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정의’와 ‘인권’의 탈을 쓴 특정 사건과 조직들이 비판이 차단된, ‘치외법권의 성역’으로 변질되는 기괴한 현상이 연출되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유기체가 호흡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산소는 다름 아닌 ‘표현과 비판의 자유’다. 아무리 비극적인 사건도, 아무리 권위 있는 국가 기관도 시민의 합리적 의심과 비판을 수용할 때만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정의’와 ‘인권’의 탈을 쓴 특정 사건과 조직들이 비판이 차단된, ‘치외법권의 성역’으로 변질되는 기괴한 현상이 연출되고 있다.
‘비판의 치외법권’이 된 존재: 좌파 정권이 설계한 성역
좌파 정권은 늘 각 분야의 ‘성역’ 만들기에 몰두했다. 특히 5·18의 경우, 북한군 개입의 정황증거들이 속속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언급 자체를 법적으로 처벌하려는 시도가 자행되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 핵심 가치, 표현과 비판의 자유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만행이다.
또한, 부정선거의 핵심으로 지목받으며 수많은 의혹의 중심에 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역시 검증 불가능한 성역으로 둔갑시키고 있다. 비판하지 못하는 대상은 필연적으로 부패하며, 질문이 금지된 성지는 악의 토양이 된다. 성역의 확장은 곧 자유 영토의 축소를 의미한다.
독재자의 계보: 성역에 인큐베이팅된 독재의 괴물들
역사 속에서 독재자들은 언제나 성역이라는 관문을 통해 권좌에 올랐다.
나치 히틀러는 '아리안 인종의 순혈주의'와 '총통의 무오류성'을 성역화했다. 이를 비판하는 것은 곧 민족에 대한 반역이었으며, 이 성역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수백만 명을 학살하는 광기를 정당화했다.
히틀러와 쌍벽을 이루는 또 하나의 독재자 스탈린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당의 절대성'을 성역의 요새로 삼았다. 그 또한 이 성역에 도전하는 모든 목소리를 '인민의 적'으로 규정하여 숙청했으며, 비판의 자유가 사라진 자리에 공포라는 이름의 성역을 세워 수천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북한 김일성 일가의 신격화, 이란 신정정치의 성역화, 러시아 푸틴의 민족주의, 중국 시진핑의 '중화 굴기' 역시 그 궤를 같이한다.
이들이 만든 성역의 공통점은 하나다. 반대 세력을 ‘불법’ 혹은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넣기 위한 구실 만들기이며, 결국 이를 통해 권력을 사유화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특정 사건들에 대한 신성시와 법적 처벌 조항 신설은 이들 독재자의 수법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이재명 정권의 성역 만들기: 독재의 계보를 잇겠다는 선언
현재 이재명 정권이 추진하는 일련의 흐름은 명백하다.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이 되는 존재를 성역화하여 비판의 입을 막겠다는 시도다. 이는 독재자의 계보를 잇겠다는 노골적인 선언이다.
부정선거 의혹에 침묵하고, 역사적 진실 규명을 가로막으며, 의혹의 중심에 선 기관을 성역화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다. 그들이 쌓아 올리는 성역의 성벽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독재 권력을 방탄하는 해자(垓子)일 뿐이다.
주권자의 용기 있는 투쟁만이 성역의 벽을 허문다
좌파 정권의 잇따른 성역 만들기는 독재로 들어가는 문을 만드는 것이다. 성역은 민주주의라는 광장에서 시민들을 몰아내고 그 공간에 독재라는 괴물을 키운다.
표현의 자유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싸워 지키는 것이다. 표현과 비판만이 민주주의를 위해 흘려야 하는 ‘피’를 최소화할 장치다.
질문하고, 의심하며, 비판할 권리를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권력의 노예로 전락한다. 5.18의 진실을 묻고,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된 선관위의 투명성을 요구하며, 비극적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성역화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
우리는 이 기만적인 성역 만들기에 침묵해서는 안 된다.
비판의 자유가 살아 숨 쉬는 대한민국, 공정한 검증이 보장되는 진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국민 모두가 깨어 있는 감시자가 되어야 한다.
파도에 휩쓸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 민병곤 작가
현) 정치다큐멘터리 작가
현) 국민의힘 충남도당 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