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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 한미칼럼] 동맹의 현대화, 가치동맹의 귀환… 워싱턴의 전쟁과 서울의 각성
  • 김영 편집인
  • 등록 2025-08-17 05:4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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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드미디어와 딥스테이트, 글로벌리즘의 가면
  • 부정선거와 옥중 편지, 윤석열의 늦은 각성
  • 트럼프의 현대화 구상, 한미 가치동맹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는 ‘동맹의 현대화’는 단순한 방위비 협상이나 군사 재편이 아니다. 그것은 글로벌리즘과 PC주의, 그리고 국가 제도 바깥에서 권력을 조종해온 딥 스테이트에 맞서 자유민주주의의 근본 가치를 회복하는 새로운 동맹 구상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옥중에서 드러낸 반(反)글로벌리즘의 인식은 뒤늦은 각성이지만, 한미 동맹을 가치동맹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역사적 계기를 보여준다. <편집자 주>


21세기 세계 질서를 흔든 두 단어가 있다. 하나는 ‘글로벌리즘’, 다른 하나는 ‘PC주의’다. 국경과 문화를 넘어선 거대한 통합의 흐름은 겉으로는 인류의 진보처럼 보였지만, 그 속에서 각국의 주권과 자유는 조금씩 잠식당했다. 표현의 자유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이름으로 억눌렸고, 선거와 제도는 보이지 않는 세력(딥 스테이트)의 손에 의해 흔들렸다. 미국과 한국 모두 이 거대한 물결 속에서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는 경험을 했다.


이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한국의 윤석열 전 대통령은 옥중에서,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민주주의를 잠식한 글로벌리즘과 딥 스테이트의 사슬을 어떻게 끊어낼 것인가”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 D.C.에서 내린 ‘사실상의 계엄령’은 단순한 치안 조치가 아니었다. 그것은 수도 워싱턴에 기생하며 뿌리내린 글로벌리스트와 딥 스테이트 권력으로부터의 해방전쟁이었다. 미국의 수도는 행정 중심지를 넘어, 금융·언론·법률·정치 네트워크를 통해 권력이 재생산되는 심장부이다. 트럼프는 이를 정면으로 겨냥하며, “법과 질서의 회복”이라는 민주주의 본연의 가치를 다시 세우려 한 것이다.


레거시라 부르지만 실상은 낡은, 올드 미디어는 “워싱턴의 범죄율이 역사적 저점에 이르렀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현실을 왜곡한 프레임이었다. 실제로 2023년 워싱턴 D.C.의 살인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40.9명으로, 멕시코시티(약 8~10명), 보고타(약 15.6명)보다 월등히 높았다. 2024년 다소 감소했어도 여전히 27.3명으로, 만약 D.C.가 주였다면 미국 내 최고 수준의 살인율을 기록했을 것이다. 이는 단순한 범죄 통계를 넘어, 공동체 기반과 제도적 신뢰가 무너진 결과였다. 트럼프가 계엄적 조치를 통해 겨냥한 것도 바로 이 딥 스테이트의 기생 구조였다.


한국 역시 이 구조에서 자유롭지 않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집권 초기 글로벌리즘의 폐해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옥중에서 모스 탄 전 미국 대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글로벌리즘을 “국가와 주권, 자유를 매몰시키는 거대한 기득권 카르텔”로 규정했다. 여기서 그가 말한 ‘기득권 카르텔’은 오늘날 흔히 딥 스테이트라 불리는 권력 네트워크와 다르지 않다. 늦은 각성이지만,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한국 사회는 선거제도의 불신과 딥 스테이트 구조라는 치명적 문제를 안고 있으며, 이는 곧 민주주의의 붕괴를 뜻한다. 트럼프가 2020년 대선에서 직면했던 것과 똑같은 위기를 한국 역시 겪고 있다는 점에서, 두 나라의 경험은 서로 겹친다.


여기에 글로벌리즘의 최대 수혜자인 중국의 존재가 겹쳐진다. 세계화 체제 속에서 중국은 제조업·기술·수출을 통해 막대한 부와 영향력을 축적했다. 그러나 이는 공정한 경쟁의 산물이 아니라, 글로벌리즘과 딥 스테이트가 허용한 불평등한 번영이었다. 트럼프가 중국과 무역전쟁을 선포한 것도, 윤석열이 뒤늦게 글로벌리즘의 위험성을 지적한 것도 결국 같은 전선을 공유하는 행위였다.


오늘의 한미 동맹은 더 이상 군사·경제적 계산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시대적 도전 앞에 선 두 인물의 각성에서 비롯된 가치의 연대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의 권력 심장부에서 글로벌리즘과 딥 스테이트에 맞선 전쟁을 선포했고, 윤석열 전 대통령은 옥중에서 뒤늦게나마 그 체제의 본질을 직시했다. 두 사람의 길은 달랐지만, 결국 도착한 지점은 같다. 그것은 국가 주권을 지키고, 자유로운 선거를 회복하며, 법과 질서라는 민주주의의 기초를 되살리겠다는 다짐이다.


트럼프가 말한 ‘동맹의 현대화’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방위비 분담이나 군사 재편이 아니라, 글로벌리즘과 딥 스테이트, PC주의와 부정선거에 맞선 가치동맹의 재건이 그것이다. 워싱턴의 계엄령과 서울의 옥중 편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질문을 던진다.


“민주주의는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누가 그것을 지켜낼 것인가?”


따라서 트럼프가 윤석열을 외면한다면, 이는 한 개인을 잃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라는 최전선에서 함께 싸울 수 있는 동지를 잃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윤석열의 각성을 가치동맹으로 끌어안는다면, 한미 양국은 글로벌리즘과 딥 스테이트의 공세에 맞선 세계적 자유연대의 두 축이 될 수 있다. 워싱턴에서 시작된 해방전쟁은 서울을 거쳐 아시아 전역으로 확장될 것이며, 이는 21세기 자유민주 진영의 새로운 서사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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