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거리 환전소 전광판에 환율 정보가 표시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24일 원화 환율과 관련해 ‘고강도 개입 가능성’을 언급하며 구두 경고에 나서자, 다수 언론이 이를 환율 안정 신호로 해석하며 관련 보도를 쏟아냈다.
그러나 보도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면, 전제 자체가 부정확하거나 인과관계가 과장된 대목이 적지 않다. 환율 보도의 주요 쟁점을 중심으로 오해와 사실을 구분해 본다.
“글로벌 달러 강세가 원화 약세의 주원인이다”
△ 오해: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전제는 ‘글로벌 달러 강세’다. 그러나 달러 인덱스(DXY) 흐름을 보면 이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최근 달러 인덱스는 뚜렷한 상승 추세라기보다 조정·박스권 흐름에 가깝다. 최소한 달러가 전 세계적으로 일제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일부 보도는 원·달러 환율 상승을 ‘달러 강세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단순화했다. 이 경우 원화 약세의 원인이 되는 국내 요인, 즉 정책 신뢰, 자본 유입 부진, 정치·경제 리스크 등은 분석에서 빠지기 쉽다.
△ 사실: 이번 환율 불안은 달러 요인보다 원화 요인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작용한 국면에 가깝다.
“정부 구두개입이 환율 하락을 이끌었다”
△ 오해: 24일 이후 환율이 다소 진정된 흐름을 보이자, 일부 보도는 이를 정부의 구두개입 효과로 단정했다. 그러나 같은 기사 안에서도 세제 대책, 수급 요인, 연말 포지션 조정, 외환시장 유동성 등 복수의 변수가 함께 언급된다.
그럼에도 제목이나 리드에서는 ‘정부 경고 → 환율 하락’이라는 단선적 인과가 강조된다. 이는 결과를 설명하는 방식으로는 지나치게 단순하다.
△ 사실: 구두개입은 단기적인 심리 조정에는 영향을 줄 수 있지만, 환율 흐름의 방향 자체를 설명하는 단독 요인으로 보기는 어렵다.
“정부가 수십억 달러를 실제로 투입했다”
△ 오해: 일부 매체는 ‘50억 달러 이상 투입’ 등 구체적인 숫자를 언급하며 개입 강도를 부각했다. 그러나 이 같은 수치는 대부분 시장 참가자들의 추정에 가깝고, 당국이 공식적으로 확인한 바는 없다.
문제는 이러한 ‘추정치’가 2차, 3차 인용을 거치며 사실처럼 굳어지는 과정이다. 독자는 정부가 실제로 대규모 달러를 매도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 사실: 개입 규모로 거론되는 숫자는 공식 확인이 아닌 시장 추정치이며, 사실로 단정하기 어렵다.
“특정 환율선(저지선·마지노선)을 정부가 방어한다”
△ 오해: ‘1450원 저지선’, ‘연말 종가 관리’ 같은 표현도 반복된다. 그러나 정부가 특정 환율 수준을 공식 목표로 설정하거나 방어선을 공표한 적은 없다. 그럼에도 일부 보도는 마치 명확한 방어선이 존재하는 것처럼 서술한다.
이런 프레임은 환율을 복잡한 변수의 결과가 아닌 ‘선(線)의 싸움’으로 오해하게 만든다.
△ 사실: 환율은 특정 숫자보다 수급, 정책 신뢰, 리스크 프리미엄 등 복합 요인에 의해 움직인다.
“세제·수급 대책이 환율을 안정시킬 것이다”
△ 오해: 해외 주식 투자자에 대한 세제 조정이나 수급 대책이 환율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는 평가도 등장한다. 가능성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지만, 이를 즉각적이고 구조적인 환율 안정 장치로 묘사하는 것은 과장에 가깝다.
△ 사실: 이 같은 대책은 단기 수급에 일부 영향을 줄 수 있으나, 환율의 중기적 방향을 바꿀 변수로 보기는 어렵다.
왜 전제가 중요한가
이번 환율 보도의 문제는 단순한 표현상의 오류가 아니다. 잘못된 전제는 정책 메시지를 왜곡하고, 시장 상황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흐린다. 특히 ‘글로벌 달러 강세’라는 익숙한 프레임은 설명은 편하지만, 현실을 가리지 않는지 점검이 필요하다.
정부의 개입 경고가 시장에 먹힐 것인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의 원인이 외부에 있지 않은 상황에서, 경고만으로 흐름을 바꾸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