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중‘앙일보, 피해자극의 무대감독
‘친중‘앙일보가 또 일을 냈다.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방식을 두고 “리얼리티 쇼”라며, 이를 외교적 결례라 난리가 났다. 참으로 편리하다. 트럼프의 스타일은 일본 총리도, 젤렌스키도 그대로 겪은 절차인데, 한국 대통령만 특별 대우라도 받은 양, 아니 특별 ‘굴욕’을 당한 양, 앙상한 피해자극을 꾸며낸다.
물론 사실은 다 안다. 이재명만큼 굴욕당한 우방국은 없다. 그게 부끄러우니 있는 사실은 감추고, 없는 ‘굴욕 프레임’을 만들어 트럼프 탓으로 돌려야 속이 시원한 것이다. 스스로의 무능은 가리고, 국민 앞에서는 억울한 희생자인 척. 연출은 가짜 언론, 연기는 이재명. 기가 막힌 합작품이다.
진짜 외교적 결례는 따로 있다. 합의는 했는데 발뺌하고, 국민에게는 반대로 말하고, 조선업은 안보 흥정물로 던지고, 중국에는 친화 신호를 슬쩍 흘리는 행태. 이쯤 되면 “양다리 외교”라기보다 “들킨 거짓말 외교”가 더 맞다. 그런데 ‘친중앙’일보는 이 어설픈 쇼를 더 감동적으로 포장해주느라 조명과 효과음을 맞춰주는 충직한 무대감독 노릇을 한다.
블레어하우스 초청 문제는 또 어떤가. 초청 못 받은 걸 가리려 “공사 중이었다”는 황당무계한 핑계를 내놨다. 그러나 폴란드 대통령은 같은 시기 그 건물에서 환대를 받았다. 국민 기만이 빤히 드러난 사건인데도, CCP의 애완견들은 여전히 대본을 고쳐 써주며, 트럼프를 악역으로 캐스팅하고 이재명을 억울한 주연으로 올려놓는다. 언론의 사명은 진실을 비추는 것이지만, 이 신문은 그 사명을 창고에 처박아두고 권력의 홍보물 제작소로 전락했다.
국민은 더 이상 속지 않는다. 진짜 굴욕은 트럼프식 회담이 아니라, 신문 간판을 달고도 스스로를 권력의 연극 무대 뒤 소도구로 전락시킨 현실이다. 간판엔 중앙일보라 쓰여 있지만, 다 아는 것 아닌가. 그 앞에 새겨진 두 글자, ‘친중’. 이게 이 신문의 진짜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