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상위 10% 가구의 평균 자산은 하위 10% 가구의 수십 배를 상회한다. [그래픽=연합뉴스] 사바세계(娑婆世界)는 본래 ‘참고 견뎌야 하는 땅’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그 인내의 무게와 풍경은 사람마다 판이하게 다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중생들을 그 삶의 궤적에 따라 대별하면, 성층권(成層圈) 너머의 풍요를 당연시하는 이들과, 지상의 거친 숨소리를 견디는 이들 둘로 확연히 갈라진다.
사회적·물질적 풍요가 인생의 기본값인 성층권
먼저, 성층권에 머무는 이들은 △‘리무진 좌우파’ △고위공직자 △대기업 고위 임원 △유학파 대학교수 △대형 로펌 변호사 △신흥 IT 자산가 △권력을 향유하는 정치인 △부동산 자산가 △유명 연예인·스포츠 스타 △삼전닉스(삼성전자·하이닉스) 메모리 사업부 8만9000여 명이다.
사회적·물질적 풍요를 인생의 기본값(Default)으로 누리는 이들로 이른바 우리 시대의 신(新) 귀족이다. 이들은 견고한 학벌과 인맥, 고위직의 권위라는 리무진에 올라타 세상의 풍파를 직접 맞지 않고 살아간다.
이들에게 사바세계의 ‘고통’은 관념적이거나 선택적인 유희(遊戲)에 가깝다. 진영 논리를 떠나 풍요로운 성층권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이 시대의 특권층이다.
그 반대편에는 지상의 풍파를 온몸으로 견디는 ‘평범한 중생들’이 있다. 성층권 아래, 매일의 생업과 가계의 무게를 지탱하며 살아가는 절대다수의 시민이 그들이다. 이들에게 풍요는 당연한 기본값이 아니라, 치열한 인내를 통해 쟁취하고 지켜내야 할 결실이다.
이들은 사바세계의 본뜻인 ‘인토(忍土)’를 몸소 체험하며, 자녀 교육과 노후 준비라는 업(業)을 짊어지고 묵묵히 고락을 나누는 우리 시대의 참된 주인공들이다.
통계가 증명하는 ‘기본값’의 잔인한 격차
이 두 세계의 간극은 막연한 느낌이 아니라 차가운 통계 수치로 증명된다. 성층권의 사람들에게 자산 형성은 ‘증식’의 영역이지만, 지상의 중생들에게는 ‘생존’의 사투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상위 10% 가구의 평균 자산은 하위 10% 가구의 수십 배를 상회한다.
특히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소득의 비중을 보면, 성층권 거주자들은 잠자는 동안에도 부가 증식되는 구조 속에 있다. 반면 지상의 중생들은 소득의 90% 이상을 노동에 의존하며, 그나마도 물가 상승률과 고금리의 파고에 잠식당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의 전체 임금 근로자 2241만 명의 평균 임금은 연 4300만 원(월 360만 원)이며, 전체 근로자를 한 줄로 세웠을 때 정확히 중간에 서 있는 사람의 소득인 이른바 중위 소득은 연 3300만 원(월 278만 원)에 불과하다.
성층권의 신귀족들이 누리는 수억 대의 성과급과 자산 증식의 그늘 아래, 지상의 절대다수 노동자들은 이 엄연한 숫자의 테두리 안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셈이다. 필자 같은 수행자에겐 이러한 현실 속 ‘교육의 기회비용’의 격차가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성층권에서 ‘교육’은 부를 수성하기 위한 ‘투자’의 기본값이지만, 지상에서는 가계를 건 ‘희생’의 산물이다. 수도권 주요 대학 신입생의 가구 소득 분위를 보면 고소득층 자녀의 비율이 압도적이다.
부의 대물림이 학벌의 대물림으로, 다시 권력의 대물림으로 이어지는 ‘성층권의 순환 구조’는 더욱 공고해졌다. 지상의 부모들이 허리가 휘도록 뒷바라지해도,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은 전설이 되었고 자녀가 부모보다 나은 삶을 살 것이라는 희망조차 품기 어려운 것이 오늘날 교육 현장의 냉혹한 현실이다.
관념적 고통과 실존적 고통의 괴리
가장 심각한 대비는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나타난다. 성층권의 리무진 좌우파들은 TV 토론이나 강연대 위에서 서민의 눈물을 말하고 정의를 외친다. 이는 ‘악어의 눈물’에 가깝다.
그들이 말하는 고통은 통계 속 숫자에 불과한 관념적 대상이다. 정작 본인들은 자녀를 해외로 유학 보내고, 일반인은 상상도 못 할 고액 수임료나 자문료를 받으며 그들만의 리그를 공고히 한다. 이들에게 사바세계의 고난은 해결해야 할 ‘정치적 과제’일 뿐, 오늘 밤 잠자리를 걱정해야 하는 ‘실존적 위기’가 아니다.
하지만 지상의 중생들에게 고통은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마주하는 차가운 공기다. 폐업을 고민하는 자영업자의 한숨, 전세 사기에 무너진 청년의 절망, 고독사를 걱정하는 노인의 외로움은 리무진 안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는 풍경이다. 성층권 사람들이 진영 싸움에 몰두하며 세상을 좌우로 나눌 때, 지상의 중생들은 삶과 죽음, 그리고 내일의 끼니를 나누고 있다.
인토(忍土)의 주인은 누구인가?
부처님은 사바세계를 ‘참고 견디는 땅’이라 하셨다. 그러나 그 참음의 무게는 공평하지 않다. 성층권의 이들에게 인내가 권력을 지키는 수단이라면, 지상의 중생들에게 그것은 생존을 위한 숭고한 투쟁이다. 리무진 좌·우파가 누리는 평온은 사실 지상의 희생 위에 세워진 사상누각일 뿐이다.
필자는 묻는다. 이 사바세계의 참된 주인은 누구인가. 높은 곳에서 훈수 두는 자들인가, 아니면 먼지 속에서 정직하게 고통을 감내하는 이들인가. 성층권의 화려함에 취해 지상의 진실을 외면하는 사회는 지속될 수 없다.
지상의 업(業)을 함께 나누지 않는 한, 성층권의 풍요는 공허한 환상이다. 진정한 깨달음은 구름 위가 아니라 중생들의 거친 손마디 속에 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큰 나무나 작은 풀을 가리지 않는다. 그런데 어찌하여 성층권의 구름만이 그 비를 독점하며 대지를 말리는가. 대중의 마른 목소리가 곧 하늘의 ‘할(喝)’이다. 리무진의 창을 내리고 지상의 신음 앞에 자성(自省)하라. 그것이 사바의 주인으로 사는 유일한 길이다.
※할(喝): 본래 선종(禪宗)에서 수행자의 번뇌와 집착을 깨뜨리기 위해 내지르는 엄한 꾸짖음의 소리를 뜻함. 본문에서는 대중의 목소리가 지닌 준엄한 경고나 시대적 가르침을 비유함.

◆ 응천 스님
대한불교호국종 총무원장
호국승군단 초대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