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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롯데 신동빈 체제 무엇이 문제인가
  • 김영 기자
  • 등록 2025-12-27 19: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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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기부채 34조, 그런데 시장은 조용했다
  • 일본식 연명과 한국의 모범사례
  • 문제는 경영권이 아니라 ‘결단권’이다

롯데월드타워 [사진=송파구청]

연말이 다가오면 기업의 재무 구조는 자연스럽게 시장의 시험대에 오른다. 특히 대규모 차입을 안고 있는 기업집단이라면 자금 흐름에 작은 균열만 생겨도 곧바로 신호가 포착된다. 그런데 올해 연말, 한 대기업을 둘러싼 시장은 유난히 조용하다.

 

롯데그룹이 그 사례다. 


올해 안에 상환해야 할 단기부채 규모는 34조 원에 이르지만, 금융시장은 아직 뚜렷한 긴장 신호를 보내지 않고 있다. 이는 상당 부분이 차환되거나 상환 기한이 연장됐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문제는 이 ‘조용함’이 안정의 신호인지, 관리의 결과인지 모호하다는 것이다.

 

정권의 판단 속에서 관리되는 기업 구조


여기서 롯데의 위기는 단순한 재무 문제가 아니라, 기업이 위기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가의 문제로 바뀐다.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구조다.

 

롯데는 자산 규모가 크고 부채비율도 상대적으로 낮다. 수치만 놓고 보면 금융권이 즉각적인 압박에 나서지 않을 이유는 충분하다. 그러나 이 구조는 단순한 재무 안정으로만 설명되기 어렵다. 


롯데의 주거래은행으로 거론되는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은 모두 정부 영향력이 구조적으로 작동하는 금융기관이다. 시장의 즉각적인 판단보다 정책적 고려가 개입될 여지가 있는 환경이다.

 

이 지점에서 롯데의 위기는 정권의 판단 속에서 관리되는 기업 구조라는 성격을 띠기 시작한다. 


금융권이 문제 삼지 않는 기업은 당장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대가로 기업은 시장을 설득하는 대신 정권의 시선을 의식하는 위치로 이동한다. 이것이 롯데의 오너 리스크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외형상 롯데는 이미 전문경영인 체제다. 


계열사 대부분은 전문경영인이 대표를 맡고 있고, 오너는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는 다르다. 사업 철수, 대규모 자산 매각, 구조 전환과 같은 핵심 선택은 전문경영인의 권한 밖에 있다. 운영은 위임돼 있지만, 최종 판단은 유보되는 구조다.

 

최종 의사결정권은 여전히 오너의 몫


여기서 롯데의 위기는 단순한 재무 문제가 아니라, 기업이 위기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가의 문제로 바뀐다.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구조다.


롯데는 자산 규모가 크고 부채비율도 상대적으로 낮다. 수치만 놓고 보면 금융권이 즉각적인 압박에 나서지 않을 이유는 충분하다. 그러나 이 구조는 단순한 재무 안정으로만 설명되기 어렵다. 


롯데의 주거래은행으로 거론되는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은 모두 정부 영향력이 구조적으로 작동하는 금융기관이다. 시장의 즉각적인 판단보다 정책적 고려가 개입될 여지가 있는 환경이다.


이 지점에서 롯데의 위기는 정권의 판단 속에서 관리되는 기업 구조라는 성격을 띠기 시작한다. 


금융권이 문제 삼지 않는 기업은 당장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대가로 기업은 시장을 설득하는 대신 정권의 시선을 의식하는 위치로 이동한다. 이것이 롯데의 오너 리스크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외형상 롯데는 이미 전문경영인 체제다. 


계열사 대부분은 전문경영인이 대표를 맡고 있고, 오너는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는 다르다. 사업 철수, 대규모 자산 매각, 구조 전환과 같은 핵심 선택은 전문경영인의 권한 밖에 있다. 운영은 위임돼 있지만, 최종 판단은 유보되는 구조다.


최종 의사결정권은 여전히 오너의 몫


여기서 말하는 ‘결단권’은 통상의 경영권과 다르다. 실패를 감수하고도 방향을 확정할 수 있는 최종 의사결정권, 즉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확정하는 권한을 뜻한다. 대규모 자산 매각, 핵심 사업 포기, 그룹 차원의 구조조정 방향처럼 결과에 대한 책임이 따르는 결정이다. 이 권한은 현재도 오너에게 묶여 있다.

 

신동빈 회장은 2025년 신년사에서 “혁신 없이는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며 강력한 쇄신을 주문했다. [사진=연합뉴스]

이로 인해 전문경영인은 관리자가 되고, 조직은 결정을 기다린다. 


실패의 부담은 내부로 전가되고, 조직은 점점 피로해진다. 해고는 없지만 불확실성은 상시화된다. 이는 고용 안정이 아니라 조용한 소모다. 롯데 내부에서 조직 피로도가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로 롯데그룹은 유동성 대응에 나서고 있다. 


롯데건설은 계열사들로부터 총 1조 원 규모의 자금을 이미 조달했으며, 서울 서초구 잠원동 본사 부지 매각을 포함한 약 1조 원 규모의 자산 유동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대규모 임원 교체와 비핵심 자산 정리, 보유 토지 재평가 등 경영 쇄신 조치도 병행하고 있다. 

 

다만 이 조치들은 모두 현금 흐름 관리와 위기 완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업 철수나 포트폴리오 전환 같은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이 모습은 낯설지 않다. 


일본 기업들이 1990년대 이후 반복해온 위기 대응 방식과 닮아 있다. 일본식 경영의 핵심은 충돌을 피하고, 시장보다 은행을 택하며, 결단보다 연명을 선택하는 데 있었다. 


부실 사업은 정리되지 않았고 책임은 분산됐다. 이른바 ‘좀비 기업’이 양산된 배경이다. 이 방식은 파산을 늦출 수는 있었지만, 경쟁력 회복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일본 기업들이 모두 이 길에 머문 것은 아니다. 


롯데에 필요한 것은 전문경영인의 실질적인 권한


닛산은 기존의 합의·연명 경영을 포기하고 외부에 결단권을 넘기며 단기간에 회복에 성공했다. 히타치는 ‘백화점식 기업’을 해체하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해 수익성과 기업가치를 회복했다. 일본에서도 일본식 경영을 버린 기업만 살아남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 전환은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도 모범사례가 있다. SK그룹은 위기 국면에서 오너 단독 경영도, 연명형 관리도 아닌 제3의 선택을 했다. 2012년 하이닉스 인수라는 대형 결단 이후, SK는 2013년 ‘슈펙스(SUPEX) 추구협의회’를 공식 가동하며 그룹 의사결정 구조를 집단 체제로 전환했다. 핵심은 회의체의 존재가 아니라, 최종 의사결정권의 구조적 이전이었다.

 

슈펙스(SUPEX) 체제 아래에서 계열사 CEO들은 실질적인 결정 주체로 움직였다. 당시 핵심 인사들은 자리 보전보다 일에 헌신했고, 오너 리스크 국면에서도 그룹 전략은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SK는 반도체·배터리·통신을 축으로 재도약에 성공했다. 슈펙스는 SK를 완벽하게 만든 제도가 아니라, 최악의 선택을 피하게 만든 구조였다. 이 체제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다시 롯데로 돌아오면 질문은 분명해진다. 


롯데는 지금 ‘버티기’가 가능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 비용은 조직과 직원에게 전가되고 있다. 오너는 자리를 지키고, 정권은 관리하며, 은행은 연장하지만, 내부 구성원은 소모된다. 조직 피로도는 이미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결론은 단순하다. 


롯데에 필요한 것은 형식적인 전문경영인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결단할 수 있는 구조다. 이를 위해서는 오너가 경영에서 물러나고, 집단 결단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신동빈 회장의 퇴진과 전문경영인 중심의 최종 의사결정권 이전은 도덕적 요구가 아니라, 조직을 살리기 위한 구조적 선택에 가깝다.

 

일본은 연명에서 실패했고, 결단으로 살아났다.

한국의 한 기업은 같은 갈림길에서 선택했고, 결과로 증명했다.

 

이제 롯데가 답해야 할 질문은 하나다.

버티기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결단권을 내려놓을 것인가.

 

◆ 슈펙스(SUPEX)


SK그룹이 도입한 최고 의사결정 체계로, 명칭은 Super Excellent Level의 약자다. 그러나 슈펙스의 본질은 슬로건이 아니라 권한 구조의 변화에 있다. 슈펙스는 계열사 경영을 관리하는 회의체가 아니다. 그룹 차원의 최종 의사결정권을 집단에 부여한 구조라는 특징을 가진다.


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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