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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보 편집위원·한국군사평론가협회장·환동해미래연구원장동아시아 국제정세가 요동을 치며 달포 가까이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있다. 최근 타까이찌 사나에(高市早苗) 신임 일본 여성총리의 다층적으로 계산된 “대만 유사시” “일본의 개입” 공언으로 촉발된 중일간의 충돌 때문이다. 지난 11월 초순 트럼프 대통령이 주창한 "반공주의 주간"(Anti-Communism Week, 2~8일)의 선언과 맞물리면서 세계적 차원에서 반공산주의 인식도 함께 확산되고 있다.
트럼프는 어느 나라를 염두에 두고 반공주의 주간을 선언했을까? 그 전략적 노림수와 정치적 함의가 무엇이었는지는 백악관이 선언문에서 “공산주의 체제에 의해 희생된 1억 명 이상의 생명을 추모”하고, “신앙을 말살하고 자유를 억압하며 번영을 파괴하는 파괴적인 이데올로기에 맞서겠다”는 결의를 표명한 대목으로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동아시아 지역 내 전쟁발발 가능성이 있는 진원지의 한 곳으로서 이번 중일 격돌의 발단이 된 대만 역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국내적으로 갈등과 진통이 증폭되고 있다. 여기엔 관점과 입장에 따라서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으로 약칭)과 제3차 합작을 통한 중국 통일을 주장해 온 중국 국민당(약칭 '국민당')의 입장에선 중공의 침공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위험천만한 위기 상황으로 인식되지만, 대만독립 정책을 일관되게 지속해오는 집권 민주진보당(약칭 '민진당') 세력에겐 대만이 세계 외교 무대에 도약할 기회가 도래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민진당에겐 미국의 대만 지지와 지원도 설중송탄(雪中送炭)의 호재다. 바이든 전대통령과 트럼트 현 대통령을 막론하고 여야 공히 중국을 견제코자 대만을 국제무대에 등장시키기 위해 각종 대만 지원 관련 법안들을 통과시켜왔다. 서방 유럽 국가들 또한 불과 반년도 지나지 않은 올해 상반기의 태도와 달리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과감하게 대만과의 관계를 강화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국제관계의 상황 변화와 흐름은 외부 제3자의 국가 단위 시각에서 보면 대만이 1971년 10월 유엔에서 퇴출된 이래 중국의 포위망에서 벗어나 국제 무대에 올라설 만큼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호기로 보인다. 물론 대만의 여야가 초당적으로 협력해서 기회를 더욱 발전시켜야만 탄력을 받을 것임은 불문가지이다.
그런데 대만 내부 상황은 '통일'과 '독립'이라는 고질적인 문제에 발목이 잡혀 전망이 밝지 않다. 분단상황의 지속과 통일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과 엇비슷한 구조다. 지난 주 대만에서 있었던 여론조사(TPOF)에서 라이칭떠(賴淸德) 총통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긍정적 지지율보다 많이 높게 나왔다. 라이칭떠의 총통 직무 만족도 37.9% vs 라이칭떠의 총통 직무 불만족도 50.2%, 민진당 지지도 24.1% vs 국민당 지지도 20.5% vs 대만 민중당 지지도 17.8%로 조사됐는데, 이 수치에 대만인의 현 정서가 내재돼 있다.
이 여론조사에서 라이칭떠 총통의 지지율이 작년 1월 중순의 총통 선거에서 얻었던 40.05%보다 하락하고 반대여론이 더 많아진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의 위협이라는 거대 담론에 가려진 민생 문제와 내부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대만 민중의 불만이 표출된 결과다. 또한 방위라는 명분하에 라이칭더가 중국에 끝까지 '맞짱' 뜨겠다는 듯한 대응 의지에서 강화해온 국방비 증가나 반중공 미국 일변도의 민진당의 대외 정책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 그리고 여소야대 입법회 상황에서 캐스팅보트권을 쥐고 있는 민중당의 전폭적인 지지 내지 협력을 이끌어내지 못한 정치력 부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기도 하다.
여야의 대립과 총통 및 집권당에 대한 이러한 지지율 저하는 내가 이미 진작부터 예견한 바 있다. 작년 1월 총통선거와 의회 총선이 동시에 치뤄진 선거 다음날 선거결과를 분석하면서 민진당이 입법원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한 사실에 근거해서 그렇게 주장했었다. (당시 전체 113석 중 민진당은 51석에 그친 반면, 국민당은 52석, 대만민중당은 8석을 차지해서 2004년 이후 처음으로 어느 정당도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여소야대’ 국회가 구성되었다.)
향후, 라이칭떠 정부가 세계 외교무대에 올라서려면 다수 국민의 지지와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지금까지 민진당이 일관되게 당론으로 주장해오던 “대만 독립”(台獨) 주장을 완전히 포기하고 접겠다고 선언해야만 상황이 전향적으로 반전될 수 있다. 하지만 라이칭떠와 민진당이 당의 존립을 허물어질지게 만들 대만 독립지지자들에게 등을 돌리면서까지 그렇게 할 가능성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대만의 양대 유력 정당인 국민당과 민진당이 서로 초당적 협력이 되지 않고 있는 이유도 동양적 정치 내지 권력 문화라는 특수한 상황이 밑바닥에 깔려 있기도 하지만 바로 이 같은 국가체제 및 이념문제와 결부된 구조적 길항 대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현재 대만 정치의 극한 대립과 교착 상태는 단순히 여야 간의 정책 차이를 넘어서 국가의 정체성과 미래를 둘러싼 근본적인 이념문제와 결착돼 있다. 여기에다 시진핑 주석의 대만에 대한 무력침공 의지가 야기시키는 대만의 안보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민진당이 ‘대만’이라는 독자적인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면서 중국과의 분리 및 독립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반면, 국민당은 역사적으로 ‘하나의 중국’(One China) 당론에 근거해서 중공과의 화해와 협력, 나아가 전체 중국의 통일을 지향하는 노선을 견지해오고 있다.
지난 달 10월 18일, 강경파 친중 성향의 쩡리원(鄭麗文)이 국민당의 새로운 당 주석으로 당선되면서 여야 대립은 더욱 첨예해졌다. 당선 직후 “국민당의 책무 중 하나는 중국공산당과의 화해”라고 밝힌 쩡 주석의 언표는 앞으로 여야 갈등의 파고가 낮아지지 않을 것임을 예감케 한다. 국민당이 향후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삼으면서 민진당의 대중 강경 노선에 사사건건 반대할 의사임을 명확히 한 셈이다.
그런데다 대만에 대한 “통일전선전술” 공작을 진두지휘해오고 있는 시진핑이 즉각 쩡리원에게 축전을 보내 “국가 통일을 추진하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도 여야 대립을 고조 혹은 지속시킬 것이다. 말하자면 대만도 지금 한국처럼 중공이 쳐놓은 초한전의 그물과 그 갈라치기의 와중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도는 역사 및 지정적 안보 상황과 정치문화가 서구와 질적으로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어서 쉽게 소멸되지 않는다. 대만이나 한국이나 공히 미국과 달리 국가 안보와 같은 초당적 협력이 필요한 사안조차 끊임없이 정쟁의 도구가 되어오고 있는 것도 여기에도 연원을 두고 있다. 라이칭떠 정부가 중공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편승해서 2030년까지 국방비 예산을 GDP의 5%까지 늘리고, 400억 달러 규모의 특별 국방예산을 편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국민당은 이를 “대만을 전쟁의 불길로 몰아넣는 불장난”이라고 비판하며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이처럼 현재 라이칭떠의 강력한 국방력 강화 의지와 시도는 초당적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국민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여당의 국방비 증액과 이른바 ‘고슴도치 전략’(Hedgehog Strategy)의 추진에 지속적으로 반대하기 때문이다. 국민당은 국방예산 증액조치는 침공 억제가 아니라 오히려 중공을 자극해 전쟁 위험을 키운다고 여당을 몰아부치고 있다.
초당적 협력의 부재는 정책의 옳고 그름에 대한 합리적 토론이 아니라 ‘독립이냐 통일이냐’라는 근본적인 국가 이념의 상이와 정체성의 대립에서 비롯되고 있다. 국민당은 민진당 정부의 국방력 강화 노력이 대만 독립을 가속화하여 중국의 침공을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반면, 민진당은 국민당의 유화적 태도가 중공의 위협을 과소평가하고 대만의 안보를 약화시킨다고 비판해오고 있다.
평행선을 달리는 이러한 대중공 인식 및 현실을 보는 시각 차이에선 타협의 여지가 생겨날리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가의 존립이 걸린 안보 문제에서조차 초당적 협력이 불가능한 대만의 정치적 현실이다. 민진당과 국민당 간의 국가 노선 대립과 마찰은 단순한 정책 경쟁의 경계를 넘어서 있다. 그것은 대만의 국가 정체성과 미래의 국가 존립 양태와 방향을 둘러싼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의 양상을 띄고 있다.
국민당이 입법원의 주도권을 가지고 국방비 증액, 대미 관계 강화 등등 민진당 정부의 중공대결 노선 관련 핵심 정책들을 일일이 저지하면서 중공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재집권을 위한 정치적 활로를 모색하려고 하는 한, 대만의 분열과 정치적 교착 상태는 지속될 것이다. 이는 중공의 위협에 맞서야 하는 민진당 지지파 대만인들에겐 가장 큰 내부적 취약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과거사의 미청산에서 비롯된 전래의 민족적 반목 및 우월의식에다 지역 패권을 노리는 중일 두 강국의 지도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자존심까지 결부돼 날카롭게 대립되고 있는 충돌이 어느 선에서 봉합되고 대결 국면이 사그라들어도 대만 내 통일과 독립을 둘러싼 여야의 대립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중공이 시대착오적인 이념문제에다 건국 이래 지금까지 누적된 여러 가지 내부 문제의 무게에 눌려서 저절로 붕괴되지 않는 한!
한미일보 편집위원·한국군사평론가협회장·환동해미래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