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기념관 본관 대형무기실. [사진=임요희 기자]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이 최근 ‘해석의 다양성’이라는 논리 아래 중국 공산당의 시각인 ‘항미원조(抗美援朝·미 제국주의에 맞서 조선을 돕는다)’를 초등학생 대상으로 강연하겠다고 나섰다가 큰 논란에 휩싸였다.
하지만 이런 논란 때문에 전쟁기념관의 본래 의미가 훼손되어선 안 될 것이다. 용산 전쟁기념관은 6·25전쟁의 모든 것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1994년 개관해 30년 넘게 평화의 중요성을 알리는 역할을 담당해 왔다.
외국인도 한국에 오면 꼭 들러보고 싶어 하는 장소이고, 내국인도 학창 시절 현장 수업을 위해 한 번쯤 들르곤 하는 곳이다.
모든 죽음, 모든 삶이 거기 있었다
전쟁기념관은 거대한 스토리 전시관이다. 모든 전투, 모든 죽음, 가까스로 살아남은 삶 그 모든 것에 이야기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관람객이 전쟁기념관 입구 ‘호국군상’을 들여다보고 있다. [사진=임요희 기자]
6·25전쟁은 북한의 김일성이 소련의 스탈린의 승인 아래 1950년 6월25일 새벽, 38선 넘어 남한을 기습 침공하면서 일어났다.
이 전쟁으로 국군 약 13만8000명, 유엔군 약 4만 명이 사망했다. 남한의 민간인 피해도 약 99만 명(사망·납치·행방불명 포함)에 달했다.
하나의 생명은 하나의 우주다. 하나의 죽음마다 우주가 무너지는 슬픔과 아픔이 동반된다. 자식을 잃고 남편을 잃고 부모를 잃은 사람들은 평생 깊은 한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전쟁기념관 입구에 서 있는 ‘형제의 상’은 윤성진 조각가 등이 제작해 전쟁기념관 개관과 함께 전시에 들어간 작품이다.
높이가 11m에 이르는 이 대형 조형물은 두 명의 군인이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이다. 6·25전쟁 당시 각각 한국군과 인민군, 적으로 만나게 된 형제의 실화를 작품으로 재현했다고 한다.
형제가 서로 총부리를 겨누던 그날
총을 어깨에 맨 국군 장교가 형 박규철 소위(국군 제8사단 제16연대 소속)이고 쓰러질 듯 안긴 인민군이 동생 박용철 하전사(북한군 제8사단 제83연대 소속)다.

전쟁기념관 입구 ‘형제의 상’ 외관(위)과 내부 모습. [사진=임요희 기자]
여기까지만 들어도 눈치 빠른 분들은 2004년 개봉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생각날 것이다. 그렇다. 영화는 이들 형제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전쟁의 참상을 그리고 있다. 형제는 어떻게 이런 기구한 운명에 놓이게 된 걸까.
규철·용철 형제는 황해도 평산군 신암면에서 과수원을 운영하는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그러나 해방 직후 황해도가 공산 치하로 넘어가면서 아버지는 지주로 몰리고 모진 고문 끝에 과수원을 몰수당하게 된다. 장남 규철은 월남을 택하고, 동생 용철은 집에 남아 가족을 지키게 된다.
그리고 6·25전쟁이 발발한다. 남한에서 생활하던 규철은 군에 입대해 전선에 투입되는데 큰 공을 세워 소위로 전시 임관하게 된다. 그리고 북의 용철도 강제 징집되어 북한군 하전사로 배치된다.
그날은 원주 치악산 고개에서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 소대를 진두지휘하며 인민군을 추격하던 규철은 어린 병사 하나가 겁에 질려 땅바닥에 엎드리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생포할 생각에 다가갔다가 소년병의 얼굴을 보게 되는데….
두려움에 벌벌 떠는 작은 소년병은 놀랍게도 자신의 동생 용철이었다. 그가 소리쳐 동생의 이름을 부르자 처음에는 어리둥절해하던 용철도 곧 형을 알아보고 얼싸 끌어안는다. ‘형제의 상’은 바로 이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이후 용철은 국군으로 현지 입대해 형과 함께 복무했다고 한다. 그리고 형제의 사연은 치악고개 전투에 참여했던 안만옥 씨가 수기로 써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형제의 상 하부 돔은 신라 고분을 형상화한 것으로 전국에서 수집한 화강석을 쌓아 만들었다. 돔 내부에는 전쟁의 참상을 형상화한 모자이크 작품이 고분벽화처럼 치장돼 있다. 입구가 양쪽으로 찢어져 있는데 현재가 만나는 지점에서 하나로 아물어 붙듯 남북도 이와 같이 하나 되자는 마음을 담고 있다고 한다. 안에 들어가면 밖에서는 안 보이는 스테인드 글라스도 확인할 수 있다.
녹지공간과 전시공간의 조화
주차장 입구에 있는 ‘평화의 시계탑’은 전쟁 당시 남과 북이 사용했던 탱크와 포탄 등 폐무기를 사용해 만들었다. 이 조형물에는 두 개의 시계가 등장한다.
서 있는 소녀는 현재의 시간을 나타내는 시계를, 앉아 있는 소녀는 전쟁이 발발하던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들고 있다. 시계탑 옆에 전시된 또 하나의 시계는 통일의 그날, 그 시각을 표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주차장 입구에 서 있는 ‘평화의 시계탑’. [사진=임요희 기자]
야외 대형무기전시장 [사진=임요희 기자]
전쟁기념관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6·25탑’은 청동검과 생명나무의 두 가지가 맞붙어 있는 형상이다. 청동검은 상무 정신을, 생명나무는 한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뜻한다. 그 아래 38인의 ‘호국군상’은 6·25전쟁에 참여한 각계각층을 형상화함으로서 선열들의 희생정신과 호국정신을 보여준다.
본관에서 어린이박물관 가는 길, 전사자 명비 회랑이 있다. “창군기로부터 6·25전쟁, 베트남전쟁, 이후 대침투작전 등에서 전사한 국군 및 경찰과, 22개국 유엔군 참전 전사자의 이름을 새겨놓은 추모의 공간”이다. 대한민국을 순방하는 참전국 국빈이 가장 먼저 찾아 와 추모하는 곳이기도 하다.
2015년 유엔군 창설 70주년을 맞아 설치한 ‘유엔참전국기념비’는 광화문 ‘감사의 정원’을 떠올리게 한다. 유엔기와 태극기를 중심으로 22개국 상징 기념비가 본관 양쪽으로 도열해 있다. 6·25전쟁 참전일자 순으로 배열했으며 각각의 기념비에는 국가명 외에도 참전 내용과 추모의 글이 해당국의 언어와 한국어로 새겨져 있다.
2015년 유엔군 창설 70주년을 맞아 설치한 ‘유엔참전국기념비’. [사진=임요희 기자]
본관에서 어린이박물관 가는 길에 있는 전사자 명비 회랑. [사진=임요희 기자]
본관의 대형무기실과 야외 대형유물전시장에서는 전쟁에 실제로 참전했던 탱크, 장갑차, 비행기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야외전시장의 ‘부활호’는 1953년 공군기술학교에서 개발한 최초의 국내 제작 항공기로 이승만 대통령이 ‘復活’이라는 친필 휘호를 헌정했다.
공군에서 연락기 및 연습기로 사용해 왔으나 1955년 이후 소재가 확인되지 않다가 2004년 복원작업에 성공했다. 복원물이지만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8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전쟁기념관은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며, 매주 월요일 휴관한다.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 날 휴관한다. 관람료는 무료다. 삼각지역 12번 출구에서 바로 연결된다.
전쟁기념관 본관과 분수대 [사진=임요희 기자]
임요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