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퓨어 캐나다 국방 조달 특임장관. [사진=연합뉴스]
캐나다가 추진 중인 차세대 잠수함 도입 사업(CPSP·Canadian Patrol Submarine Project)이 막판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총사업비 약 60조 원 규모의 이 사업은 한국의 한화오션·HD현대중공업 컨소시엄과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즈(TKMS)의 양자 대결 구도로 압축됐지만, 최근 들어 경쟁의 성격은 기술이나 가격이 아닌 ‘시간’과 ‘전력 공백’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 미국의 전략적 시선까지 더해지며, 수주전은 단순한 방산 계약을 넘어 동맹·안보·운용 리스크를 함께 따지는 선택의 문제로 변하고 있다.
기술과 산업 효과, 이미 문턱은 넘었다
CPSP는 캐나다 해군의 노후한 빅토리아급 잠수함을 대체하기 위해 최대 12척의 3000톤급 잠수함을 도입하고, 30년 이상 운용·유지(MRO) 체계를 구축하는 대형 사업이다.
캐나다 정부는 이미 한국과 독일을 공식 자격 공급자로 선정하며, 기술적 요건과 기본 산업 참여 조건을 충족한 후보로 압축했다.
캐나다 현지 언론과 방산 전문 매체들의 평가를 종합하면, 기술력과 성능에서 양측의 격차는 크지 않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함께 작전할 수 있도록 맞춰 놓은 나토(NATO) 상호운용성(STANAG·standardization agreement) 역시 결정적 장벽은 아니다. 독일은 이미 나토 체계에서 검증된 설계를 갖고 있고, 한국 역시 기술적으로 기준 충족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가능 여부’ 자체는 쟁점이 아니다.
실제 경쟁은 그 이후, 통합 과정에서의 일정·운용 리스크로 옮겨가고 있다.
독일은 ‘안전한 선택’, 한국은 ‘설명해야 하는 선택’
독일 TKMS는 나토 중심국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장기 운용과 업그레이드 측면에서 정치적 설명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선택지로 평가된다.
의회와 동맹을 설득하는 부담이 적고,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동맹 표준을 따른 결정”이라는 방어 논리가 분명하다.
반면 한국은 생산 속도와 납기, 비용 통제 측면에서 강점을 갖지만, 캐나다 정부로서는 “왜 나토 중심국을 제쳤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 설명 책임이 따른다.
이 때문에 캐나다 내부에서도 외교·정치 라인은 독일을, 군과 실무 라인은 전력 공백을 줄일 수 있는 선택을 더 중시하는 온도 차가 존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변수, ‘누구를 찍기보다 시간을 재촉’
이 구도에 결정적인 변수를 던지는 쪽은 미국이다.
미국은 캐나다 잠수함 사업에서 특정 국가를 노골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 대신 메시지는 일관된다.
“누가 만들든 상관없다. 언제까지, 얼마나 제대로 운용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이 발언은 독일이나 한국을 향한 압박이라기보다, 지연 자체에 대한 경고로 해석된다.
특히 북극 항로, 대서양·태평양 접근 통제 등 북미 안보 환경에서 캐나다 잠수함 전력의 공백은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운 사안이라는 인식이 미국 안보 커뮤니티 전반에 깔려 있다.
이 기준에서 보면, 경쟁의 무게중심은 자연스럽게 납기와 가동 시점으로 이동한다.
유럽 방산업계 전반의 병목 현상이 거론되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생산 속도와 일정 관리에 강점을 가진 한국이 주목받는 배경이다.
스티븐 퓨어 캐나다 국방조달 특임장관이 2일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을 방문, 관계자들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2026.2.2 [사진=한화오션]
캐나다 내부에서 떠오르는 ‘레드백’의 그림자
이 같은 구조를 두고 캐나다 방산업계 일각에서는 호주의 장갑차 사업, 이른바 ‘레드백 사례’가 비교 대상으로 언급된다.
호주는 LAND 400 Phase 3 사업에서 나토 중심국 독일을 제치고 한국의 레드백 장갑차를 선택했다. 당시에도 한국은 나토 비회원국이라는 불리한 출발선에 있었지만, 설명 비용을 넘어서는 실질적 전력·산업적 이익을 제시하며 판을 뒤집었다.
물론 차이도 분명하다. 장갑차와 달리 잠수함은 동맹적·전략적 상징성이 훨씬 크다.
캐나다 해군 출신 인사들과 정책 분석가들 사이에서도 “잠수함은 북미 방위와 나토 해양 전략에 직결되는 자산인 만큼, 호주보다 더 높은 설명 책임이 따른다”는 인식이 공존한다.
레드백 사례는 자동 반복의 공식이 아니라, 조건이 맞을 때만 작동하는 선례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설명 비용과 실익, 그리고 시간표
결국 캐나다의 선택은 ‘설명 비용’과 ‘실익’의 교차점에서 결정된다.
독일은 추가 설명이 필요 없는 선택이다. 나토 중심국이라는 상징성과 동맹 표준이라는 이유만으로 의회·동맹을 설득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설명이 필요한 선택이다. 다만 그 설명이 가능해지는 조건은 분명하다. 전력 공백을 줄이고, 납기를 앞당기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안보·운용 리스크를 실질적으로 낮출 수 있을 때다.
이때 판단의 기준은 바뀐다.
전력 공백이 길어질수록 ‘안전한 선택’의 가치는 감소하고, ‘지금 가능한 선택’의 전략적 가치가 커진다.
캐나다 정책결정자에게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더 익숙한가가 아니라, 어느 쪽이 책임을 더 빨리 완수할 수 있는가다.
미국의 압박 역시 이 지점에서 작동한다.
미국은 특정 국가를 밀지 않는다. 대신 결정 지연 자체를 비용으로 만들며, 선택의 시간표를 앞당기는 방향으로 압력을 가한다.
이로 인해 수주전의 무게중심은 기술이나 가격이 아니라, 결정을 더 미룰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
캐나다 잠수함 사업은 기술 경쟁이 아니라 시간의 싸움으로 이동했다.그 시간표를 가장 거칠게 흔드는 변수는 미국, 더 정확히는 ‘지연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경고’다.
트럼프의 한마디가 60조 원의 향방을 직접 결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60조가 어느 쪽으로 기울 수 있는지는 충분히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