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략연구소 소장외교의 본질은 ‘국민보호’다
최근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납치·감금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국민들은 충격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단기 고수익을 노리는 인간심리와 국내 일자리 급감 현상을 이용하여 범죄조직에 유인된 젊은이들이 감금·고문당하고, 대사관 문 앞에서조차 “업무시간이 아니다”라 도와 줄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는 보도는 외교의 근본을 되묻게 한다.
외교는 국익 이전에 국민을 지키는 일이다. 국익이란 결국 국민의 생명과 존엄을 보호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성립된다. 외교관이 이 사명을 망각한다면 외교는 빛좋은 개살구로 껍데기일 뿐이다. 그동안 탈북민들이 주중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해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몇 번 들었어도 조직적으로 범죄에 연루되어 돌아오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영화 속의 이야기로만 전해 들었다.
시스템의 결함과 현장의 한계
캄보디아 납치 신고는 2022년 10여 건에서 2024년 330건으로 폭증했다. 이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국가적 대응시스템의 결함을 보여주는 수치다. 외교부는 “근무시간 외에도 긴급전화로 연락이 가능하다”고 해명하고 해외 출국 시 영사조력에 대해 안내문자를 보내고 있지만, 실상은 위기 시 즉각 대응할 인력과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았다.
대사관의 인력은 행정·의전·보고 업무에 묶여 있고, 정작 ‘국민보호’라는 본연의 임무에 집중할 여력이 부족하다. 현지 교민사회조차 “문제 발생 시 신속 대응이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제는 공관의 ‘24시간 대응체제’를 제도화하고, 위기대응 전문영사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외국에 피랍된 국민을 구출하기 위하여 군을 투입해서라도 구출하라고 할 정도로 국민들의 요구는 거센 반응을 표출했다. 미군 시민 몇 사람을 구출하기 위해 들어가다 비행기가 추락해 더 많은 인원이 희생되었을 때 군인의 죽음보다 미국 시민에 대해 더 많은 초점을 맞추었다.
투입된 군인은 구출임무를 수행하다가 사망한 것이기에 임무수행을 위해 죽을 수도 있음과 군의 존재 이유를 강조한 내용이었다. 군을 투입해서라도 구출하라고 국회에서 논의된 것은 선전포고를 하라는 뜻보다 군을 투입해서라도 국민을 구출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영화 블랙호크 다운은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러 들어갔다가 격추된 헬기승무원을 구출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외교관 인사정책, 보은이 아니라 전문직의 존엄으로
최근 일부 주요 공관 대사직이 장기간 공석이거나, 외교 전문성이 검증되지 않은 인사가 정치적 보은의 형태로 임명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수십 년간 현장에서 묵묵히 국익을 위해 일해온 전문직업 외교관들의 사기를 심각하게 꺾는 행태다.
국민은 외교의 품격을 인사에서 본다. 해외에서 일선 외교관이 얼마나 고생하며 국익을 지키는지를 안다면, 그들의 헌신에 정치적 음영을 덧씌우는 인사행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정부는 전문 외교인력의 경력과 헌신을 존중하는 인사정책, 그리고 주요 공관장 공석의 조속한 충원을 통해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외교는 국내정치의 연장이나 보은 수단이 아니라 국가운영의 핵심 기반이다.
공사 구분과 외교관 교육의 재정비
외교관의 본분은 사적 편의가 아닌 공적 임무다. 일부 정치적 인사들이 공관을 사적 공간처럼 이용하며 허드렛일을 강요하거나, 외교관들이 본업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관광안내나 요구하는 행태는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
또한 외교관 선발과 교육 과정에서도 영사조력 실습, 위기관리 시뮬레이션, 국민소통 훈련이 강화되어야 한다. 진정한 외교관은 언어와 문서를 잘 다루는 사람이어야 할뿐만 아니라, 위기의 순간에 국민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이다.
외교의 신뢰는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익을 지키는 외교는 국민의 신뢰 위에서만 가능하다. 외교관이 국민에게 믿음을 주면, 국민은 그들의 노고를 이해하고 응원한다. 반대로, 외교가 권력의 도구로 변하면 국민은 등을 돌린다.
캄보디아 사태는 단순한 해외 범죄 사건이 아니라, 대한민국 외교의 본질을 다시 묻는 경고이다. 외교부와 정부는 이번 일을 계기로 국민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외교정책과 인사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외교의 품격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외교관들이 묵묵히 국익과 국민을 위해 일하고 있다. 그들의 헌신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가려져서는 안 된다. 외교의 중심에는 오직 국민이 있어야 하며, 외교관은 그 국민을 지키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정부는 보은인사 대신 전문외교, 사후대응 대신 선제보호, 관료적 변명 대신 책임외교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외교의 본분이며, 문명국가의 품격이다.
주은식 한국전략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