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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 한미칼럼] 회색지대의 시대, 기준을 만드는 사회로
  • 김영 기자
  • 등록 2026-01-18 14: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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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흑백 논리 무너졌지만 새로운 기준은 세워지지 않았다
  • 부정선거 의혹과 사법 불신은 회색지대 관리 실패의 결과
  • 기준의 부재는 결국 인권의 부재로 이어진다

광주 서구 치평동 한 도로변에 부정선거 내용이 담긴 정당 현수막이 게시돼있다.  2025.11.13 [사진=연합뉴스] 

흑백 이후의 세계

 

흑백 논리는 오랫동안 정당성의 근거였다.

 

옳고 그름, 선과 악, 적과 아군이라는 단순한 구분은 사회를 결집시키는 강력한 도구였다. 권력도, 제도도, 법도 그 위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더 이상 그 틀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해관계는 복잡해졌고, 정보는 넘쳐나며, 가치와 기준은 다원화됐다. 흑백 사이의 빈 공간이 급격히 넓어지면서 사회는 자연스럽게 그 공백을 ‘회색’으로 채워 왔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회색지대의 존재는 이제 당연한 현실이 됐지만, 그 회색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합의는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흑백의 단순함을 넘어서긴 했지만, 그 대신 무엇으로 판단할 것인지를 제대로 정비하지 못했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 기준 없는 중립, 원칙 없는 절충, 설명 없는 타협, 책임 없는 모호함이다. 


회색이 늘어난 것이 문제가 아니라, 회색을 다룰 새로운 기준 체계를 세우지 못한 것이 진짜 문제다.

 

회색지대가 만든 두 개의 갈등… 부정선거 의혹과 사법기관 불신

 

이 구조는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두 가지 갈등으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하나는 부정선거 의혹 논란이고, 다른 하나는 사법기관의 중립성 논쟁이다.

 

부정선거 의혹은 이미 수년째 반복되는 사회적 갈등의 핵심 주제다. 대법원 판결은 존재한다. 법적으로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럼에도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판결이라는 결과는 제시됐지만, 그 결론에 이르는 절차와 기준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혹을 제기하는 쪽은 관리상의 흠결과 검증 절차의 불충분함을 지적하고, 제도를 옹호하는 쪽은 법원의 판단이라는 최종 결론을 내세운다. 

 

양쪽 모두 나름의 근거를 갖고 있지만, 그 사이를 메울 공통의 기준은 부재하다. 결국 논쟁은 사실의 검증이 아니라 해석의 대결로 굳어졌다. 전형적인 회색지대의 충돌이다.

 

사법기관의 중립성을 둘러싼 논란도 같은 구조다. 

 

영장 발부와 기소, 재판 결과를 둘러싼 갈등은 대부분 ‘진실이 무엇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기준이 적용됐는가’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어떤 사건은 엄격히 다뤄지고, 어떤 사건은 느슨하게 처리된다는 인식이 쌓일 때 사람들은 결과보다 과정을 의심한다.

 

재판과 수사 보도에서 언론이 이러한 해석 경쟁을 중재하기보다 특정 프레임을 확대할 때, 제도에 대한 신뢰는 더 빠르게 무너진다. 

 

이 두 사례가 보여주는 공통점은 분명하다. 회색지대는 불가피하게 존재하지만, 그 회색을 운영하는 규칙은 불충분했다는 사실이다.

 

해석 권력의 중심에 선 언론… 공영방송이라는 또 다른 권력

 

그런데 이 구조적 실패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주체가 있다. 바로 언론이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은 진실을 결정하는 권력이 아니라 진실을 해석하는 권력이다. 그리고 그 해석권을 가장 폭넓게 행사하는 집단이 언론이다. 

 

법원이 판결을 내리고 정부가 정책을 발표해도, 그것을 어떤 맥락과 언어로 대중에게 전달할지 결정하는 곳은 결국 언론이다.

 

회색지대가 넓어질수록 언론의 책임은 더 무거워져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였다.

 

사실과 해석과 의견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 보도, 절차보다 결과에 집착한 기사, 검증보다 자극을 우선한 제목들이 사회적 불신을 키웠다. 회색지대를 조율해야 할 언론이 오히려 회색지대를 확대 재생산한 측면이 적지 않다.

 

특히 심각한 영역이 공영방송이다. 공영방송은 본래 회색지대를 조율하고 사회적 기준을 만드는 핵심 기관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일부 조직과 특정 노조가 사실상의 편집권을 장악하고, 정치 권력과 복잡한 공생 구조를 형성하는 경우가 반복돼 왔다.

 

그 결과 공영방송은 해석 경쟁을 중재하는 주체가 아니라, 또 하나의 해석 권력으로 변질되곤 한다. 

 

이는 단순한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거버넌스의 문제다. 편집권이 특정 집단에 집중되고 외부 견제 장치가 약할 때, 공영방송은 공공재가 아니라 이해집단의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커진다.

 

가장 큰 해석 권력을 가진 기관이 가장 취약한 내부 기준으로 운영될 때, 사회적 갈등은 구조적으로 증폭될 수밖에 없다. 

 

회색지대를 관리해야 할 기관이 오히려 회색지대를 권력화하는 역설이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기준의 부재는 인권의 부재

 

회색지대의 기준이 불분명한 사회에서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권력이 아니라 사람이다. 

 

판단의 잣대가 모호할수록 해석은 힘 있는 쪽으로 기울고, 절차가 불투명할수록 약자의 권리는 쉽게 후퇴한다.

 

설명 책임이 사라진 제도는 선택적 정의를 낳고, 선택적 정의는 곧 인권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같은 사실을 두고도 사람에 따라 다른 잣대가 적용될 때, 법과 제도는 보호 장치가 아니라 또 하나의 위험 요소가 된다.

 

회색지대를 방치하는 일은 중립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준을 가진 이들의 권력 행사를 방관하는 일이며,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 장치 밖으로 밀어내는 일이다. 

 

그래서 기준을 만드는 작업은 단순한 행정 개선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인권을 지키는 작업이다.

 

필요한 것은 ‘운영 규칙’

 

불편한 현실이다.

 

그러나 이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무책임이다. 

 

해석이 많아질수록 기준은 더 분명해야 하고, 회색지대가 넓어질수록 설명 책임은 더 강해져야 한다. 절차가 중요해질수록 그 절차의 투명성은 더 엄격해져야 한다.

 

현대 사회의 과제는 흑백을 회색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회색을 설명 가능한 기준으로 조직하는 일이다.

 

이제라도 방향을 바꿔야 한다.

 

각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을 만들고, 판단 과정의 설명 책임을 제도화하며, 해석 충돌을 다룰 절차를 정비해야 한다. 

 

특히 언론은 스스로의 해석권을 통제할 명확한 내부 기준을 마련해야 하고, 공영방송은 편집권이 특정 집단에 독점되지 않도록 구조적 견제 장치를 갖춰야 한다.

 

이것은 거창한 이념 운동이 아니라 매우 실무적인 사회 인프라 구축 작업이다. 


회색지대의 운영 규칙을 세우는 일은 현대 사회의 갈등 비용을 줄이는 길이고, 동시에 인권을 보호하는 길이다.

 

책임 있게 운영되는 회색지대

 

우리는 더 이상 흑백의 시대를 살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기준 없는 회색의 시대에 머물러 있을 수도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하나다.

 

회색지대를 인정하는 사회가 아니라, 회색지대를 책임 있게 운영하는 사회다.


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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