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해종 작가의 ‘호모 부시마니쿠스’를 받아 든 순간 표지의 강렬함에 먼저 눈길이 갔다. 본문 읽는 것은 잠시 미루고 그림 정보를 찾기 위해 빠르게 책장을 넘겼다. 표지 그림은 아프리카 화가 크호세 은트콕소가 그린 ‘염소, 남자와 도마뱀’(2003)이라는 작품이었다.
책은 이 그림을 두고 “부시먼의 눈에는 사막의 풍경이 단조롭게 보이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허공은 공기 중에 흐르는 보이지 않는 생명 에너지로 출렁이고 대지는 충만하다. 그 안에 인간과 염소, 도마뱀이 동등한 비중으로 배치되어 수평적 공존의 질서를 만들어낸다. 그들의 세계관에는 생명의 높고 낮음이 없다.”
우리는 수많은 현대미술가가 아프리카 미술에 영감받아 작품을 그렸음을 알고 있다. 피카소는 아프리카 전통 가면의 기하학적 형태와 주술적 에너지에 매료됐고, 마티스는 아프리카 조각이 가진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비례미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바스키아는 자신의 뿌리인 아프리카의 상징, 문양, 해부학적 도상에 큰 감명을 받았고, 키스 해링은 아프리카 미술의 원시적 문양과 기호 표현 방식에서 영감을 얻었다.
우리는 또 다른 사실도 알고 있다. 현대인의 직접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출현했다는 것 말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술의 발생지도 아프리카다.”
저자는 책에서 수만 년 동안 문명으로의 개종을 거부한 채, 대지를 조국으로 삼고 수풀을 교과서 삼아 살아온 이들을 조명한다. 문자보다 기억을 믿고, 소유보다 나눔을 선택했으며, 경쟁보다 공존을 삶의 원리로 삼아온 그들. 우리는 그들을 ‘부시먼’이라 부른다.
책은 오랫동안 헐벗고 미개한 사람들로 여겨졌던 부시먼을, 뒤처진 존재가 아닌 현대인이 잃어버린 자연과 영성, 인간다운 삶의 감각을 가장 오래 간직해온 사람들로 바라본다.
“부시먼은 오래전부터 바위 위에 신화와 사냥, 치유와 우주의 기억을 새겨왔다. 오늘날의 부시먼 작가들은 삶의 터전과 전통이 사라져가는 현실 속에서, 조상들이 남긴 이야기를 종이와 캔버스 위에 다시 옮겨 놓는다. 그림에 미학적 전략이나 예술적 야심은 없다. 그것은 다만, 삶의 벼랑 위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남기기 위한 또 하나의 언어일 뿐이다.”
책은 그 그림들 뒤에 놓인 세계를 추적한다. 부시먼의 생태와 문화, 수렵과 채집, 신화와 공동체, 예술과 철학을 촘촘히 엮어내며 하나의 총체적인 세계관을 펼쳐 보인다.
그리고 책장을 넘길수록 독자가 만나게 되는 것은 부시먼이 아닌 자기 자신이다. 왜 우리는 더 많이 소유할수록 더 불안해지는가. 더 촘촘히 연결될수록 왜 더 깊이 고립되는가. 더 많은 지식을 쌓았는데도 삶은 왜 갈수록 복잡해지는가. 이 책은 섣불리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수만 년 동안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조용히 되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가.”
임요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