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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 한미칼럼] 1285, 2137, 그리고 23… 백신 재량권이 남긴 질문
  • 김영 기자
  • 등록 2026-02-27 06: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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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물질 신고 1285건, 사망 주장 2137명, 인정 23명
  • 같은 숫자를 두고 갈라진 국가의 판단 기준
  • 재량은 중립이었는가, 아니면 선택이었는가

4월 2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예방접종 피해보상 등에 관한 특별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되자 피해자 유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숫자는 감정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숫자를 기준으로 삼느냐는 결국 국가의 선택을 드러낸다. 

 

이물질 신고 1285건, 접종 이후 사망 신고 2137명, 그리고 정부가 인과성을 인정한 23명이라는 숫자는 코로나 시기 한국 행정이 행사한 재량권의 방향을 다시 묻게 만든다.

 

숫자는 사건을 설명하지만, 판단의 방향까지 대신 말해주지는 않는다. 

 

코로나 시기 질병관리청은 이물질이 발견된 개별 백신은 회수·폐기하면서도 동일 제조번호 접종을 중단하지 않는 선택을 했다. 제조결함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이는 법이 강제한 기속행위가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행정이 행사한 재량의 결과였다. 

 

당시 방역당국은 접종 속도와 공급 현실, 그리고 의료체계 부담을 함께 고려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사후 감사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확정된 위험’이 아니라 ‘잠재적 위험’의 단계에서도 멈출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물음이었다.

 

같은 시기 일본은 다른 선택을 했다.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도 동일 로트 전체를 선제적으로 보류했다. 

 

두 나라 모두 법적으로 정해진 자동 중단 규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결국 차이는 제도보다 재량의 방향이었다. 

 

하나는 위험이 확정될 때까지 접종을 유지하는 판단이었고, 다른 하나는 최악의 가능성에 대비해 먼저 멈추는 선택이었다. 

 

문제는 어느 쪽이 옳았느냐가 아니라, 그 선택이 어떤 기준 위에서 내려졌는가다.

 

그래서 1285, 2137, 그리고 23이라는 숫자는 서로 다른 언어로 남았다. 

 

1285는 행정의 관리 숫자였고, 2137은 유족들이 기억하는 숫자였으며, 23은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숫자였다. 

 

같은 시간 속에서 태어난 숫자들이 서로 다른 현실을 가리키게 된 이유는, 재량권이 항상 중립적으로 작동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재량은 선택이고, 선택에는 우선순위가 담긴다.

 

처벌된 공무원은 없다. 행정은 법적으로 허용된 범위 안에서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적 책임이 없다는 사실이 곧 사회적 질문까지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도 시청 앞 광장에서 망자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에게 재량권은 행정의 기술적 언어가 아니라, 남겨진 질문의 다른 이름이다. 

 

결국 우리가 다시 묻게 되는 것은 하나다.

 

위기 속에서 국가가 행사한 재량은 과연 무엇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는가.

 

재량권은 위기 속에서 국가가 가진 마지막 선택의 언어다. 

 

그러나 그 재량이 무엇을 기준으로 움직였는지는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숫자는 남고, 기록은 남고, 기억 또한 남는다. 

 

1285와 2137, 그리고 23이라는 숫자가 같은 시대의 다른 얼굴로 존재하는 한, 코로나 시기의 판단은 단순한 과거의 행정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재량은 법으로 설명될 수 있지만, 그 재량이 누구의 안전을 먼저 향했는지는 결국 사회가 다시 묻게 될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 이야기는 끝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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