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지방선거 본투표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단순한 현장 혼선으로 정리될 수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5일 브리핑에서 전국 1만4288개 투표소 가운데 67곳에 투표용지를 추가 송부했고, 이 가운데 실제 부족이 확인된 곳은 50곳, 투표가 일시 중지됐다가 재개된 곳은 22곳이라고 밝혔다.
선관위는 사전투표율 증가를 고려한 감축 인쇄와 투표소별 수요 편차를 원인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선관위는 사태의 당사자다. 당사자의 설명은 검증의 출발점일 뿐 결론이 될 수 없다.
법으로 보면 첫 번째 쟁점은 투표용지 산정과 배분이다.
공직선거법 제151조는 투표용지와 투표함을 구·시·군선관위가 작성해 선거일 전일까지 읍·면·동선관위에 송부하도록 규정한다. 또 투표용지 인쇄·납품·송부 과정에는 정당추천위원이 입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투표용지가 단순한 행정 물품이 아니라 국민의 투표권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법정 수단이라는 뜻이다. 투표소에 도착한 유권자가 국가의 준비 부족으로 제때 투표하지 못했다면, 그 순간 문제는 행정 착오가 아니라 참정권 보장 실패가 된다.
선관위가 “순번표를 줬다”고 설명하더라도 결론은 달라지지 않는다. 공직선거법 제155조는 마감 시각에 투표소에서 투표하기 위해 대기 중인 선거인에게 번호표를 부여해 투표하게 한 뒤 투표소를 닫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이 조항은 대기 중인 유권자의 투표권을 보호하기 위한 마지막 장치다. 투표용지 부족으로 유권자가 기다려야 했던 원인까지 정당화하는 조항이 아니다. 순번표는 참정권 박탈을 막기 위한 사후 보완 절차이지, 참정권 침해가 없었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
두 번째 쟁점은 기록이다.
선관위는 왜 투표용지를 감축 인쇄했는지, 어떤 기준으로 투표소별 물량을 배분했는지, 예비분은 어디에 보관했는지, 부족 상황을 언제 인지했는지, 추가 송부는 누가 언제 지시했고 언제 도착했는지를 기록으로 제시해야 한다. 이 기록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내부 문서가 아니다. 국민의 참정권을 관리한 국가기관이라면 반드시 남겨야 할 절차 기록이다. 기록이 없으면 책임 판단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기록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선관위의 책임이다.
세 번째 쟁점은 잠실7동 제2투표소 투표함 이송이다.
공직선거법 제168조는 투표 종료 뒤 투표참관인의 참관 아래 투표함 투입구와 자물쇠를 봉쇄·봉인하도록 규정한다. 제170조는 투표관리관이 투표함, 열쇠, 투표록, 잔여투표용지를 지체 없이 관할 선관위에 송부해야 하며, 이때 후보자별 투표참관인 1인과 호송 경찰공무원 2인을 동반할 수 있다고 정한다. 법문상 표현은 “동반할 수 있다”지만, 이는 투표함 이송 과정의 감시 공백을 막기 위한 법정 참관권이다. 선관위가 사전 통보나 재소집 없이 투표함을 이동시켰다면, 문제는 차량 종류가 아니라 투표함 이송의 체인 오브 커스터디가 끊겼는지 여부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5일 서울시선관위 관계자 면담 뒤 기자들에게 서울시선관위에서 들은 답변이 “투표함을 개표소로 옮기는 동안 참관인이 단 한 명도 동석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또 서울시선관위 측으로부터 사전 고지 없이 참관인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유치원 버스를 이용해 투표함을 옮겼다는 취지의 설명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은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정당 대표가 선관위 관계자 면담 뒤 공개적으로 밝힌 사실 주장이다. 선관위가 이를 부인하려면 말이 아니라 투표함 이송 기록, 참관인 통보 기록, 차량 배차 기록, 현장 출입 통제 기록을 제시해야 한다.
네 번째 쟁점은 개표참관권이다.
공직선거법 제181조는 구·시·군선관위가 개표참관인으로 하여금 개표소 안에서 개표상황을 참관하게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제177조는 투표함을 개함할 때 구·시·군선관위원장이 개표참관인의 참관 아래 투표함의 봉쇄와 봉인을 검사한 뒤 열어야 한다고 정한다. 즉 개표참관은 선관위가 허락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편의 절차가 아니다. 법이 명령한 감시 장치다. 법정 개표참관인이 도착했는데도 물리적으로 출입이 막혔다면, 이는 현장 질서 유지의 문제가 아니라 개표참관권 침해 문제다.
잠실7동 개표는 결과와도 연결됐다. 잠실7동 투표함 개표 뒤 서울시의회 비례대표 의석 배분이 바뀌었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잠실7동 투표함 개표 전에는 민주당 8석, 국민의힘 7석 구도였지만, 개표 후 국민의힘이 8석, 민주당이 7석으로 바뀌었다. 최종 광역의원 비례대표 정당 득표는 국민의힘 229만5093표, 민주당 228만8569표로 집계됐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결과와 무관한 절차 사고”로 축소될 수 없다.
팩트체크의 결론은 분명하다.
투표용지 부족은 참정권이 현장에서 제한·박탈된 사건이다. 순번표는 면죄부가 아니다. 선관위의 설명은 검증된 사실이 아니라 검증 대상이다. 참관인 없는 투표함 이송과 법정 참관권 제한이 사실이라면, 이는 단순 관리 부실을 넘어 선거 절차의 정당성을 흔드는 문제다. 고의였는지, 중대한 과실이었는지, 또는 부족 가능성을 알고도 방치한 것인지는 기록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그 기록이 없다면 그 자체가 선관위의 책임이다.
팩트체크 판 ① “투표용지 부족은 단순 현장 혼선이다” — 사실 아님 투표용지 부족은 실제 투표 지연과 일시 중지를 낳았다. 이는 참정권 보장 실패다.
② “순번표를 줬으니 문제없다” — 사실 아님 순번표는 대기 유권자의 투표권을 보호하기 위한 마지막 장치일 뿐, 관리 실패를 합법화하지 않는다.
③ “참관인 없는 투표함 이송도 문제없다” — 부적절 / 위법 소지 투표함은 증거물이다. 보관·이송·인계 검증 기록, 즉 체인 오브 커스터디가 남아야 한다.
④ “법정 개표참관인의 출입을 막아도 된다” — 사실 아님 법정 개표참관인의 참관을 물리적으로 막았다면 개표참관권 침해다.
⑤ “잠실7동 개표는 결과와 무관하다” — 사실 아님 잠실7동 투표함 개표 뒤 서울시의회 비례대표 의석 배분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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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주간 한미일보 13호(6월 2주차)에 게재된 기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