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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현 작가칼럼] 약자의 안전망 해체하는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
  • 박주현 작가
  • 등록 2026-08-24 20:2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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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자신이 아르바이트하던 경기 안산의 한 주점에서 성폭행을 당한 채단비(20) 양은 경찰이 두 달 뒤 ‘혐의 없음’ 불송치 결정을 내리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

억울함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스무 살 청년과 제주도 실종자의 비극을 두고 제도의 문제를 지적하자, 어김없이 진영 논리로 무장한 방어 논리들이 쏟아진다. 

검찰 얘기를 왜 꺼내느냐,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다, 억울하면 이의신청 제도를 활용하면 되지 않느냐, 과거의 검수완박과 지금의 보완수사권 폐지는 별개의 사안인데 왜 엮어서 정부를 공격하느냐는 식의 주장들이다.

감정을 덜어내고, 정말 아무나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친절하고 담백하게 이 사태의 타임라인과 법리적 진실을 설명하려 한다. 이 차가운 팩트를 마주하고도 과연 그 알량한 쉴드가 입 밖으로 나올 수 있을지 스스로 판단해 보길 바란다.

첫째, 과거의 법은 분명하게 ‘피해자를 배려하고 보호하는 입장’이었다는 사실이다.

지금 사람들은 억울하면 이의신청을 하면 된다고 가볍게 말하지만, 애초에 과거 시스템에서는 피해자가 그런 복잡한 절차를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다. 예전에는 경찰이 수사를 마치면 기소든 불기소든 무조건 사건 전체가 검찰로 넘어가는 100퍼센트 자동 송치 제도였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법을 몰라도, 이의신청서라는 복잡한 서류를 쓸 줄 몰라도, 국가의 법률 전문가인 검사가 의무적으로 수사 기록을 크로스체크하여 억울함을 알아서 걸러주었다. 돈 없고 빽 없는 약자를 우선적으로 보호하는 튼튼한 국가적 안전망이었다.

그런데 2020년 1월, 수사권 조정이라는 이름으로 경찰에게 사건을 자기들 선에서 덮어버릴 수 있는 불송치 결정권이 주어지면서 이 피해자 중심의 뼈대가 산산조각 났다. 이제 경찰이 가해자 말만 듣고 사건을 덮어버리면, 피해자가 직접 변호사를 구하고 법리를 따져가며 이의신청서를 써내야만 비로소 수사기관이 다시 움직인다. 

국가가 당연히 제공해야 할 보호망을 걷어차 버리고, 상처 입은 피해자 개인에게 스스로를 구제하라는 거대한 짐을 떠넘긴 것이다. 스무 살 청년이 차가운 불송치 통보서 앞에서 절망하다 목숨을 끊은 이유는, 바로 공권력이 더 이상 자신의 편이 아니라 느낀 절망감 때문이다.

둘째, 검수완박과 작금의 보완수사권 폐지가 전혀 상관없다는 주장의 무지함이다.

이 두 가지는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권력자의 방탄을 위해 사법 통제망을 해체해 온 완벽한 3부작 시리즈다. 2020년 경찰에게 덮을 권한을 준 정치권은, 2022년 4월과 5월 그 유명한 검수완박 법안을 180석의 완력으로 밀어붙였다. 이때 형사소송법에서 아주 치명적인 단어 하나가 삭제된다. 바로 고발인의 이의신청권 박탈이다.

아동 학대, 장애인 범죄, 권력형 비리처럼 피해자 본인이 직접 목소리를 내기 힘든 사건을 시민단체나 제3자가 고발했을 때, 경찰이 덮어버리면 이제는 이의신청조차 불가능하게 법으로 아예 입을 틀어막아 버렸다. 

그렇다면 이의신청조차 막힌 고발인이 수사의 억울함을 언론에라도 알리면 어떻게 될까. 지금 저들이 밀어붙이고 있는 법안에 따르면, 수사 내역을 언론에 제보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 구속까지 당할 수 있다. 이의신청이라는 합법적 절차를 박탈한 것도 모자라, 그 부당함을 고발하려는 입마저 사법적 흉기로 꿰매버리겠다는 소름 끼치는 입틀막이다.

그리고 10월이면, 그나마 남아있던 검찰의 보완수사권마저 완전히 폐지하여 경찰의 수사 독점에 완벽한 쐐기를 박으려 하고 있다. 덮을 권한을 주고, 고발인의 이의신청을 막고, 언론 제보를 징역형으로 묶어버린 뒤, 검찰의 보완 지시마저 끊어버린 이 일련의 과정이 어떻게 별개의 사안으로 보이는가. 서민의 억울함이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완벽한 밀실 생태계의 완성이다.

셋째, 검찰도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라는 양비론의 비겁함이다.

물타기라도 하려는 듯, 검찰이 사건을 부당하게 덮으려 할 때와 뭐가 다르냐 묻는 사람들도 있더라. 지금 경찰이 마음대로 수사를 덮을 때 피해자가 기댈 수 있는 구제 제도는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과거 피해자 중심의 제도하에서는, 검사가 권력의 눈치를 보며 사건을 무혐의 처분하려 해도 법적으로 보장된 겹겹의 사다리가 있었다. 억울하면 상급 기관인 고등검찰청에 항고하고, 대검찰청에 재항고할 수 있었다. 

그 검찰 조직 전체조차 믿지 못하겠다면 최종적으로 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제기해, 검찰이 아닌 판사에게 직접 기소 여부를 판단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었다. 수사기관이 덮으려 해도, 국가의 사법 전문가들이 끝까지 사건을 들여다보도록 강제하는 튼튼한 방어벽이 명백히 존재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 당신들이 옹호하는 제도는 어떠한가. 통제받지 않는 일선 경찰 한 명이 귀찮다며 사건을 덮어버리면, 그 서류는 애초에 법률 전문가인 검사나 판사의 책상 위로 올라가지도 못한다. 오직 억울한 피해자가 알아서 법리를 따져가며 이의신청서라는 거대한 장벽을 뚫어내야만 겨우 수사기관이 다시 움직인다. 심지어 고발인은 그 이의신청조차 할 수 없고 언론에 호소하면 감옥에 가야 한다.

본인이 담당한 실종 사건을 허위로 종결해 긴급 체포된, 제주 현직 경찰관에 대해 법원이 24일 석방 명령을 내리면서 민심이 동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

더 끔찍한 것은, 피해자가 피눈물을 흘리며 이의신청 장벽을 넘어 검찰로 사건을 올려보낸들, 지금 밀어붙이는 보완수사권 폐지가 통과되면 검사는 경찰의 부실 수사를 직접 파헤칠 권한마저 잃게 된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억울하면 판사에게까지 끌고 갈 수 있었던 튼튼한 밧줄을 모조리 끊어버리고, 금방이라도 끊어질 썩은 동아줄 하나 던져준 뒤 억울하면 이의신청하면 되지 않느냐고 훈계를 두는 것이 작금의 잔혹한 사법 현실이다.

이것은 진보와 보수, 경찰과 검찰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다.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해 약자를 보호하던 뼈대를 난도질한 결과, 돈 없고 빽 없는 평범한 서민들이 법의 사각지대에서 억울하게 목숨을 잃어가고 있는 현실 생존의 문제다.

제도가 망가져 무고한 시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도, 오직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권력자를 방어하겠다는 맹목적인 신앙심으로 이 차가운 죽음의 인과율을 외면하는 것은 무지를 넘어선 잔혹함이다. 

부디 알량한 진영 논리를 내려놓고 이 명백한 팩트와 마주하길 바란다. 이 끔찍한 제도의 결함 앞에서는 당신과 당신의 가족 역시 언제든 그 서늘한 사각지대의 희생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박주현 작가

작곡가, 음악감독, 칼럼니스트, 수필가. 페이스북에서 정치, 시사,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해 수많은 이의 공감을 얻고 있다. 에세이집 ‘폭풍의 바다를 건너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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