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전 총리는 정계에 뛰어든 후 한 번도 권력의 중심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으며 말년에도 골프를 치며 유유자적 1인분의 삶을 즐겼다.
도종환 시인 겸 전 장관이 모 일간지에 ‘우리도 이해찬처럼 생을 다 던질 수 있을까’라는 글을 기고했다. 부제는 ‘이 나라 민주주의의 증거, 이해찬’이다.
대체 이해찬이 언제부터 이 나라 민주주의의 증거였나. 설사 그가 증인인지 증거인지가 맞다고 하자.
현직 시인이 대놓고 특정 정치인을, 그것도 권력의 정점에 있다 간 이를 칭송하는 예는 본 적이 없다. 밥 먹을 때 똥 얘기 해도 아랑곳 안 하는 내가, 그의 글에는 속이 다 뒤집어진다.
“사람들이 선거에서 왜 지는지 모르겠다”
이해찬은 자기 입으로도 “사람들이 선거에서 왜 지는지 모르겠다”고 ‘농(?)’을 던진 적이 있다. 그렇다. 그는 국내에선 드문 7선 의원이다. 이해찬은 정계에 뛰어든 후 한 번도 권력의 중심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으며 말년에도 골프를 치며 유유자적 1인분의 삶을 즐겼다.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적이 있다고는 하나 그 짧은 이력의 몇 배에 달하는 보상을 받으며 현 정권의 상황 노릇을 했다. 그는 살아서 부와 명예, 권력을 다 누렸을 뿐 아니라 객사 후 민주당 대표와 국무총리를 상주로 내세운 채 꽃상여에 앉아 마지막 길을 갔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나? 거기서 그쳐야 했다. 시인이라는 사람까지 나서서 죽은 자의 무덤에 대고 온갖 조미료 냄새 진동하는 미사여구 한 상을 차려 낼 건 뭔가.
참여문학와 순수문학 논쟁으로 뜨거웠던 1980년대, 옥수수 잎에 빗방울 흘러내리는 감성의 ‘접시꽃 당신’으로 대중의 마음을 울렸던 시인이, 대놓고 일개 정치인을 상찬하는 행태는 해괴하고 또 기괴하다.
나는 이해찬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도종환의 상찬 덕에 이해찬이 누군지 알고 싶어졌다.
온갖 논란의 진원지… 배려 실종의 생애
손쉽게 나무위키를 치고 들어가니 ‘이해찬 논란 편’ 하나만도 하루에 다 읽기 어려울 정도로 정치적 과오가 풍년이다.
언뜻 눈에 들어오는 것만 △이해찬 세대 양산 △갑질 민원 논란△중국 특사 당시 굴욕 외교 논란 △2018 제3차 남북 정상회담 노쇼 논란 △의정 활동 부실 논란 △기재부와의 협의 없는 증권거래세 폐지 논란 △사케 오찬 논란 △홍남기 부총리와의 갈등 △금태섭 의원 더불어시민당 이적 종용 논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사전투표소 발열체크 생략 △세종시 땅 1,528㎡ 배우자 명의 보유 논란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 중 본인 전기 출판 축하연 등이 있다.
오호,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
나무위키에는 없지만△서울역 회군도 유명하다. 이 이야기는 박주현 칼럼니스트의 페이스북 글을 옮기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도종환 시인은 그를 ‘생애 전체로 증명한 사람’ ‘지지 않는 정치인’이라며 추앙한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 화려한 수식어 뒤에 숨겨진 ‘서울역 회군’의 비겁한 그림자가 먼저 밟힌다. 1980년 봄, 군부 독재를 끝장낼 수 있었던 결정적 순간에 회군을 결정하며 동력을 상실케 했던 그 치명적 오판의 주역을 두고 ‘민주화를 위해 생을 다 바쳤다’고 칭송하는 건 역사를 모독하는 일이다. 엔진을 꺼버린 운전사에게 ‘멈추지 않는 기관차였다’고 훈장을 달아주는 꼴이다.”
또 골프가 취미이신 분답게 국무총리 시절 골프 관련 파문이 있었고 그 후로도 △2005년 4월5일 산불 때 골프 △2005년 7월2일 홍수 때 골프 △법조브로커와 골프 회동 및 폭설 현장 술파티△봉황 무늬 골프공 파문 △3.1절 골프 로비 의혹 파문이 있었다.
기타 논란으로 △5.18 유공자 선정 논란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 박스떼기 논란 △정계 은퇴 후 논란 △우크라이나 관련 발언 논란 △조국 두둔 논란 △금융감독원 제재 발언 논란으로 풍성하다. 이 정도면 ‘이해찬 논란’을 주제로 책 한 권이 묶여 나올 법하다.
반면 이해찬의 업적에 대해 AI에 물어보니 7선 국회의원(13·14·15·16·17·19·20대)을 지낸 대한민국 정치의 거목으로, 기획 및 전략의 대가이자 킹메이커로 평가받았다는 내용이 뜬다.
구체적으로 국무총리 시절(노무현 정부) 국내 최초의 ‘실세형 책임총리’로 세종특별자치시 설치의 기반을 마련한 장본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급조된 행정수도 전략은 수도권 인구 분산보다는 충청권 인구를 흡수하는 ‘빨대 효과’가 더 컸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높은 공실률은 도시 경제를 파탄에 빠뜨렸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공무원 도시’라는 냉소어린 비아냥은 또 어떻고.
더욱이 이해찬은 2016년 “내 집 근방에 퇴비 냄새 없게 하라”는 요지의 갑질 논란으로 세종시 주민에게 원성을 사기도 했다.
이해찬은 집 앞 퇴비 냄새가 심하다며 세종시 행정부시장에게 직접 전화했고, 부시장은 직접 현장에 나가 농민들에게 퇴비를 수거하도록 조치했다.
그러자 시골에서 시골냄새 나는 게 뭐가 잘못됐냐며 농민들이 그의 집 앞으로 달려가 궐기대회를 벌였고 이 일은 한동안 신문지상에 오르내렸다.
도종환은 기고문에서 “남에게 엄격하고 자신에게도 엄격했던 사람”이라고 그를 기리고 있다. 이해찬은 확실히 남에게 엄격했다. 그런데 자신에게도 그러했나. 정말 그러했나.
입으로 정치하는 사람
기고문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이해찬은 실력으로 정치하는 정치인이었다. 입으로 정치하는 이가 얼마나 많은가”라는 대목이다.
이 무슨 산낙지, 뻘밭에 캘리그래피 하는 소리인가. 이해찬만큼 많은 말을 쏟아낸 정치인이 또 있었던가. 그는 입으로 정치하는 사람이었다.
폭행과 폭언은 무수하고 신문지상에 오르내릴 만큼 논란이 된 발언만 △대통령 호칭 논란 △허위사실 공표 △국가보안법 재검토 및 장기집권 발언 △천안함 음모론 배후 관여 의혹 △북한인권법 관련 발언 논란 △장애인 혐오 관련 1차, 2차 비하 발언 △혜경궁 김씨 의혹 취재 기자 반응 논란 △국가원수모독죄 주장 논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관련 발언 논란 △무소속 출마 시 영구 제명 발언 △선거법 위반 발언 논란 △N번방 정치공작 발언 논란 △미래통합당을 향한 막말 논란 △부동산 세금 관련 발언 △박원순 장례식장에서 기자에게 면박 및 모욕 △박원순 성폭력 사건 관련 ‘피해호소인’ 명칭 사용 △부산 및 서울 지역 비하 발언 논란 △민주당 20년, 50년 집권론 발언 논란 등으로 화려하고 풍성하다.
물론 내부적으로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맡아 180석 거대 여당을 만들어낸 공로가 있다. (2008년 18대 총선 당시 민주당 81석 폭망 사태는 누구 책임?)
그러나 이런 공은 집안끼리 잔치를 벌이면 그만이다. 국가장을 거론하더니 세금으로 사회장을 치른 것도 모자라 문학인까지 나서 공개적으로 정치인을 상찬하는 게 당연시되는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 맞나.
그들은 서정주 시인에게 한 짓을 벌써 잊었던가. 전두환 칭송 시를 트집 잡아 미당이라는 이름을 개똥밭으로 끌어 내리고 미당문학상 폐지로까지 몰고 간 그 일을 정녕 잊었단 말인가.
역사의 주인은 바뀐다. 역사는 그렇게 흘러왔다. 그때 가서 이해찬 찬양 추도사를 물려달라고 해도 때는 이미 늦었다.
임요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