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부르짖으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국민들. 1919년 3월1일의 그날을 연상시킨다. Ⓒ한미일보
‘조선독립의 서’에서 만해 한용운은 이렇게 쓰셨다.
“자유는 만물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다. 그러므로 자유가 없는 사람은 죽은 시체와 같고 평화를 잃은 자는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사람이다.”
선생의 말씀을 되새겨 본다. 어째서 자유인가? 자유가 생명체 본연의 가장 근본적인 존재 원리인 때문이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했던가
자유가 없으면 살아도 산 것 같지 않기에 인간은 부자유에 목숨을 걸고 저항한다.
왜 평화인가? 이는 자유의 원리의 연장선상에 있다. 나의 자유가 소중한 만큼 타인의 자유도 소중하다. 타인의 자유를 존중할 때 비로소 평화는 얻어지고 유지된다. 서로 억압하지 않는 '비폭력'만이 진정한 평화를 지켜낼 수 있다.
법률학자는 아니지만 생각해 본다. 우리 헌법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보라.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12조)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14조)
모든 국민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가진다.(15조)
모든 국민은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16조)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17조)
모든 국민은 통신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18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19조)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20조)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 헌법은 자유야말로 무엇보다 귀중함을 선언한다.
21조의 자유가 지금 특히 중요하다.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22조도 중요하다.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그러니까, 대한민국 국민은 신체를 마음대로 움직이는 자유뿐 아니라 자기의 양심에서 발원하는 모든 말과 행위를 근본적으로 억압당하지 않는다. 권력은 이를 함부로 침해할 수 없다.
그런데, 한밤에, 국민투표법이 법사위를 통과했다고 한다. 선관위의 부정선거를 문제 삼으면 장장 10년까지 징역형을 ‘때릴 수’ 있다고 한다.
무엇이 두렵기에 국민의 입을 틀어 막나
생각한다. 과연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 것일까. 무엇에 그토록 쫓기고 있는 것일까. 거짓 다수를 창출해 온 자신들의 ‘비법’이 하마 드러날까 무섭다는 것일까? 그렇게 무서운 속도로 방망이 두드려 얻은 그 숱한 악법들로도 부족했단 말인가?
자유를 위해 삭발투쟁, 단식투쟁을 불사하는 이 땅의 젊은이들. [사진=차강석 화랑단 대표 인스타그램]
야당 행세를 하는 이들이여,
그대들은 어째서 이런 '짓'을 그대로 지켜보는가? 숫자가 부족해서? 아무 소용 없어서?
그대들은 정말로 ‘엔추파도스’, 플러그에 꽂힌 사람들이었던가? 어째서 그대들은 국민들의 시선을 부정선거가 아니라 지방선거판으로 몰아간단 말인가? 필리버스터 장식으로 그대들의 협잡을 가릴 수 있다 보는가?
사법부 ‘판관’들이여,
그대들은, 법원에 잘못을 인정할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던, 자기 한몸을 던져 이 나라를 구하려 한, 무서운 사람의 말을 잊었는가? 그의 사심 없음이 두렵지 않던가?
그대들은 그대들 스스로를 엮어버린 잘못된 체제로부터 이제는 자유를 얻어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대들의 마지막 양심을 수렁에서 건져올려 결자해지를 이루어야 하지 않겠는가?
선배들, 후배들이여,
그대들은 자신을 지식인이라 칭한다. 나라와 국민이 나아갈 길을 찾아 고민하는 사람들이라 자부한다. 그렇게 ‘투명한’ 이성으로, 이 나라에 부정선거는 없었다고, 21세기에 무슨 그런 일이 있느냐고, 공상이요, 망상이라 비난한다.
그대들은 그렇듯 이 나라의 자유가 충만하다고 생각한다. 언론은 자유롭고, 그네들의 자유의지로 열심히 취재하고 진실을 전달하고 있으려니 여긴다. 거대 신문·방송은 믿을 만한 반면 유튜버들은 부정선거니 뭐니 가짜 뉴스들이나 퍼뜨린다 여긴다.
지금 자유로운 언론이란 오로지 독립적인 유튜버나 아주 작은 신문·방송에서나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대들은 자유 없는 나라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바로 볼 줄 모른다. 온갖 핑계로 부자유에 눈을 감고 등을 돌린다.
그대들은 억압받는 이들이 진실에 더 가까운 것을 잊었나? 그대들의 젊은 시절을 잊었나? 젊은이들은 언제나 옳다는 것을 잊었나?
권력을 찬탈한 자들이 악법을 내세워 공포를 조성할 때, 그들은 자신들의 부정을 가리려 하고 있다는, 그 명백한 사실을 부정할 수 있나? 그대들은, 오늘의 국민투표법 개정이 내일의 선거법 개정이 되고, 독재와 장기집권을 위한 ‘흉기’가 될 것을, 아니라 할 수 있나?
깨어난 국민의 자유 억누를 수 없어
국민투표법의 ‘10년 운운’은 국민의 헌법적 권리에 대한 명백한 부정이자 도전일 것이다.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땅땅땅! Ⓒ한미일보
깊은 우려와, 반대로 흥미진진한 기대를 함께 품고 생각한다. 과연 그네들의 목적은 달성될 수 있을까? 그네들 위로 바야흐로 진실의 노도가 덮쳐오기 전에 국민들의 입에 재갈을 물릴 수 있을까?
이미 깨어난 국민의 자유를 억누르고, 이 나라 체제를 뒤바꾸고, 자유 없는 나라로 전락시킬 수 있을까?
누가 최후로 더 빠를 것인가? 그네들의 공포에 쫓긴 억압과 폭력의 승리인가? 진실을 규명하려는 이들의 마지막 한판승인가?
밟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네들의 발이 아플 것이다. 피 흐를 것이다.
자유의, 민주주의의 배교자들이여. 갈릴레이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진실이었다.

◆ 방민호 교수
문학박사, 서울대 국문과 교수. 계간문학잡지 ‘맥’ 편집주간(2022년~)이자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 ‘연인 심청’(2015), ‘통증의 언어’(2019), ‘한국비평에 다시 묻는다’(2021), 서울문학기행(202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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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는 오랜 공산전체주의 체제 아래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의 결과인지 북한 주민들이 내뱉는 말과 실제 그들의 머리 속의 생각 사이에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느낄 수 있고 현실을 표현하는 말이 현실과는 멀찍이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최근에는 남한에서도 마찬가지로 신문•방송에서 나오는 말이나 글이 점점 더 그 말이나 글을 내뱉고 쓰는 사람의 머리 속의 실제 생각이나 실제 우리 현실과는 점점 더 동떨어져 멀어져가고 사이에 상당한 거리가 있고 현실을 표현하는 말이 현실과도 동떨어져 있다고 느끼게 된다.
부정선거로 입법권과 대권을 훔쳐 국회의원•대통령인 척하는 모습에서 우리 사회 전체가 집단적 이중인격 증상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