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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투표지는 충분했다는 선관위, 검증 가능한 기록은 어디 있나
  • 김영 기자
  • 등록 2026-06-05 10:2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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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표용지 부족 사태 핵심은 물량보다 검증 가능성
  • 인쇄·배부·이송·사용·잔여량 대조 체계가 쟁점
  • 선거 신뢰는 선관위 해명이 아니라 기록에서 나온다

4일 오전 8시40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문 앞.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의 관용차가 진입하려 하자 정문 쪽으로 군중이 몰리고 있다.  

6·3 지방선거 본투표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쟁점이 바뀌고 있다. 처음에는 “투표용지가 부족했느냐”가 문제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후 드러난 내용은 더 복잡하다. 


일부 지역에서는 투표용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선관위가 보유하고 있던 투표용지가 투표소에 제때 전달되지 않았다는 설명이 나왔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의 본질은 단순한 물량 부족이 아니라 선거관리 체계의 검증 가능성 문제로 옮겨간다.

 

문제는 선관위가 “투표지는 충분했다”고 말했느냐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이 그 말을 검증할 수 있느냐다. 


투표지가 언제, 어디서, 몇 장 인쇄됐고, 누구에게, 몇 시에, 몇 장 전달됐으며, 어느 투표소에서 몇 장이 사용되고 몇 장이 남았는지를 제3자가 대조할 수 있어야 한다. 


선거 신뢰는 말로 하는 설명에서 나오지 않는다. 


투표용지의 인쇄·보관·배부·이송·사용·잔여분 회수까지 전 과정이 끊김 없이 기록되고 검증되는 체인 오브 커스터디(chain of custody·관리 연속성)의 존재 여부에서 나온다.

 

투표지는 있었다는데 현장에는 왜 없었나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선관위는 본투표에 대비해 송파구 전체 유권자의 50% 수준에 해당하는 투표용지를 인쇄했다. 그러나 투표용지 전부를 각 투표소에 배치하지 않고 일부를 예비용으로 남겨뒀다. 


투표율이 예상보다 높아지면서 일부 투표소에서는 오후부터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가 대기하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예비로 보관한 투표용지는 현장에 제때 공급되지 않았다.

 

선관위 설명대로라면 이 사태는 “투표용지가 없어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투표용지는 있었는데 필요한 투표소에 제때 가지 못한 문제”다. 


이 차이는 작지 않다. 전자는 투표율 예측 실패에 가깝지만, 후자는 선거관리 시스템 실패에 가깝다.

 

더구나 중앙선관위는 당초 문제가 발생한 곳을 서울 소재 14개 투표소라고 설명했지만, 이후 인천에서도 투표용지 부족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발생 장소와 범위조차 처음부터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면, 사후 해명 역시 검증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믿어 달라는 해명, 대조 가능한 기록은 있나

 

선관위 설명의 가장 큰 문제는 국민에게 다시 믿음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검증 가능한 시스템이 있었다면 해명은 말이 아니라 문서로 나왔어야 한다. 언제 몇 장을 인쇄했고, 어느 투표소에 몇 장을 보냈으며, 예비분은 어디에 보관했고, 부족 신고 뒤 몇 시에 몇 장을 추가 이송했는지 공개하면 된다.

 

혼란을 만든 주체는 국민이 아니라 선관위다.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는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려 한 사람들이다. 국가기관이 준비하고 배분해야 할 투표용지가 현장에 없었다면, 그 책임은 유권자에게 돌릴 수 없다. 


국민의 의심을 탓하기 전에 선관위는 먼저 국민이 대조할 수 있는 기록을 내놓아야 한다.

 

선거 신뢰의 핵심, 체인 오브 커스터디

 

선거관리에서 체인 오브 커스터디란 투표용지와 투표함, 선거 장비의 이동과 보관 과정이 끊기지 않고 기록되는 절차를 말한다. 


형사사건에서 증거물이 누구 손을 거쳐 어디에 보관됐는지를 확인하듯, 선거에서도 투표용지가 인쇄소에서 투표소로, 투표소에서 개표소로, 다시 보관 장소로 이동하는 전 과정이 시간·장소·수량·책임자별로 확인돼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의혹이 생겨도 말이 아니라 기록으로 설명할 수 있다. 


투표용지가 충분했다면 그 충분함은 인쇄량과 배부량, 예비 보관량과 추가 이송량, 사용량과 잔여량을 통해 입증돼야 한다. “충분했다”는 말은 출발점일 뿐이다. 


그 말이 검증 가능한 문서와 숫자로 뒷받침될 때 비로소 설명이 된다.

 

외국은 남은 투표지를 줄이지 않고 기록한다

 

외국 사례를 보면 이 원칙은 더 분명해진다. 국가마다 선거제도와 공개 범위는 다르지만, 공통점은 있다. 


사용된 투표지만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미사용·훼손·잔여·예비 투표지까지 하나의 관리 계정 안에 넣고, 필요할 경우 후보자·정당·참관인·법원 또는 재검표 절차가 대조할 수 있도록 기록을 남긴다는 점이다.



표에서 보듯 쟁점은 외국 제도가 모두 같다는 데 있지 않다. 공통점은 “믿어 달라”가 아니라 “대조해 보라”는 구조다. 


미국은 투표용지와 선거장비의 이동 기록을 중시하고, 캐나다는 사용·미사용·훼손 투표지를 합산해 전체 투표지가 설명되는지 확인한다. 영국은 투표소에 유권자 100%분을 배정하지 않을 경우 추가 공급 계획을 요구하고, 호주는 투표함과 투표지를 봉인·추적·재검산 절차 안에 둔다.

 

남은 투표지가 문제가 아니라, 남은 투표지의 출처와 이동, 보관과 회수 과정이 설명되지 않을 때 문제가 생긴다. 


선관위가 남는 투표용지가 불신의 소재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 해법은 남는 투표용지를 줄이는 것이 아니었다. 남는 투표용지까지 포함해 모든 투표용지를 기록의 체계 안에 넣었어야 했다.

 

이번 사건에서 빈틈은 투표용지 공급 과정

 

한국에도 투표 종료 뒤 투표함, 열쇠, 투표록, 잔여투표용지를 관할 선관위에 송부하는 절차가 있다. 선거쟁송 과정에서 증거보전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쟁점은 투표가 끝난 뒤의 보관만이 아니다.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투표용지가 어떻게 준비됐고, 투표소별로 얼마나 배부됐으며, 예비분은 왜 남겨졌고, 부족 신고 이후 어떤 경로로 이송됐는지가 핵심이다.

 

사용 투표지, 미사용 투표지, 훼손 투표지, 예비 보관 투표지, 추가 이송 투표지가 모두 하나의 계정 안에서 맞아떨어져야 한다. 


그래야 투표용지가 남아도 의혹이 되지 않고, 투표용지가 부족해도 원인을 정확히 따질 수 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한국에 아무런 선거관리 절차가 없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그 절차가 투표용지 공급 단계에서 국민과 후보자, 정당, 참관인이 검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작동했느냐에 있다.

 

따라서 진상규명은 단순 문책이나 사과로 끝나서는 안 된다. 


투표용지 인쇄량 산정 기준, 투표소별 최초 배부량, 선관위 예비 보관량, 추가 이송 요청 시각, 실제 도착 시각, 현장 대기 인원, 투표 지연 시간, 최종 사용량과 잔여량이 모두 공개·대조돼야 한다. 


어느 단계에서 판단이 잘못됐고, 어느 단계에서 이송이 늦었으며, 어느 책임자가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를 기록으로 확인해야 한다.

 

선거는 선관위의 말을 믿고 치르는 행정절차가 아니다. 


선관위의 말이 맞는지 국민과 후보자, 정당, 참관인이 검증할 수 있어야 하는 헌정 절차다. 


“투표지는 충분했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충분했다면 그 충분함이 문서로 입증돼야 한다. 


이번 사태가 남긴 질문은 하나다. 


한국 선거에는 말로 하는 해명이 아니라 검증 가능한 체인 오브 커스터디가 작동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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