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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미 규슈여행] ④구마모토 제1경 ‘구마모토성’
  • 박명미 작가
  • 등록 2026-08-25 06: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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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3대 성으로 꼽히는 구마모토성. [사진=구마모토관광청]

구마모토에 여행을 간다면 첫 번째 일정은 아마도 구마모토성(熊本城)이 될 것이다. 구마모토역에서 시내 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높은 돌담 위로 검은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천수각이 모습을 드러낸다. 

일본에는 수많은 성이 있지만 구마모토성은 멀리서 보아도 묘하게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 있다. 우아하고 단정한 히메지성이 귀족적인 느낌이라면 구마모토성은 훨씬 무겁고 강인하다.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만든 성이라기보다,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든 거대한 군사시설이라는 인상이 먼저 든다.

이렇게 강인한 인상을 주는 구마모토성이지만, 밤에 라이트업이 되면 인상이 달라진다. 하얗게 회칠한 벽을 밝게 비추는 불빛에 천수각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환하게 빛나며 구마모토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다.

구마모토성은 히메지성, 마쓰모토성과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성으로 자주 꼽힌다. 특히 이 성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이다. 

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휘하의 장수이면서 일본사에서 손꼽히는 축성가였다. 오사카성 축성에도 참여했고, 전국 각지의 성과 제방·치수공사에서도 능력을 발휘했다. 구마모토성 역시 단지 거대한 돌을 쌓아 만든 것이 아니라 지형과 방어, 물과 식량, 병력의 이동까지 계산한 하나의 거대한 군사 시스템이었다.

구마모토 시내를 굽어보고 있는 구마모토성. [사진=구마모토관광청]

구마모토 시내 북쪽에는 차우스산(茶臼山)이라는 구릉이 있다. 가토 기요마사는 이 지형을 최대한 이용했다. 그래서 구마모토성은 오늘날에도 시내 한복판에서 높게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지금은 성 주변에 빌딩과 도로가 들어섰지만 성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왜 하필 이곳에 성을 만들었는지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성을 가진다는 것은 높은 건물 하나를 갖는다는 뜻이 아니었다. 주변을 내려다보고 적의 접근을 먼저 파악하며, 유사시에는 영주와 가신, 병력이 버틸 수 있는 거대한 요새를 갖는다는 뜻이었다.

물론 가토 기요마사가 아무것도 없던 곳에 처음 성을 세운 것은 아니다. 이 지역에는 15세기 후반 기쿠치씨 계통의 이데타 히데노부(出田秀信)가 세운 것으로 알려진 치바성(千葉城)이 있었고, 이후 가노코기 지카카즈(鹿子木親員)가 다른 한자를 사용하는 구마모토성(隈本城)을 축성했다. 

1588년 가토 기요마사가 히고(肥後. 구마모토의 옛 이름) 북부의 영주가 되어 이곳에 들어오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그는 기존의 성을 확장하는 정도에 만족하지 않았다. 1601년경부터 본격적인 대공사를 시작하여 1607년 거대한 새 성을 완성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구마모토성의 기본적인 모습이 이때 만들어졌다.

한국 사람에게 가토 기요마사라는 이름은 그리 낯설지 않다. 임진왜란 때 조선으로 출병한 일본 장수였기 때문이다. 특히 울산왜성 전투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그는 조선에서 성을 쌓고 지키며 실제 공성전을 경험했다. 따라서 구마모토성을 돌아볼 때는 이 성을 평화로운 시대의 관광명소로만 바라보면 절반밖에 보지 못하는 것이다. 성벽 하나, 좁은 통로 하나에도 전쟁 경험이 들어가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울산왜성(학성). [사진=울산 중구]

울산왜성(학성) [울산시 문화재 자료]

구마모토에는 조선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흔적도 남아 있다. 구마모토성 서쪽 일대에는 지금도 우루산마치(蔚山町)라는 지명이 있다. 일본어로 읽으면 ‘우루산마치’지만 한자는 바로 울산이다. 가토 기요마사의 조선 출병과 관련하여 생겨난 지명이라는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전해져 왔다. 

조선에서 데려온 사람들이 이 일대에 거주했다는 전승도 있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이 언제 정착하여 이 지명이 생겼는지는 사료상 신중하게 볼 필요가 있다. 그래도 일본 규슈의 한 도시 한복판에 오늘날까지 ‘蔚山’이라는 두 글자가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구마모토와 조선의 역사적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가토 기요마사는 무엇보다 전쟁을 많이 겪은 사람이었다. 전국시대의 성은 영주의 저택이면서 동시에 최후의 피난처였다. 패하면 영지를 빼앗기는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가문의 생명이 끝날 수도 있었다. 따라서 성을 얼마나 튼튼하게 만들고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도록 설계하느냐는 생존의 문제였다.

구마모토성에 직접 들어가 보면 이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바깥에서 천수각을 보면 그저 저곳까지 걸어가면 될 것 같지만 실제로 들어가면 길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통로가 직선으로 뻗어 있지 않고 여러 번 꺾인다. 양옆에는 높은 돌담이 서 있고 문을 하나 통과했다고 해서 곧바로 중심부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성 내부에는 마스가타(枡形)라 불리는 사각형 방어공간과 여러 문, 좁은 통로가 겹겹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것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 적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오는 것을 막고, 좁은 공간에 몰아넣은 뒤 위와 옆에서 공격하기 위한 구조이다. 공격군 입장에서는 성문을 하나 돌파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벽이 나타나고, 방향을 틀면 또 다른 문과 방어시설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성을 지키는 병사는 높은 곳에서 적의 움직임을 내려다볼 수 있지만 공격하는 쪽에서는 다음에 무엇이 나타날지 파악하기 어렵다.

구마모토성의 가장 유명한 특징은 역시 독특한 돌담이다. ‘무사가에시(武者返し)’라고 부르는데, 글자 그대로 옮기면 ‘무사를 되돌려 보낸다’는 뜻이다. 아래쪽은 비교적 완만하게 시작하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급격히 가팔라지는 곡선형 석벽이다. 아래에서 보면 ‘저 정도라면 기어 올라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위로 갈수록 몸을 붙이고 버티기조차 어려워진다.

구마모토성의 독특한 돌담인 무사가에시. [사진=구마모토관광청]

더구나 성벽 위에는 수비병이 기다리고 있다. 성에는 돌을 떨어뜨리거나 아래쪽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이시오토시(石落とし) 같은 방어시설도 설치되어 있었다. 갑옷을 입고 무기까지 든 병사가 가파른 돌담을 올라가는 것만도 힘든데 머리 위에서 돌과 화살, 총탄까지 날아온다면 사실상 지옥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관광객이 바라보는 아름다운 곡선은 당시 공격군에게는 죽음의 벽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강한 성이라도 물과 식량이 떨어지면 끝이다. 적이 성을 함락시키는 방법은 반드시 정면 공격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성을 포위하고 몇 달이고 기다리면 된다. 그래서 좋은 성의 조건 가운데 하나가 장기간 농성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구마모토성에는 전성기에 우물이 100개가 넘게 있었다고 전해진다. 흔히 약 120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성안에 이렇게 많은 우물을 만든 이유는 간단하다. 포위되더라도 물이 끊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전쟁을 경험한 가토 기요마사가 물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식량에 관한 이야기는 더욱 재미있다. 구마모토성에는 비상시에 먹을 수 있는 식물을 활용했다는 여러 전승이 내려온다. 다다미의 표면은 이구사라는 풀로 만들고 속을 볏짚으로 채우는데, 구마모토성에서 사용한 다다미는 고구마줄기 말린 것으로 채웠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벽체도 식용 가능한 재료를 사용하여 농성 때 비상식량으로 삼을 수 있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다만 오늘날 관광 안내에서 널리 소개되는 이야기와 실제 축성 당시의 기록 사이에는 전승이 섞여 있으므로 그대로 역사적 사실로 단정하기보다는 ‘기요마사의 농성 대비 전설’ 정도로 이해하는 편이 안전하다.

화려하게 꾸며진 구마모토성 내부. [사진=구마모토관광청]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생겨난 것 자체가 흥미롭다. 구마모토 사람들에게 가토 기요마사는 단순히 성을 만든 영주가 아니었다. 전쟁을 대비해 우물을 파고, 하천을 정비하고, 농업과 치수에도 관심을 기울인 인물로 기억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구마모토에서는 그를 친근하게 ‘세이쇼코상(清正公さん)’이라고 부르는, 사랑받는 영주로 자리잡고 있다. 수백 년 전 영주가 현대 도시의 지역 문화 속에 여전히 살아 있는 셈이다.

구마모토성의 진짜 실력은 가토 기요마사가 죽은 뒤 한참 후에 시험대에 올랐다. 1877년 세이난전쟁(西南戦争) 때였다.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가 이끄는 사쓰마(지금의 가고시마) 군이 구마모토로 진격하여 성을 포위했다. 당시 성을 지키던 것은 메이지 정부군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에도시대의 봉건 영주가 만든 성을 근대 일본 정부군이 이용해 사무라이 반란군을 막은 것이다.

사쓰마군은 구마모토성을 쉽게 함락시키지 못했다. 성은 장기간의 포위에도 버텼다. 사이고 다카모리가 실제로 말했는지 어떤지는 논란이 있지만, “나는 정부군에게 진 것이 아니라 기요마사 공에게 졌다”는 유명한 말까지 전해진다. 그만큼 270년 전에 만들어진 구마모토성의 방어력이 강했다는 의미로 후대에 회자된 것이다.

그러나 구마모토성의 운명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세이난전쟁 직전인 1877년에 미스테리한 화재로 천수각과 주요 건물이 소실되었다. 그래서 지금의 천수각은 1960년에 철근콘크리트로 재건된 것이다. 그때 큰 역할을 한 것이 1874년에 찍은 사진 한 장이었다. 기왓장 하나까지 세세하게 세어서 참고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2016년 4월 구마모토를 강타한 대지진은 성에 다시 한번 엄청난 상처를 남겼다. 돌담이 무너지고 기와가 조각조각으로 파손되어 떨어졌으며 여러 건물이 파손되었다. TV 화면으로 돌담이 무너진 구마모토성을 바라본 구마모토 시민들의 충격은 엄청났다. 성은 관광지가 아니라 도시의 얼굴이자 자신들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2016년 4월 구마모토를 강타한 대지진으로 반파된 구마모토성. [AP=연합뉴스]

복구는 지금도 장기 사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이, 누구라도 1만 엔 이상 기부를 하면 ‘부흥성주’로 등록되는 제도이다. 지금까지 등록자가 24만 건이 넘고, 기부금이 43억 엔이 넘는다. 이것만으로도 구마모토성이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 성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복구공사는 무너진 돌 하나하나의 위치를 확인하고 번호를 붙여 가능한 한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 작업으로 진행됐다. 현대식 건물을 새로 짓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수백 년 전 사람들이 쌓은 성벽을 21세기 사람들이 다시 맞추고 있는 것이다. 

천수각은 1921년에 복구가 완료되었고, 성벽도 거의 완료되어 가는 시점에서 지난 7월 말에 발생한 7도의 지진이 또다시 성벽을 무너뜨렸다. 그래도 구마모토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또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복구해 낼 것이다. 그러므로 구마모토성에서는 전국시대의 축성술뿐 아니라 문화재를 복원하는 현대 일본의 방식까지 함께 볼 수 있다.

나는 구마모토성을 볼 때마다 이 성이 참 구마모토답다는 생각을 한다. 화려하기보다는 묵직하고, 섬세하면서도 강하다. 멀리서 바라보면 아름답지만 가까이 다가가 돌담을 올려다보면 전쟁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조선으로 건너갔던 가토 기요마사의 흔적이 있고, 세이난전쟁의 포탄의 흔적이 군데군데 찍힌 성벽의 돌도 남아 있다. 2016년 대지진의 상처도 남아 있고, 2026년도 지진의 상처도 안고 있다.

그래서 구마모토성은 한 번 사진만 찍고 돌아서는 관광지가 아니다. 돌담 하나를 보더라도 왜 이렇게 휘어져 있는지, 길 하나를 걷더라도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 놓았는지를 생각하면서 걸어야 재미있다. 그러다 성 아래에서 ‘蔚山町’이라는 지명까지 만나게 되면 한국 사람에게 구마모토성은 더욱 특별해진다. 조선과 일본의 전쟁사, 전국시대의 축성술, 메이지유신 이후의 내전, 현대의 대지진이 한 장소에 겹쳐 있기 때문이다.

구마모토를 여행한다면 그래서 나는 구마모토성을 가장 먼저 권하고 싶다. 천수각만 보고 내려오지 말고 천천히 돌담을 따라 걸어보는 것이 좋다. 무사가에시 앞에서는 고개를 들어 그 경사를 한번 올려다보고, 복잡하게 꺾인 길에서는 만약 내가 공격군 병사였다면 어디로 가야 했을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그러면 구마모토성이 달리 보일 것이다. 아름다운 일본의 옛 성 하나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것인가를 고민했던 전국시대 사람들의 지혜가, 돌과 길과 우물 속에 남아 있는 거대한 역사책처럼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구마모토성의 진짜 아름다움은 높은 천수각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아래 수십만 개의 돌과 복잡한 길 속에 숨어 있는 400년의 세월에 있다.


◆ 박명미 작가

일본 미식 여행 칼럼니스트. 이화여자고등학교 졸업, 일본 구마모토대학교 대학원 졸업(언어학 전공), 사가대학교·규슈산업대학교 한국어 강사. 저서로 한·일어 비교 연구서 ‘아나타는 한국인’(공저, 2006)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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