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박정희 대통령 시절 남덕우 재무부 장관과 ‘오 국보’라 불렸던 오원철 청와대 경제수석. 전두환 대통령 시절의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
작금의 엉터리 장관 인선 논란을 지켜보며, 좌파 진영이 그토록 저주하고 폄훼해 마지않는 과거 군사정권은 과연 어떻게 인사를 다루었는지 그 치열함과 무게감을 비교해보는 것이 현시점에서 가장 중차대한 과제라 여겼다.
하여 어제 새벽부터 지금까지 틈틈이 관련 사료와 기록을 모아 짧은 글을 남긴다. 보시는 분들께서는 낡은 이념의 선입견을 버리고 스스로의 양심에 물어 답을 찾아보시길 바란다. 과연 그들이 독재라 모욕해 마지않는 과거의 정부가 일국의 미래를 담보하는 장관이라는 자리를 어떻게 대우하고 발탁했는지를 말이다.
현재 거론되는 장관들의 처참한 면면이나 권력의 사적 셈법은 굳이 길게 논할 가치조차 없다.
우리가 철저하게 복기해야 할 것은, 절대 빈곤과 안보 위기라는 국가적 사활이 걸린 시기에 과거의 지도자들이 국정의 칼자루를 도대체 누구에게 쥐여주었는가 하는 서늘한 역사적 팩트 그 자체다.
1960년대와 80년대 국정 수뇌부는 장관 자리를 선거판을 기웃거리는 정치 브로커나 이념적 동지들에게 전리품으로 나누어주지 않았다. 오직 국가 산업 고도화와 물가 안정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고도의 공학적 이성과 경제적 합리성을 갖춘 테크노크라트들을 삼고초려하여 발탁했다.
196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남덕우 재무부 장관 발탁 과정은 국가 기획의 치열함을 증명하는 결정적 사료다.
당시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였던 남덕우는 정부의 경제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던 야당 성향의 깐깐한 학자였다. 그러나 최고 권력자는 자신을 비판한다고 괘씸죄를 묻는 대신, 청와대 비서관을 그의 강의실에 몰래 파견하여 그의 경제 철학과 전문성을 은밀하고도 철저하게 검증했다.
이념적 성향은 묻지 않고 오직 미시경제학에 입각한 자금 조달의 합리성 하나만 보고 그를 국가 경제 사령탑에 앉힌 것이다. 이 파격적 인선은 훗날 대한민국 고도성장의 뼈대를 구축한 이른바 서강학파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철저한 시장경제 원리와 성장 우선주의로 무장한 서강학파 테크노크라트들은 얄팍한 선거 논리나 포퓰리즘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실사구시에 입각하여 국가 자본의 흐름을 통제했다.
상공부 화공과장에 불과했던 공학도 오원철을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수직 발탁한 일화도 궤를 같이한다. 책상물림 관료나 정치인이 아닌 공장 바닥을 아는 현장 엔지니어에게 중화학공업의 설계도를 전적으로 일임하고, 그를 ‘오 국보’라 부르며 정치권의 외풍을 막아주는 방파제가 되어주었다.
나아가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을 설립할 당시 해외에서 유치한 과학자들의 월급이 대통령 본인보다 높은 것을 두고 정부 부처와 정치권이 형평성을 운운하며 흔들어대자, 봉급표대로 집행하라며 예산과 인사의 완벽한 자율성을 보장해 준 에피소드는 땀 흘리는 전문성에 대한 국가적 헌사를 웅변한다.
1980년대 초 살인적인 스태그플레이션 앞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스탠퍼드대 경제학 박사 출신의 김재익을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기용한 과정은 더욱 엄정하다.
군인 출신의 지도자는 경제에 대한 자신의 무지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라며 천재 관료에게 국정의 운전대를 온전히 넘겼다.
이 발탁의 진가는 1984년 제로베이스 예산 편성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1985년 총선을 앞두고 표가 떨어진다며 여당이 강력한 긴축 정책에 극렬히 저항하고, 심지어 군 출신 실세들이 예산실장 방을 찾아가 행패를 부리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때 최고 권력자는 현역 장성 두 명을 즉각 한직으로 좌천시키고 선거는 져도 좋으니 경제를 살리라며 포퓰리즘의 유혹을 단호히 쳐냈다. 정권을 창출한 일등 공신과 군부 실세들의 불만을 짓누르고, 오직 데이터와 경제 논리로 무장한 기술관료를 완벽하게 보호한 고독한 결단이었다.
1983년 북한의 버마 아웅산 테러로 이 천재 관료 김재익 장관이 이역만리에서 산화하는 비극적 유고를 맞았음에도, 국가 수뇌부는 그가 목숨 걸고 벼려낸 경제 안정화의 기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과거의 정부는 비록 권위주의적 한계를 지녔을지언정, 한정된 국가 예산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거시경제를 방어하기 위해 뼈를 깎는 고민을 거듭하던 바보 같은 전문가들에게 권력을 위임했다. 국가 발전이라는 단일하고도 숭고한 목표 앞에서 관직은 결코 측근들을 챙겨주는 이권 카르텔의 전리품이 될 수 없었다.
반면 입만 열면 민주주의와 공정을 부르짖으면서도 정작 부처의 전문성과는 무관한 맹목적 충성파들을 낙하산으로 꽂아 넣거나, 헌법 기관을 방탄용으로 사유화하는 작금의 행태는 어떠한가.
묻고 싶다. 천재들의 머리를 빌려 국가를 절대 빈곤과 위기에서 구출해 낸 이들이 정치가인가, 아니면 권력을 사유화하고 아마추어리즘으로 국가 시스템을 뇌사 상태로 몰아넣는 이들이 정치가인가. 서늘하고도 차가운 역사적 팩트와 마주한 독자들의 이성이 심판할 차례다.

◆ 박주현 작가
작곡가, 음악감독, 칼럼니스트, 수필가. 페이스북에서 정치, 시사,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해 수많은 이의 공감을 얻고 있다. 에세이집 ‘폭풍의 바다를 건너다’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