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헌법 개정안 분석] ‘최소 개헌’이란 탈을 쓴 쟁점 5가지 <2부>
  • 김영 기자
  • 등록 2026-04-05 18:23:32
기사수정

<목차> 

① 지방선거 동시실시, 참여 확대인가 투표율 계산인가

② 헌법 전문에 부마·5·18, 추모인가 정통성 재서술인가

③ 계엄 승인권 개헌, 재발방지인가 의회 우위 개헌인가

④ 부칙의 한 줄, 경과규정인가 1심 논리의 정당화 효과인가

⑤ ‘균등한 삶의 질’의 함정, 지역발전인가 국가주의의 헌법화인가

⑥ 종합- 무엇이 문제인가


개헌 추진 정당 원내대표 국회의장과 회견. 국민의힘은 헌법개정에 반대해 이날 합의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사진=연합뉴스]


④ 부칙의 한 줄, 경과규정인가 1심 논리의 정당화 효과인가

 

12·3을 계기로 계엄 조항을 고치면서

부칙엔 “종전 헌법상 유효한 처분·행위는 새 헌법상 행위”

쟁점은 의도가 아니라, 항소심이 기대어 설 수 있는 정당화 효과

 

이번 개헌안에서 가장 예민한 대목은 의외로 본문보다 부칙이다. 


개헌안은 부칙 제2조 2항에 “종전의 헌법에 따라 유효하게 행해진 처분, 행위 등은 이 헌법에 따른 처분, 행위 등으로 본다”고 적었다. 문장만 떼어 보면 흔한 경과규정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개헌안은 제안이유에서 12·3 비상계엄을 직접 거론하며, 현행 헌법은 위헌·위법한 계엄 시도에 대한 대비책이 부족했고 그래서 계엄해제요구권을 해제권으로 강화하고 승인권을 도입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다시 말해 12·3을 계기로 계엄 조항을 고치겠다고 선언한 같은 문서 안에, 종전 헌법상 유효한 국가행위의 연속성을 적어 넣은 것이다.


이 조항의 문제를 단순한 입법기술로 넘기기 어려운 이유는, 지금 이 문제가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 재판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항소심은 서울고법 형사12부에 배당됐다. 항소심에선 계엄 모의 시점과 준비 정도, 1심이 받아들이지 않은 증거들의 평가 등이 다시 쟁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결국 법정에서 다퉈지는 핵심은 단순히 12·3이 정치적으로 적절했는가가 아니라, 당시 국가행위가 법적으로 어떤 성격을 갖는가 하는 점이다.


이 대목에서 분명히 할 것은, 이 부칙이 곧바로 재판 결과를 바꾸는 조항은 아니라는 점이다. 형사재판은 어디까지나 행위 당시의 헌법과 형법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헌법 제13조는 행위시법주의를 두고 있고, 소급입법에 의한 참정권 제한과 재산권 박탈을 금지한다. 헌재 역시 이미 종료된 사실관계에 새 법을 거꾸로 적용하는 진정소급입법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봐 왔다. 


따라서 이 부칙 한 줄이 12·3 당시 행위의 위법성을 즉시 뒤집거나, 1심 유죄 판단을 자동으로 살려 주거나 죽여 주는 조항이라고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렇다면 왜 문제가 되느냐. 


핵심은 효력보다 정당화 효과에 있다. 


1심 재판은 12·3 계엄을 내란으로 판단했지만, 그 법리 구성에는 무리와 비약이 적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그런데 뒤이어 발의된 개헌안이 부칙에서 종전 헌법상 유효한 행위를 새 헌법상 행위로 본다고 적는다면, 항소심에서는 1심의 취약한 논리에 헌법적 권위를 덧씌우는 방향의 해석이 힘을 얻을 수 있다.


즉 이 조항의 위험은 결과를 미리 정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1심이 세운 판단 구조를 후행 헌법질서의 연속선 위에서 더 쉽게 읽게 만드는 데 있다. 


같은 문서 안에서 한편으로는 현행 헌법의 계엄 통제 구조가 미비했다고 선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종전 헌법 아래 유효한 국가행위의 연속성을 적는 순간, 재판부 앞에는 “당시 국가작용을 새 헌법 질서와 단절된 것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는 식의 해석 재료가 추가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이번 부칙은 평범한 경과조치와는 다르게 읽힌다. 평시라면 “법질서 전환 과정에서 기존의 적법한 국가작용을 계속 유효하게 본다”는 취지로 소화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12·3을 직접 계기로 계엄 조항을 고치는 개헌안이다. 그런 문서에서 “유효하게 행해진 처분, 행위 등”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행정 연속성의 문구를 넘어, 지금 법정에서 다퉈지는 국가행위의 적법성과 유효성 판단과 자연스럽게 접속된다. 


이 때문에 조항의 무게가 커진다. 조문 하나가 판결문을 직접 바꾸지는 않더라도, 판결을 둘러싼 해석 환경을 바꾸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개헌안 제안이유는 현행 헌법의 계엄 통제 구조가 부족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승인권과 해제권 강화를 도입한다고 적고 있다. 이는 곧 입법자가 스스로 현행 질서의 불충분함을 인정하는 셈이다. 


그런데 같은 개헌안이 부칙에 종전 헌법상 유효한 국가행위의 연속성을 적어 놓으면, 항소심에서는 역설적으로 “행위 당시 현행 헌법 질서는 지금처럼 엄격하지 않았고, 개헌권력도 그 전제 위에서 종전 국가작용의 유효성을 새 질서로 넘겨받고 있다”는 식의 반대 논리 역시 살아날 수 있다. 


이 점이야말로 이 부칙이 단순한 부속 문장에 머물지 않는 이유다.


질문은 이것이면 충분하다. 


왜 하필 12·3을 계기로 계엄 조항을 고치면서, 동시에 종전 헌법상 유효한 국가행위의 연속성을 선언하는 부칙까지 함께 넣었느냐는 것이다. 


정말 평범한 경과조치가 필요했다면, 최소한 이 조항이 현재 진행 중인 유효성·위법성 판단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취지의 단서를 둘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안전장치 없이 이 문장을 그대로 넣은 이상, 조항은 더 이상 중립적이지 않다. 이건 정치적 의미를 억지로 덧씌운 해석이 아니라, 조문이 스스로 불러오는 해석상의 부담이다.


결국 이번 개헌안 부칙의 쟁점은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문제는 정당화 효과다. 1심 재판이 세운 논리의 타당성과 별개로, 이 한 줄은 항소심에서 그 판단에 후행 헌법질서의 무게를 싣는 해석 근거로 동원될 수 있다. 


내란의 위법성 판단 자체를 곧바로 바꾸는 조항은 아니더라도, 1심의 취약한 논리에 헌법적 외피를 한 겹 더 씌워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지 않다. 


개헌안에서 가장 짧은 문장이, 가장 긴 파장을 낳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무위키에 쓰여진 국가주의 설명 캡처 


⑤ ‘균등한 삶의 질’의 함정, 지역발전인가 국가주의의 헌법화인가

 

현행 헌법은 ‘지역경제 육성’ 의무만 규정

개정안은 ‘균등한 삶의 질과 기회’까지 국가 책임으로 확대

좋은 말처럼 보이지만, 국가는 이제 지원자가 아니라 삶의 설계자로 올라서게 된다

 

이번 개헌안에서 가장 무난해 보이는 조항을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지역균형발전 조항을 들 것이다. 


수도권 집중은 심각하고, 지방 소멸은 현실이 됐으며, 교육·의료·문화·일자리·주거·교통의 격차가 삶의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는 데 반대하기는 쉽지 않다. 


발의안 제안이유도 바로 이 점을 전면에 내세운다. 저출생·고령화의 그늘이 깊어지고,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절반 이상이 소멸 위기 지역으로 분류되며, 전체 인구의 과반 이상이 일정 지역에 집중돼 있다고 적는다. 


이어 지역 간 불균형이 거주 지역에 따른 교육·의료·문화·일자리 등의 격차와 삶의 기회 차이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한다. 겉으로 보면 이 조항은 시대적 과제를 반영한 상식적 문장처럼 보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현행 헌법 제123조 제2항은 “국가는 지역간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고 적고 있다. 국가의 책무를 ‘지역경제 육성’이라는 비교적 좁은 틀 안에 묶어 둔 문장이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은 이를 “국가는 모든 국민이 거주 지역과 관계없이 균등한 삶의 질과 기회를 향유할 수 있도록 지역의 경제를 육성하고 생활기반을 구축하여 지역 간의 격차를 해소하고 균형 있는 발전을 촉진할 의무를 진다”고 바꿨다. 


발의안은 제안이유에서 그 생활기반의 범위를 교육·의료·문화·일자리·주거·교통까지 포괄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건 단순한 보완이 아니다. 지역경제 지원을 넘어, 국민 개개인의 삶의 조건까지 국가가 헌법상 책무로 떠안겠다는 선언이다.


여기서 핵심 단어는 ‘균형’이 아니라 ‘균등’이다. 


균형은 격차를 줄이자는 말이다. 지역마다 여건이 다르고, 산업 구조도 다르며, 인구와 지리 조건도 다른 현실을 인정한 채 불균형을 완화하자는 개념이다. 


그러나 균등은 다르다. 균등은 단순히 뒤처진 곳을 보완하겠다는 뜻을 넘어, 어느 정도의 삶과 어느 수준의 기회가 같아야 하는가를 누군가 정해야 성립하는 말이다. 


특히 개정안은 기회만이 아니라 삶의 질까지 함께 넣었다. 


기회균등은 자유주의적 문장으로도 읽힐 수 있지만, 삶의 질의 균등은 훨씬 강한 국가 개입의 근거가 된다. 삶의 질은 교육 수준, 병원 접근성, 문화 인프라, 교통망, 주거환경, 일자리 구조처럼 국가정책 전반을 포괄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조항은 표면상으로는 지역발전 조항이지만, 실제로는 국가의 역할을 질적으로 확대하는 문장이다.


좋은 말이 늘 좋은 헌법은 아니다. 


“균등한 삶의 질과 기회”라는 표현은 듣기에 매끄럽고 반대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헌법에 들어가는 순간 의미는 달라진다. 


이제 국가는 단순히 도로를 깔고 산업단지를 유치하는 수준의 지원자가 아니다. 어떤 교육 수준이 균등한가, 어떤 의료 접근성이 균등한가, 어떤 주거 조건이 균등한가, 어떤 문화 향유 수준이 균등한가를 판단하고, 그 기준에 맞춰 자원과 예산, 제도를 재배분하는 주체로 올라서게 된다. 


다시 말해 국가는 지역을 돕는 존재를 넘어, 삶의 표준을 설계하는 존재가 된다.


문제는 지역발전이 아니다. 조항의 초점이 지역에서 삶으로, 경제에서 생활조건으로, 지원에서 관여로 옮겨갔다는 데 있다. 국가가 개인의 삶에 개입할 헌법적 명분을 스스로 써 넣고 있는 셈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국가주의의 문이 열린다. 


국가주의는 늘 노골적인 억압의 얼굴로만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현실적인 국가주의는 언제나 선의의 언어를 빌린다. 균형, 균등, 공공성, 기회, 삶의 질, 책임, 연대 같은 말은 그 자체로는 모두 좋은 말이다. 

그러나 국가가 좋은 목적을 이유로 국민의 삶을 어느 수준까지 맞춰야 하는지 결정하고, 지역 간 차이를 어디까지 허용할지 판단하며, 어느 수준의 재정 이전과 생활기반 보정을 해야 하는지 정하기 시작하면, 자유와 자율은 점점 뒤로 밀린다. 


국가는 더 이상 조건을 마련하는 존재에 머물지 않고, 어떤 삶이 바람직한 삶인지 규정하는 존재가 된다. 


독재와 전체주의는 언제나 탱크와 총칼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삶의 기준을 국가가 대신 정하기 시작할 때, 그 토대는 이미 깔리기 시작한다.


물론 이 조항이 곧바로 독재 헌법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렇게 단정하면 논지가 오히려 약해진다. 


더 정확한 표현은 이렇다. 이번 조항은 지역격차 해소라는 명분 아래 국가의 역할을 경제 지원에서 삶의 조건 설계로 넓히는 문장이다. 오늘은 선의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헌법은 오늘의 선의만을 위해 쓰는 문서가 아니다. 


어떤 권력이 들어서든 그 문장을 손에 쥐고 해석하게 된다. 그래서 헌법 문장은 언제나 가장 나쁜 권력이 읽었을 때도 안전해야 한다. 


그런 기준에서 보면, “균등한 삶의 질과 기회”는 지나치게 넓고, 지나치게 달콤하며, 지나치게 많은 해석 가능성을 남긴다.


특히 이 조항은 정책 실패의 책임 구조까지 흐릴 수 있다. 


지역경제 육성은 비교적 구체적이다. 어떤 산업을 살릴지, 어떤 세제 혜택을 줄지, 어떤 기반시설을 구축할지 따져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삶의 질의 균등은 추상적이다. 결과를 평가하기 어렵고, 언제나 “아직 부족하니 더 개입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이어지기 쉽다. 


결국 헌법은 국가에 끝없는 과제를 부여하고, 정치는 그 과제를 이유로 더 큰 재정, 더 넓은 규제, 더 깊은 생활 개입을 정당화하게 된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지만, 실제로는 국가개입의 상시적 확대 장치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번 개헌안이 스스로를 “최소 개헌”이라고 부른다는 점에서 이 조항은 더 흥미롭다. 


계엄 조항과 부칙은 적어도 12·3 이후 제도 보완이라는 명분을 내세운다. 


그러나 제123조 개정은 제도 보완이라기보다 국가철학의 수정에 가깝다. 


현행 헌법이 지역경제 육성이라는 다소 절제된 책무를 두고 있었다면, 개정안은 거기서 더 나아가 국민의 삶의 질과 기회 자체를 국가가 균등하게 보장해야 할 대상으로 상정한다. 


이것은 단순한 보강이 아니라, 국가의 역할에 대한 관점 전환이다. 그리고 그 전환은 생각보다 훨씬 무겁다.


결국 이번 제123조 개정의 진짜 쟁점은 지역발전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가 아니다. 


질문은 더 근본적이다. 국가가 지역을 돕는 수준을 넘어서, 국민의 삶이 어느 정도로 균등해야 하는지까지 헌법 이름으로 정할 수 있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여기에 선뜻 그렇다고 답하는 순간, 우리는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주의의 문턱을 낮추게 된다. 


균형이라는 단어는 조심스럽다. 그러나 균등이라는 단어는 훨씬 더 위험하다. 


지원은 자유를 보완할 수 있지만, 설계는 자유를 대체하기 시작한다. 이 조항의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좋은 말처럼 보이는 한 문장이, 국가를 지원자에서 설계자로 바꾸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카이스 사이에드 튀니지 대통령(64)이 초안을 작성한 개헌안은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력을 부여, 독재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는 논란이 제기되는 가운데 25일 국민투표가 실시된다. 2022.7.25 [사진=연합뉴스]


⑥ 종합- 무엇이 문제인가

 

절차·역사·권력·재판·국가철학을 한꺼번에 건드렸다

작은 개헌이 아닌 헌정질서 전반 다시 쓰는 개헌안

 

이번 개헌안은 스스로를 “합의 가능한 범위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개헌”이라고 설명한다. 


실제 제안이유도 6월 3일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하면 국민 참여를 높이고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적었다. 


또 전문 개정, 계엄에 대한 국회의 승인권 도입, 지역 간 격차 해소와 균형발전 의무 명시, 부칙의 경과조치를 핵심 내용으로 제시한다. 


겉으로는 ‘최소 개헌’처럼 보이지만, 조문을 따라가 보면 이 개헌안은 절차와 역사, 권력구조, 재판 해석, 국가의 역할까지 한꺼번에 건드리고 있다.


첫 번째 쟁점은 절차다. 


우원식 국회의장의 발언과 개정안 제안이유가 보여 주듯, 이번 구상은 처음부터 지방선거 동시실시를 전제로 짜였다. 문제는 참여 확대라는 명분보다 그 안에 숨어 있는 투표율 계산이다. 


현행 국민투표법은 헌법개정안이 확정되려면 투표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모두 요구한다. 개헌은 찬반 이전에 먼저 성립 문턱을 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지방선거와 묶겠다는 말은 결국 개헌안 자체의 독자적 동원력보다 지방선거의 기본 투표율에 기대겠다는 계산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헌법이 일부러 높게 설정한 문턱을 다른 선거의 참여율로 넘기려는 순간, 개헌의 정당성 문제는 내용 이전에 절차에서 시작된다.


두 번째 쟁점은 헌법 전문 개정이다. 


개정안은 현행 전문의 4·19 민주이념을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및 5·18민주화운동의 민주이념”으로 바꾸겠다고 적고 있다. 이것은 추모 문구를 하나 더 넣는 문제가 아니다. 


헌법 전문은 국가가 어떤 역사를 자신의 정통성의 근거로 삼는지를 선언하는 문장이다. 한 사건을 전문에 넣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역사적 평가가 아니라 국가가 선택한 헌법적 역사서술이 된다. 


결국 이번 전문 개정은 기념이 아니라 정통성의 재서술이다. 


더구나 5·18을 둘러싼 오늘의 ‘규명’ 역시 자유로운 질문과 검증만의 결과라기보다, 특별법과 조사기구, 형사처벌 조항을 통해 국가가 공식 결론을 제도화해 온 과정과 분리해 볼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사건을 전문에 넣는 것은 통합의 문장을 쓰는 일이라기보다, 국가가 선택한 역사 해석을 헌법으로 봉인하는 선택에 가깝다.


세 번째 쟁점은 계엄 조항이다. 


개정안은 현행 헌법의 ‘국회 통고’와 ‘해제 요구’ 구조를 ‘국회 승인’과 ‘즉시 효력 상실’ 구조로 바꾼다. 


계엄을 선포하면 대통령은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하고 승인을 받아야 하며, 48시간 안에 승인이 없거나 부결되면 즉시 효력이 상실된다. 겉으로는 12·3 재발방지 장치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재발방지의 명분만이 아니다. 


87헌법 체제는 애초에 대통령 권력을 풀어놓은 체제가 아니었다. 전직 대통령 3명이 사법 판단의 대상이 됐고, 현직 대통령 2명은 탄핵소추 의결만으로 직무가 정지됐다.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은 없고, 국회에는 탄핵소추권이 있는 구조에서 비상권까지 국회 승인에 종속시키는 것은, 위헌 여부를 떠나 대통령제의 비상권을 의회 우위 질서 쪽으로 한 걸음 더 밀어 넣는 개헌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더구나 비상사태는 본질적으로 신속한 대응을 요구한다. 그 존속까지 국회 승인에 묶으면, 남용 방지 장치가 경우에 따라 비상 대응 구조 자체를 지연·무력화시키는 장치가 될 위험도 함께 커진다.


네 번째 쟁점은 부칙이다. 


개정안 부칙은 “종전의 헌법에 따라 유효하게 행해진 처분, 행위 등은 이 헌법에 따른 처분, 행위 등으로 본다”고 적었다. 평시라면 흔한 경과조치처럼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개헌안은 12·3을 직접 계기로 계엄 조항을 손보겠다고 밝힌 문서다. 그런 문서가 동시에 종전 헌법상 유효한 국가행위의 연속성을 선언하는 순간, 부칙은 더 이상 무색무취한 기술조항이 아니다. 


문제는 효력보다 정당화 효과다. 1심 재판의 법리에는 무리와 비약이 있었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는데, 이 부칙은 항소심에서 그 판단과 당시 국가행위를 후행 헌법질서의 연속선 위에서 더 쉽게 읽게 만드는 해석 근거로 동원될 수 있다. 짧지만 가볍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섯 번째 쟁점은 제123조다. 


현행 헌법은 국가가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고만 적고 있다. 그런데 개정안은 모든 국민이 거주 지역과 관계없이 “균등한 삶의 질과 기회”를 향유할 수 있도록 국가가 생활기반을 구축하고 격차를 해소할 의무를 진다고 바꿨다. 


이 순간 조항의 초점은 지역에서 삶으로, 경제에서 생활조건으로, 지원에서 관여로 옮겨간다. 국가가 개인의 삶에 개입할 헌법적 명분을 스스로 써 넣는 셈이다. 


‘균형’은 격차를 줄이자는 말이지만, ‘균등’은 어느 수준의 삶과 기회가 같아야 하는지를 누군가 정해야 성립하는 말이다. 결국 국가는 지역을 돕는 존재를 넘어 삶의 표준을 설계하는 존재로 올라서게 된다. 


좋은 말처럼 보이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국가주의의 문이 열린다.


정리하면 이번 개헌안은 결코 ‘최소 개헌’이 아니다. 


1편에서 본 것처럼 절차의 문제를 안고 있고, 2편에서 본 것처럼 역사 해석을 전문에 헌법화하며, 3편에서 본 것처럼 권력균형과 비상 대응 구조를 바꾸고, 4편에서 본 것처럼 현재 재판의 해석 환경에까지 신호를 던지며, 5편에서 본 것처럼 국가의 역할을 삶의 설계 영역까지 넓힌다. 


작은 개헌인 척하지만, 실제로는 헌정질서의 다섯 축을 동시에 움직이는 개헌안이다. 


그래서 이 개헌안은 조문 하나하나를 따로 떼어 볼 것이 아니라, 왜 이 모든 쟁점을 한 문서 안에 함께 담았는지를 물어야 한다. 


답은 분명하다. 이번 개헌안은 절차 개헌이 아니라, 헌법 질서의 방향 자체를 다시 쓰려는 개헌안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0
감동이에요
0
정기구독배너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