또한 ‘20% 정당’이라는 결론은 선택적 데이터 편향이다.

 

노원명의 또 다른 핵심 전제는 “갤럽 기준 20%대 지지율”이다. 그러나 이 숫자를 최대치처럼 단정하는 것 역시 분석이라기보다 레거시 엘리트의 시야가 만든 착시에 가깝다.

 

갤럽은 전화 면접(CATI) 조사다. 이는 응답자가 자신의 정치 성향을 타인에게 직접 노출해야 하는 방식이다. 사회적 낙인, 직장·관계망 리스크를 고려할 때, 장외·비제도권 보수층, 이른바 샤이 보수층이 포착되지 않는 구조다. 

 

특히 양극화된 정치 지형에서 갤럽 같은 여론조사기관을 좌편향 됐다고 보이콧하는 우파가 많은 점도 고려해야 한다. 

 

반면 자동응답(ARS) 조사에서는 전혀 다른 그림이 반복된다. 다수의 ARS 조사에서 국민의힘 계열 지지율은 민주당과 오차범위 내에서 비등하다. 지지층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숫자 자체가 아니라, 어떤 숫자만을 ‘현실’로 인정하느냐다. 갤럽만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태도는 경험적 분석이 아니라 결론 중심의 데이터 선택이다.

 

포용을 고립으로 읽는 프레임의 한계

 

노원명은 장동혁 체제가 ‘포괄적 보수정당과 결별’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포괄성을 기존 엘리트 합의의 유지로 오해한 데서 비롯된 판단이다.

 

한동훈 체제에서 이탈했던 대중 보수, 제도권 정치에 실망했으나 좌파로 이동하지 않은 층, 장외와 청년, 비정형 지지층은 여전히 유동적이다.

 

장동혁의 전략은 이 잠재 전선을 회수하려는 선택이지, 고립을 택한 결단이 아니다. 포용의 방향이 달라졌을 뿐이다.

 

잘못된 비유는 잘못된 결론을 낳는다

 

장제스는 엘리트 순수주의와 대중 정치 불신으로 패배했다.

 

장동혁은 개인숭배를 제거하고, 대중적 포용과 다중 연합을 택하고 있다.

 

이 둘을 같은 궤도에 놓는 순간, 포용은 극단화로 둔갑하고, 전선 확장은 고립으로 왜곡된다.

비유는 분석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구조가 다른 두 인물을 억지로 겹치면, 그 비유는 설명이 아니라 프레임 공격이 된다.

장동혁을 장제스로 보는 시선은 현실을 읽지 못한 비유다.

 

오히려 지금의 선택은, 장제스가 실패했던 엘리트 정치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에 가깝다.

정치 분석은 경고가 아니라 구조를 읽는 일이어야 한다.

 

그 점에서 노원명 칼럼은 흥미로운 수사는 있었을지 몰라도, 현실을 설명하는 데는 실패했다.

  



 

◆ 심규진 교수

 

스페인IE대학교 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 전 국방부 정책자문위원과 전 여의도연구원 데이터랩 실장을 역임했으며 호주 멜버른 대학교 전임교수와 싱가포르 경영대학교 조교수로 근무했다. 저서에 ‘K-드라마 윤석열’ ‘하이퍼 젠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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