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동규(왼쪽)-김만배. 연합뉴스.
유동규(왼쪽)-김만배. 연합뉴스.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에 연루된 민간업자들에게 1심에서 중형이 선고됐다. 2021년 말 기소된 지 약 4년 만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조형우 부장판사)는 31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대장동 민간업자들과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선고 공판에서 모두 유죄를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유 전 본부장에게는 징역 8년과 벌금 4억원, 추징 8억1천만원이 선고됐다.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는 징역 8년과 428억원 추징이 내려졌다. 남욱 변호사와 정영학 회계사는 징역 4년과 징역 5년을 각각 받았다.
공사 전략사업실 투자사업팀장으로 일한 정민용 변호사는 징역 6년과 벌금 38억원, 추징금 37억2천200만원이 선고됐다.
검찰은 유 전 본부장과 정 변호사에게 각각 징역 7년과 징역 5년을 구형했는데, 구형량보다 높게 나왔다.
다만 기소했던 특경법상 배임 혐의는 액수 불특정 등의 사유로 인정되지 않았고, 형량이 낮은 형법의 업무상 배임죄만 인정됐다.
재판부는 이들이 공사 설립과 수용방식 결정 과정에서 유착관계를 형성했고 사실상 사업시행자로 내정되는 특혜를 받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장기간에 걸쳐 금품 제공 등을 매개로 형성한 유착관계에 따라 서로 결탁해 벌인 일련의 부패범죄"라고 규정했다.
이어 "유착관계 형성과 사업자 내정에 따라 공모지침서에 민간업자들의 요구사항을 반영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게 했다"면서 "사업시행자 선정 과정의 공정성, 청렴성과 그에 대한 사회 일반의 신뢰를 현저히 훼손한 행위로서 사회적 비난가능성이 크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또 "피고인들이 협의해 예상이익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확정이익 방침을 정해 공모공고 절차를 진행하고, 사업이익 증가에 대비한 초과이익 배분 주장마저 묵살한 채 그대로 사업협약이 체결되도록 해 지역주민과 공공에 돌아갔어야 할 막대한 택지 개발이익이 민간업자들에게 배분되는 재산상 손해 위험을 초래했고, 실제 배당 결과 위험이 현실화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실질적 피해가 전혀 회복되지 않았고, 회복을 위한 조치도 없었다고 질타했다.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31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31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원은 유동규 전 본부장은 공사에 있으면서 개발사업 실질 책임자로서, 민간업자들과 결탁해 위법을 저질렀다고 평가했다. 민간업자에 대해선 일당의 대표 격인 남욱 변호사, 이익구조를 설계한 정영학 회계사, 두 사람이 설계해 추진한 대장동 개발 사업의 로비 역할로 영입된 기자 출신 김만배씨, 남 변호사 추천으로 공사에 들어가 내부자가 돼 일당과 공모한 정민용 변호사 각자에 대해 개별 가담 정도와 역할에 따라 형량을 정했다.
우선 유 전 본부장은 민간업자들을 대장동 개발사업의 사업시행자로 사실상 내정하고, 공모지침서에 이들의 요구를 반영해 실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는 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혐의가 인정됐다. 법원은 "사업계획서 심사 절차에서도 민간업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채점해 민간업자들이 구성한 성남의뜰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도록 했다"며 "민간업자들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는 유리한 지위를 선점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결국 대장동 개발사업 공모 절차는 유동규와 정민용이 민간업자들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다는 목표를 갖고 민간업자들의 요청을 반영하거나 편의를 봐주는 일련의 과정"이라며 "공사와의 신임 관계를 저버리고 공정한 공모 절차를 거쳐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해야 하는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라고 봤다.
대장동 사업 과정에서 공사는 확정이익만 갖고, 나머지 개발이익은 모두 민간업자들이 갖도록 만들어진 사업방식으로 공사가 손해를 입었다고 인정됐다.
재판부는 "민간업자들은 1공단 공원화 비용을 제외하고도 예상 개발이익이 4천억원을 초과할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예상했다"며 "그럼에도 개발이익을 축소해 공사가 전체 이익의 절반을 취득하는 것처럼 외관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공사는 대장동 개발 사업으로 1천822억원만 확정이익으로 배분받았는데, 법원은 이보다 훨씬 많았던 실제 이익을 받지 못해 재산상 손해를 봤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이들에게 검찰이 기소한 특경법상 배임죄가 아닌 형법의 업무상 배임죄만 적용했다. 특별법이 아닌 일반법이 적용되면서 처벌 수위는 낮아졌다.
재판부는 "특경법상 배임의 손해액은 엄밀한 증명이 있어야 한다"며 "당시 사업으로 인해 어느 정도의 액수를 얻게 될지는 정확한 산정이 불가해 업무상 배임죄만 인정하고 특경법상 배임은 인정하지 않겠다"고 설명했다.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남욱 변호사가 31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남욱 변호사가 31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5명의 양형 이유는 역할 정도에 따라 달랐다.
유 전 본부장에 대해서는 "금품 등을 매개로 민간업자들과 유착 관계를 형성해 공사에 막대한 손해를 가할 위험을 초래했다"며 "대장동 개발사업에 대한 공사의 실질 책임자로서 민간업자들과 사이에 조율한 내용을 승인받아 그대로 진행해 배임 행위를 주도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유 전 본부장이 남 변호사로부터 3억1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도 인정했다. 다만, 수사 과정에서 범행을 인정해 실체 파악 단서를 제공하고, 성남시 수뇌부가 주요 결정을 하는 데 있어 민간업자들과 의견을 조율하는 중간관리자의 역할을 주로 담당했다고 봤다.
김씨에 대해서는 남욱, 정영학이 이끈 개발사업 초기에는 관여하지 않았던 점을 거론하면서, 하지만 이후 가세해 "민간 측 최대 지분권자(49%)이자 실질 대표로서 최종 결정을 내리는 등 배임 범행에 적극 가담했고, 배당 결과 가장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고 판단했다.
남 변호사의 경우 대장동 개발사업 초기부터 이를 이끈 사람이며 김만배에게 사업 주도권을 내준 2014년 말경까지 "민간업자들의 대표로서 유동규 등에게 거액의 금품 등 재산상 이익을 제공해 유착관계를 형성하고, 민간업자들이 사업시행자로 내정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남씨는 사업 추진 과정에서 구속되면서 자신을 대신해 역할을 하고 대관 업무를 추진하기 위해 김만배씨를 끌어들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다만 배임 가담 정도가 상대적으로 가볍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정 회계사에 대해서는 "남욱과 함께 초창기부터 대장동 개발사업을 진행하면서 PF대출 자금조달, 컨소시엄 구성, 사업계획서 작성, 사업수지 추정 등 배임 과정에서 민간 측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수사 과정에서 이른바 '정영학 녹취록'을 제공한 게 유리한 정상으로 인정됐다.
이밖에 정 변호사에 대해서는 "공사에 손해를 가할 염려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면서도 객관적·합리적 검토를 거치지 않은 채 무비판적으로 민간업자들의 요청사항을 수용했다"고 밝혔다. 남 변호사로부터 37억2천200만원의 뇌물을 받고 관련 서류를 허위로 작성한 점도 양형에 반영했다.
다만, 서판교터널 사업과 관련한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는 모두 무죄로 판단됐다. 검찰은 '개설 위치와 해당 위치에 터널이 언젠가 개설될 것'이라는 정보가 이해충돌방지법상 비밀이라 주장했지만, 법원은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또 김씨가 유 전 본부장에게 5억원을 주고, 428억원을 추가로 주기로 약정한 데 대해서는 이미 공동 배임으로 비롯된 재산상 이익 중 일부를 사전 모의한 대로 분배한 것에 불과해 추가로 뇌물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이들은 대장동 개발 사업과 관련해 화천대유에 유리하도록 공모 지침서를 작성, 화천대유가 참여한 성남의뜰 컨소시엄이 우선협상자로 선정되도록 해 7천886억원의 부당이득을 얻고, 공사에 4천895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 등으로 2021년 10∼12월 기소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