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는 이야기를 통해 당대의 어두운 면을 경험한다. 영화 ‘올리버 트위스트’ 스틸컷.
문학의 세계는 신기한 장소다. 같은 이야기가 계속 등장한다. 처음에는 하나의 작품에 등장한 설정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눈을 넓혀 보면 여러 작품이 비슷한 구조를 반복한다. 주인공은 억압받는다. 권력은 부패한다. 사회는 불공정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저항이 등장한다.
작품마다 이름은 다르고 시대도 다르다. 그런데 독자가 느끼는 정서는 놀랄 만큼 비슷하다. 이것이 바로 반복 서사의 힘이다. 문학은 논문처럼 논리를 전개하지 않는다. 대신 같은 정서를 계속 체험하게 만든다. 그 반복이 쌓이면 독자는 특정한 세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익숙함이 진실처럼 느껴질 때
처음에는 하나의 이야기다. 그러나 여러 번 접하면 그것은 상식처럼 느껴진다. 인간의 사고는 반복에 약하다. 심리학자들이 오래전에 관찰한 현상이다.
같은 내용을 여러 번 접하면 사람은 그 내용의 사실 여부를 따지기 전에 익숙함을 먼저 느낀다. 그리고 익숙함을 신뢰로 착각한다. 이 현상을 연구자들은 ‘반복 효과’라고 부른다.
같은 말이 계속 들리면 그것이 더 그럴듯하게 들린다. 문학은 바로 이 메커니즘을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작가들이 의도적으로 계산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는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비슷한 이야기들이 연쇄적으로 등장한다.
19세기 유럽 소설을 떠올려 보자. 산업화가 진행되던 시기였다. 도시에는 노동자가 몰려들었고, 빈부 격차가 커졌다. 이 시대의 소설들은 놀랄 만큼 비슷한 장면을 반복한다.
공장 노동자의 고통, 가난한 가족의 생활, 부유한 계층의 냉정함. 찰스 디킨스의 작품을 읽어 보면 이런 장면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올리버 트위스트’에서도 그렇고 ‘하드 타임스’에서도 그렇다.
독자는 그 이야기를 통해 산업 사회의 어두운 면을 경험한다. 디킨스 한 사람만 그런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니다.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많은 작가가 비슷한 정서를 다뤘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활동했지만, 독자가 느끼는 정서는 거의 같다. 그 결과 산업 사회에 대한 하나의 이미지가 형성되었다.
억압, 저항, 해방 구조에 이미 익숙해진 독자
반복 서사는 독자의 판단 습관에도 영향을 준다. 소설을 많이 읽는 사람은 현실을 볼 때도 이야기 구조를 사용한다. 누가 약자인지, 누가 권력자인지, 누가 부패했는지 판단하려 한다. 이것은 인간 두뇌의 자연스러운 작동 방식이다.
인간은 복잡한 현실을 이해할 때 이야기 구조를 사용한다. 이야기에는 시작과 갈등과 해결이 있다. 등장인물도 선과 악으로 나뉜다. 문학은 바로 이 구조를 이용해 세계를 설명한다.
흥미로운 점은, 서로 다른 작품이 비슷한 정서를 반복하면 독자는 그 정서를 자연 법칙처럼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권력은 타락한다”는 생각을 보자. 역사적으로 권력이 타락한 사례는 많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문학에서는 부패한 권력자가 자주 등장한다. 여러 작품이 이 패턴을 반복하면 독자는 이것을 인간 사회의 기본 규칙처럼 느끼게 된다. 현실은 훨씬 복잡하지만, 이야기 속에서 훈련된 감각이 현실 판단에도 영향을 준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하나 있다. 반복 서사는 단순한 복사가 아니다. 같은 이야기 구조가 다양한 형태로 변형된다. 어떤 작품에서는 왕이 폭군으로 등장한다. 다른 작품에서는 기업가가 악역이 된다. 또 다른 작품에서는 정부 기관이 억압자로 묘사된다.
표면적인 모습은 다르다. 그러나 독자가 느끼는 정서는 동일하다. 억압, 저항, 해방. 이 감정의 흐름이 반복될수록 독자는 특정한 도덕 구조에 익숙해진다.
문학사가들은 이 현상을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러시아의 문학 이론가 블라디미르 프로프는 민담을 분석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수백 편의 민담을 조사했더니 이야기의 구조가 거의 동일했다. 주인공이 집을 떠난다. 시련을 겪는다. 도움을 받는다. 마지막에 승리한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바뀌지만 구조는 반복된다.
프로프는 이것을 이야기의 기능이라고 불렀다. 인간 사회는 오래전부터 비슷한 구조의 이야기를 반복해 왔다.
문학의 반복은 문화 전체와도 연결된다. 한 사회가 어떤 이야기를 반복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자기 인식이 달라진다. 미국 문학을 보면 개인의 모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넓은 대륙을 배경으로 개인이 길을 떠나는 이야기다.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핀의 모험(The 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 표지. 이지컴북스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대표적인 예다. 이 작품은 단순한 모험담처럼 보이지만, 미국 문화의 핵심 요소를 보여 준다. 자유, 이동, 개인의 결단. 이런 이야기가 여러 작품에서 반복되면서 하나의 문화적 이미지가 형성된다.
일본 문학에서도 반복 서사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패배한 무사의 미학’이라는 주제가 자주 등장한다. 사무라이는 전투에서 패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명예를 지킨다. 이런 장면은 수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반복된다.
문학은 세계를 해석하는 한 가지 방식일 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작품에서도 이런 정서를 볼 수 있고, 현대 대중문화에서도 이어진다. 반복되는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미학을 만든다.
문학의 반복은 때로는 위험하기도 하다. 특정한 이야기 구조가 너무 강해지면 현실을 단순하게 해석하게 된다. 복잡한 사회 문제도 하나의 이야기 틀 속에 억지로 끼워 넣게 된다.
예를 들어 모든 문제를 “억압자 대 피해자” 구조로 설명하려 하면 현실의 다양한 요소가 보이지 않게 된다. 이야기 구조가 현실을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현실을 가리는 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문학을 읽을 때는 약간의 거리감이 필요하다. 이야기 속 정서를 그대로 현실 판단에 적용하면 곤란하다. 문학은 세계를 해석하는 한 가지 방식일 뿐이다.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여러 작품이 같은 방향을 가리킬 때 특히 주의해야 한다. 반복은 설득력을 강화한다. 그러나 반복이 진실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 점을 이해하면 문학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작품 속 이야기만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야기가 반복되는지도 보이기 시작한다. 왜 이런 정서가 여러 작품에서 나타나는가. 어떤 시대 분위기가 이런 반복을 만들었는가.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문학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다. 사회의 상상력을 훈련하는 장치다. 반복 서사는 그 훈련의 핵심 기술이다. 같은 정서를 계속 경험하게 만들고, 그 정서를 자연스럽게 느끼게 한다. 그래서 문학은 조용하지만 강력하다. 법이나 제도처럼 직접적인 힘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세계를 이해하는 틀을 조금씩 바꾼다.
이 현상을 이해하면 문학의 세계가 훨씬 흥미롭게 보인다. 한 편의 작품만 보면 그저 이야기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같은 정서가 반복되는 흐름을 보면 하나의 문화적 힘이 보인다. 문학은 그 힘을 통해 사회의 상상력을 천천히 움직인다.

◆ 松山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역사심리학 해설서 ‘신화가 된 조선’(2026)을 펴냈다. 현재 자유주의 문화운동의 연구와 실천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松山은 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