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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우 칼럼] 중앙선관위와 대법원 카르텔은 폭정(暴政)이다
  • 이신우 前 문화일보 논설고문
  • 등록 2026-03-01 18: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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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달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의 후임으로 천대엽 대법관을 내정했다. 천 대법관 인선 절차가 마무리되면 선관위 위원들의 호선으로 선관위원장에 취임할 예정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중앙선관위를 대통령 임명 3인, 국회 선출 3인, 대법원장 지명 3인으로 구성토록 하고 있다. 위원장은 이들 위원 중에 호선한다. 예부터 대법원장이 지명한 대법관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호선'이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법적 근거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냥 관례라는 의미다.


시·도 및 구·시·군선거관리위원회 역시 해당 구역을 관할하는 법원장이 추천하는 법관 1명이 위원에 포함되고 이들이 관례적으로 선관위원장을 맡게 된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법에 '판사가 위원장을 해야 한다'는 문구는 없다.


이유는 따로 없다. 각급 선관위 위원장을 대법관이나 법원장이 맡으면 선거관리의 공정성과 중립성 확보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론이 거론될 뿐이다. 그렇다면 법원장들은 과연 중립적이고 공정한가.


불행히도 꿈 깨라이다.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 소속 의원의 선거부정 소송 사건을 비롯 각종 부정 선거 의혹 관련 재관에서 보듯, 법원은 천편일률적으로 선관위의 무결성을 옹호하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이유는? 법관이 각급 선관위원장을 겸임하고 있기 때문에 선거 부정이 밝혀질 경우 자기 책임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이것이 되레 부정선거 규명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선거관리의 독립성이나 공정성이 아니라 선관위와 법원의 상호 보호 카르텔이 뿌리내리는 근본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반복해서 말하자면 셀프 재판의 구조적 모순을 잉태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현행 시스템에서는 선거 소송이 제기될 경우, 재판을 진행하는 대법관이나 고등법원 판사가 동시에 선관위의 의사결정권자(위원장)이거나 그 동료인 경우가 빈번하다.


예를 들어 선거 무효 소송에서 증거 보전 신청을 받아주는 주체는 법원이고, 투표지나 서버 등의 증거 자료를 관리하는 주체도 법관이 수장을 맡는 선관위다. 따라서 자기네가 위원장으로 있는 조직의 실무적 오류나 부정 의혹을 사법부의 이름으로 단정하는 것은 자기 부정에 해당할 수밖에 없다.


이는 이론적 분석이 아니다. 실제로 이런 일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민경욱 전 의원이 제기한 21대 총선(인천 연수구 을) 무효소송은 한국 선거 역사에서 가장 논란이 컸던 사건 중 하나다.


선거무효 소송은 대법원이 단심제로 진행하는데 민경욱 전 의원의 사건을 담당한 재판장이 조재연 대법관이었다. 조 대법관은 2019년부터 중앙선관위 위원장을 역임한 당사자다.


민경욱 전 의원 측은 "자신이 집행한 선거를 스스로 재판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며 조 대법관에 대해 기피 신청을 냈으나, 대법원은 이를 단칼에 기각해 버렸다. 결국 본인이 관리한 선거를 본인이 재판장이 되어 내린 최종 판결은 "부정 없다"였다.


선거 관리 주체(중앙선관위원장)가 다시 심판(대법관)으로 돌아와 자신의 행정 행위를 정당화하는 판결을 내리는 구조는, 그 결과의 옳고 그름을 떠나 사법적 행위의 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다.


조재연 대법관 개인에 대한 평가를 넘어 이번 재판 과정은 한국 땅에서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 얼마나 무력화됐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미국 알렉산더 해밀턴 등이 공저한 '페더럴리스트 페이퍼'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국민은 아첨꾼의 농간에 의해, 야심가와 탐욕가와 극단파들의 속임수에 의해, 자격 이상으로 신뢰받고 있는 자들의 책략에 의해, 신뢰받을 자격보다 신뢰의 독점과 조작을 추구하는 자들의 음모에 의해 끊임없이 유혹당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들은 탐욕은 탐욕으로 대항하게 해야 한다며 철저한 견제와 균형을 미국 헌법의 제1 정신으로 담아 놓았다.


공저자인 제임스 매디슨은 권력이 한 곳에 모이는 것을 '폭정(暴政)'으로 정의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한국의 선관위·사법부 결합 모양은 '견제와 균형' 원칙을 참담하게 무너뜨리는 중이다. 이 모델이야말로 "인간은 천사가 아니다"라는 매디슨의 통찰을 무시한 전형적인 설계 오류다.


사법부가 선거 행정에 깊숙이 관여하고 자리까지 겸임하게 되면, 사법부는 더 이상 외부의 객관적 관찰자가 아니라 이해관계자가 된다. 이는 "누구도 자기 자신의 재판에서 판사가 될 수 없다"는 법의 격언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꼴이다.


법적 근거도 없이 법관이 선관위원장을 겸임하는 관행은 이제 폐지돼야 마땅하다. 선관위원장을 법관이 아닌 IT보안전문가, 통계학·법학·정치학자, 사회 명망가 등 외부 전문가로 전면 교체하여 사법부와의 인적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고대 그리스식 민회(民會) 등 제3의 특별재판소에서 선거 소송을 전담하게 함으로써 사법부의 제 식구 감싸기 관행을 차단해야 한다.


우리나라 중앙선관위 사무처는 국가 공무원 중에서도 인사 교류가 거의 없는 가장 폐쇄적인 집단 중 하나다. 게다가 특정 지역 출신들이 사무처의 절대 비중을 점하고 있으며, 자기들끼리의 동종 교배를 통해 더욱 비밀스러운 조직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조직 특성에다 법원과 선관위의 공생 관계까지 겹치면서 악성 진화하는 중이다. 겉으로는 독립성을 표방하면서, 이를 빌미로 완전한 치외법권 지대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렇게 된 데는 어떤 창도 뚫을 수 없는 방패막이 역할을 해 주는 대법원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다.


지금 대법원은 민주당의 사법부 장악을 위한 사법3법 개정안에 대해 별다른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기껏 복지안동(伏地眼動)의 우스꽝스러운 모양새다. 그러면서도 법적 근거조차 없는 특권은 고수하겠다는 대법원의 탐욕이 남사스럽다.


前 문화일보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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