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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필규 칼럼] 자진 무장해제인가, 평화의 역설인가?
  • 박필규 객원논설위원
  • 등록 2025-08-17 14:2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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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의 변화를 이끌지 못한 선의는 무장해제만 될뿐 


객원논설위원. 육사 40기 

이재명 정부의 80주년 광복절 경축사는 9·19 군사합의의 선제적 복원 약속, 어떤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북측의 화답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9·19 군사합의의 선제적 복원을 놓고 '평화 구걸, 굴복 선언'이자 '자진 무장해제'라고 비판한다.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은 군사적 긴장 완화와 국민의 안보 불안감을 줄이고, 북한과의 대화를 모색하는 평화 제스처로 보이지만, 안보 공백에 대한 우려를 심화시키고 있다. 


선제적 대북 정책 복원과 확성기 철거는 현실의 적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우리의 손과 발을 자르고 눈을 멀게 하는 자해 행위로 망국을 부추기는 짓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미국 언론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동맹의 시험대'라는 경고성 기고문이 실리는 등 한미 관계 역시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음을 시사한다. 


1. 지금도 북한을 ‘도와주면 변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가?  


최근 김여정은 대남 확성기 철거에 대해 “철거한 적도, 철거할 의향도 없다”고 못 박으며, 현 정부의 “북측도 일부 철거” 발언을 “무근거한 억측”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우리 군 관측소에서 파주 접경 초소 옆 확성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제정된 북한인권법에 따라 북한 인권 실태조사를 진행해 왔고, 문재인 정권 시절인 2018년부터 매년 북한인권보고서를 제작했지만 올해는 보고서를 내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극도의 북한 정권 눈치보기로 보인다. 이는 이재명 정권이 문재인 정권보다 더 종북·친북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단편적 증거이기도 하다.  


이제 북한을 ‘도와주면 변한다’는 그동안의 평화와 화합 정책의 실효성을 분석하고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가 도와주면 적(敵)도 변한다는 환상은 상대의 전략적 본심을 무시한 위험한 자기 위안일 뿐이고 오히려 북한의 장기 대남 전략과 전술에 말려들 수 있다. 북한이 우리의 선의에 화답하지 않을 경우, 정책은 '일방적인 양보'로 전락하고 국민적 합의를 얻지 못해 지속가능성 명분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 명분을 잃은지 오래인데, 작년에 갔던 각설이처럼 죽지도 않고 집요하게 등장하는 모순의 근원을 알 수 없다.    


2. 대북 지원 사업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 안보 경각심 허물기?


대북 지원의 시작은 북한 주민의 생존을 돕는 순수한 인도주의적 차원이었다. 1995년, 한국 정부는 북한의 극심한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쌀 15만 톤 지원, 1999년 비료 15만 5천 톤 지원 등 대한적십자사와 같은 민간 단체들이 인도적 지원을 하다가, 2000년대 들어서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기조 아래 남북 경제 협력이 본격적으로 확대되었다. 


2000년과 2002년에는 식량 차관 공여 방식의 지원이 이루어졌고, 2002년부터는 매년 30만 톤의 비료가 지원, 특히 개성공단 사업을 통해 대규모 자금이 북한으로 유입되면서, 총 1조 190억(현금은 6,160억) 이 자금의 일부가 핵 및 미사일 개발에 전용되었다는 의혹이 줄곧 제기되었다.


노무현 정부 시기 연평균 지원액은 3,000~4,000억,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 등 남북 관계 경색으로 인해 정부 차원의 대북 지원이 크게 축소되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강화되면서, 인도적 지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교류가 중단되었다.


문재인 정권은 국제기구를 통해 800만 달러 지원, 양곡관리특별회계액(쌀 지원액 등), 실제 지원액은 노무현 정부에 비해 크게 줄어었지만, 북한에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위치한 섬인 함박도에 북한의 군사 시설 건설이 포착되면서 관할권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 외에도 통계에 남지 않은 무수한 물밑 지원, 민노총 간첩단 사건에서 보듯 북한 정권을 위해 암약하는 수많은 간첩까지 고려한다면 북한 돕기는 인권 차원보다 적화 차원이 더 크게 보인다.  


3. 평화는 일방적 선의가 아닌 힘의 균형에서 온다.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은 '선제적 평화'라는 대의 아래 북한에 먼저 손을 내밀었지만, 김여정의 대남 확성기 철거에 대해 “철거한 적도, 철거할 의향도 없다”고 못박는 발언과 지속되는 북한의 도발은 그들의 본심이 변하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북한은 일부 위정자가 유엔 대북제제 위반을 범하면서까지 선의를 보였지만 협력의 신호로 보지 않고 줄곧 어깃장을 놓아왔다. 이는 위정자의 치명적 약점을 잡은 더 큰 요구를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역사는 '도와주면 변한다'는 단순한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했는지 반복해서 증명한다. 진정한 평화는 순진한 기대나 일방적인 양보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상호주의 원칙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힘의 균형 위에서만 가능하다. 9·19 군사합의 복원과 같은 유화적 제스처가 국민의 대북 경계심과 군인의 적개심을 해체하여 안으로부터의 안보 공백을 초래하고, 우리 군의 억지력을 약화시키는 '자진 무장해제'로 이어질 수 있다. 국민의 안보공백 우려는 결코 엄살이 아니다. 


이재명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실험'을 즉시 멈춰야 한다. 진정한 안보 리더십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낭만적인 기대가 아니라, '선(先) 비핵화'라는 원칙 아래 단호하고 현실적인 안보 전략을 추진하는 지혜로운 용기에서 나온다. 


평화를 외치면서도 억제력과 통제력을 잃는다면, 그 평화는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이제는 '힘에 의한 평화'라는 냉철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한미 동맹에 대한 불가역적인 안전 조치를 하고 한미 정상회담에 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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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2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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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17 20:44:46

    주요 일간지로 발전하기를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8-17 17:53:25

    한미일보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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