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공습 여파로 큰 타격을 입었던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의 공항. [사진=AP]호르무즈 해협 항행이 여전히 불완전하다. 수십 년간 미 해군력과 국제 해상 질서가 떠받쳐 온 자유항행 체제가 전 세계 대부분을 상대로 한 인질극의 수단으로 흔들리고 있다.
7일(현지시각) 발효한 2주 휴전은 전면 충돌을 잠시 멈춘 것일 뿐, 자유항행과 역내 질서를 복구한 합의는 아니었다. 2주간 후속 협상이 추진될 것으로 관측됐으나,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세로 휴전은 시작부터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스라엘 측 해석에 따르면 애당초 휴전 조건에 레바논이 포함되지 않았다. 레바논 남부(이스라엘 북부) 접경은 이란 대리 세력 중 하나인 헤즈볼라의 핵심 전장이다.
트럼프 이득은 양보의 크기가 아니라 ‘이란 본색’의 노출
이 국면에서 트럼프의 득실을 따질 때 먼저 봐야 할 것은 ‘당장 무엇을 양보받았나’보다 ‘누가 본색을 드러냈는가’다. 이란이 핵 포기나 대리 세력 축소는 물론 호르무즈의 완전 개방조차 보류한 채, 해협 통제와 레바논 연계를 협상 카드인 양 들이밀고 있다.
트럼프는 적어도 전임 미국 행정부들처럼 테헤란발 협박을 “복잡한 안보 현실”로 미화하지 않았으며, 무엇이 협상이고 무엇이 강요인지 거듭 분명히 해놓았다. 성과 확정을 말하긴 이르지만, 적어도 판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움직였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UAE의 이탈로 ‘산소호흡기’ 상실
현 사태에서 이란의 가장 치명적 패착은, 체제를 연명시켜 주던 걸프 아랍의 회색지대를 스스로 적으로 돌린 데 있다. 특히 UAE의 이탈이 뼈아프다. 두바이는 오랫동안 이란에게 단순한 이슬람권 형제국이 아니었다. 제재 속에서도 돈이 돌고 상품이 우회하며 원유 수익까지 세탁되는 통로였다.
두바이 전경. [사진=두바이관광청]
로이터의 논평란 브레이킹뷰(Breakingviews)는 UAE 내 이란 연계 자산이 수백억 달러, 최대 약 500억 달러 수준일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복잡한 수익 경로 상당수가 두바이의 자유무역지대와 금융 네트워크를 거쳐 왔다고 짚었다.
미 재무부도 2025년과 2026년 제재 발표에서 UAE 기반 회사·선박·네트워크를 이란의 섀도 뱅킹, 원유 거래, 그림자 선단, 조달망과 연결해 반복적으로 지목했다. 두바이가 이란의 제재 회피를 위한 ‘비공식 산소호흡기’였다고 해도 무방할 지경이다.
UAE는 해협의 “조건 없는 재개방”을 요구하며 이란 책임론을 정면으로 제기했다. 사우디 역시 이란 공격으로 하루 60만 배럴 생산능력과 동서 송유관 하루 70만 배럴 처리량 감소를 공식화했다.
1979년 혁명 이후 이란은 줄곧 ‘반이스라엘·반미 주권’의 언어로 자신을 포장해 왔지만, 걸프 국가들 눈에 그 실체가 드디어 선명해졌다. 이란은 체제 수호를 위해 아랍의 항만·금융·물류에 기대면서, 필요하면 이른바 ‘이슬람형제국’들의 생명선인 에너지와 해상교통까지 틀어쥐는 세력인 것이다. 지금 이란이 잃어버리는 것은 ‘우정’이 아니라 연명을 가능하게 해 준 이웃의 ‘묵인’이다.
이란의 對 아랍 감정은 왜 이중적인가
아랍을 향해 우월감과 열패감을 함께 가진 이란의 심리는 그 연원이 깊다. 7세기 아랍에 정복당해 이슬람을 받아들였고, 현대 페르시아어 역시 아랍 문자로 표기되며 아랍 차용어도 적지 않다.
그러나 독자적 언어와 문화 정체성을 유지해 왔다. 요컨대 이란은 아랍의 종교와 문자를 받아들였지만 그 세계에 완전히 흡수되진 않았다는 기억을 정체성의 중심에 둔다. 이 기억이야말로 문명적 자부심의 근거이자, 아랍 질서 안으로 편입됐다는 오랜 상처이기도 하다.
이 모순을 국가정체성으로 굳힌 것이 사파비 왕조였다. 사파비 왕조는 12이맘파 시아파를 이란의 국교로 세웠으며, 이것이 다양한 민족·언어 요소를 묶는 통합된 국가의식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오늘날 이란의 시아파 종주국 의식은 교리 수호자로서의 종교적 신념만이 아니다. 아랍·수니 다수권 옆에서 자기만의 국가적·문명적 위치를 지키려는 전략이기도 하다.
이른바 이슬람공화국 이란의 지배엘리트 눈에 걸프 아랍국들은 대체로 현대 들어서야 국가 형태를 정비한 군주국들, 석유와 미국의 안보 우산을 배경으로 급부상한 존재들이다. 이 지점에서 우월감과 열패감 등 상반된 감정들이 동시에 배태된다.
수니 vs 시아 대립의 본질은 교리보다 권력
브루킹스연구소의 분석에서도 중동의 수니-시아 대립은 순수한 신학 논쟁이라기보다, 아랍 민족주의와 이란 민족주의 사이의 지역 경쟁으로 이해된다. 이들의 분열을 기독교 구교·신교의 교리 차이 같은 범주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노골적으로 패권적이기 때문이다. 이란이 레바논·시리아·이라크·예멘에 집착하는 것 역시 종교적 친연성 못지않게 세력권 유지와 체제 위신의 문제다.
바로 그렇기에 이란이 주변 아랍국들을 적으로 돌린 선택은 외교 실패를 넘어 자기모순의 폭발이다. 걸프 아랍권의 다수가 군주국이며, 그중 사우디·오만은 절대왕정 성격이 강하다. 그런 나라들을 입으로 훈계하고 혁명의 정통성과 명분을 과시하면서, 몸은 두바이의 금융망과 걸프의 무역 질서에 기대어 살았다.
제국의 후예를 자부하지만 생계와 생존은 아랍의 개방성과 중개 기능에 의존해 온 것이다. UAE까지 등을 돌렸으니 이제 이란은 ‘제재를 견디는’ 차원이 아니라 그것을 ‘온몸으로 통감’하게 됐다. 이 구도가 트럼프에게 결코 나쁘지 않다. 체면용 합의보다, 호르무즈의 완전한 자유항행과 제재회피 통로 차단을 한 묶음으로 압박할 수 있다. 여기서 더 밀어붙이면 트럼프는 이란의 회색 생존구조를 뒤흔든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 임명신 박사
중문학박사, 동북아 연구자
前 스카이데일리 국제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