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연평도 해상에서 표류 중 북한군에 사살돼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A씨의 형 이래진 씨가 지난 2020년 10월 28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정보공개를 청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1심 판결은 하나의 사건을 끝낸 판결이 아니라, 사법이 무엇을 판단하고 무엇을 판단하지 않는지를 분명히 드러낸 판결이었다.
법원은 당시 정부의 판단이 옳았는지, 도덕적으로 정당했는지를 묻지 않았다. 대신 그 판단이 형사처벌의 문턱을 넘었는지만을 문제 삼았고, “범죄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지점에서 많은 이가 당혹감을 느꼈다.
왜 법원은 책임을 묻지 않았는가
사람들은 묻는다. 국가의 판단과 행동이 명백히 부적절해 보이는데도 왜 법원은 책임을 묻지 않았는가.
그러나 형사재판의 본질은 다른 데 있다.
형사재판은 국가 권력이 잘못 작동했는지를 심판하는 절차가 아니라 특정 개인이 범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를 했는지를 가려내는 절차다. 이 경계를 혼동하는 순간, 사법은 정의의 도구가 아니라 정치의 연장선으로 전락한다.
서해 사건 1심이 확인한 법리는 냉정하다.
정책 판단의 왜곡, 보고의 편향, 정무적 개입이라는 의심이 존재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형사처벌이 성립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직권 행사, 개별적인 강제, 명시적인 지시와 그로 인한 현실적인 권리 침해가 입증되지 않는 한, 형사법은 멈춘다. 법원은 구조를 처벌하지 않는다. 설명을 유죄로 인정하지도 않는다.
서해 사건의 직권남용, 내란 사건에도 적용한다면
이 법리를 현재 진행 중인 내란 재판과 직권남용 재판에 그대로 대입하면 불편한 장면이 떠오른다.
‘구조적 내란’ ‘권력의 의도’ ‘암묵적 승인’이라는 표현들은 정치적으로는 강력하지만, 법정에서는 취약해진다. 서해 사건에서 법원이 배제했던 논리들이 내란 사건에서도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형사재판의 언어는 해석이 아니라 증명이며, 분노가 아니라 요건이다.
특히 직권남용은 이 지점에서 가장 위험한 죄목이다.
권력 남용을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항이지만, 동시에 권력이 “어디까지가 직무였는가”를 가장 쉽게 다툴 수 있는 범죄이기도 하다.
직권의 범위가 불명확하거나, ‘의무 없는 일’이 추상적으로 제시될 경우, 법원은 범죄 성립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정치적 분노가 클수록 직권남용이 먼저 무너지는 이유다.
서해 사건이 보여준 직권남용 판단 기준은, 내란 사건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기서 질문이 끝나서는 안 된다.
서해 사건의 쟁점은 피해자의 구제 여부
형사법이 멈춘 자리에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서해 공무원 사건이 진정으로 남긴 과제는 처벌의 성패가 아니라 피해자의 구제 문제다.
형사 무죄는 국가 책임의 부정이 아니다. 오히려 그 순간부터 책임의 무게중심은 형사에서 행정과 헌법으로 이동한다.
형사재판이 개인의 범죄를 가려내는 절차라면, 국가배상과 행정 책임은 국가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는지를 묻는 절차다. 과실만으로도 성립하는 국가배상 책임은 당시 판단과 대응이 합리적 재량의 범위를 벗어났는지를 묻는다.
성급한 ‘월북’ 판단은 적절했는지, 국가는 보호의무를 다했는지, 사후 대응과 기록은 책임 있게 이뤄졌는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행정 판단의 정정과 명예 회복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록이 바로잡히지 않는 한, 피해는 끝나지 않는다.
이 글은 특정 재판의 유·무죄를 예단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서해 공무원 사건이 보여준 사법의 작동 방식을 외면한 채, 또 다른 비극을 같은 방식으로 법정에 올리는 것이 과연 책임 있는 태도인지 묻고자 한다.
사법의 한계를 인정할수록, 국가 책임은 더 분명해져야 한다.
이것이 서해 공무원 1심 재판이 남긴 진짜 질문이며, 내란 재판과 직권남용 재판을 바라보는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지점이다.
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