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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폭정은 직권남용이 상례화될 때 시작된다
  • 관리자 관리자
  • 등록 2025-10-21 10: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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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덕의 문법에서 감정의 문법으로
  • 감정의 문법에서 절차의 문법으로
  • 권한이 권력이 되는 순간, 민주주의는 멈춘다
법사위의 권한 남용 논란은 단순한 정치 공방이 아니다. 이재명 정권 아래 국회 법사위는 제도적 권한을 권력의 언어로 바꾸며, 민주주의 절차의 근본을 흔들고 있다. 본 사설은 도덕·감정·절차의 문법으로 진화한 한국 정치언어의 구조를 통해, 폭정의 징후를 진단한다. <편집자 주>


10월 15일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대법정 법대에 올라 현장 검증을 실시하는 모습. 주진우 의원실
 

법대 위에 선 국회의원들. 

국민은 그 장면 앞에서 묻는다.


“이것이 감시인가, 아니면 지배인가”

 

10월 16일 대법원 국정감사 현장에서 일부 의원들이 단상 쪽으로 이동하며 항의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대법정은 사법부 독립의 상징이다. 입법부의 감시 기능이 사법부의 권위 위로 올라선다면, 그것은 견제가 아니라 권력의 시위다.

 

법제사법위원회는 본래 법률안의 체계와 자구를 점검하는 기술적 기구다.

 

그러나 오늘의 법사위는 사실상 ‘입법의 상원’처럼 군림하고 있다. 법안은 법사위 문턱에서 멈추고, 위원장은 의사일정을 독점한다. 권한은 품질 검증의 절차였지만, 이제는 정치의 도구가 됐다.

 

국민이 맡긴 권한이 정파의 무기로 변할 때, 그것이 곧 직권남용이다.

 

이재명 정권의 국회 법사위는 그 남용의 상징이다. 체계·자구 심사라는 기술적 권한이 정파의 방패로 쓰이고, 견제의 기능은 통제의 수단으로 바뀌었다. 법사위는 더 이상 법률의 품질을 다듬는 기구가 아니라, 정치의 성패를 결정짓는 권력의 전장이다.

 

이재명 정권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이제 견제와 균형이 아니라, 절차의 지배와 언어의 통치로 구현되고 있다.

 

티모시 스나이더는 ‘On Tyranny’에서 말했다. “폭정은 제도가 무너질 때가 아니라, 제도를 당연하게 여길 때 시작된다.”

 

그의 경고처럼, 폭정은 총칼로 오지 않는다. 합법의 외피를 두른 관행으로 온다. 법사위의 권한이 반복적으로 남용될 때, 그것은 이미 제도의 일상이자 폭정의 초입이다.

 

좌파의 문법은 이 과정을 정당화하는 언어다. 그 문법은 도덕으로 시작해 권력으로 끝난다. 상대의 논리를 반박하지 않고, 도덕의 잣대로 배제한다. 정치의 언어가 절차의 언어를 삼키는 순간, 민주주의는 이미 중립을 잃는다.

 

그 문법의 기원은 5·18이었다. 국가 폭력의 기억은 도덕의 언어로 정당성을 얻었고, 그 도덕은 이후 모든 정치의 언어가 되었다. 세월호의 노란 리본은 그 문법을 대중 감정으로 확장시킨 상징이었다. 기억의 상징은 애도의 언어로 남아야 하지만, 그것이 도덕의 면허장이 되고 정치의 완장이 되는 순간, 상징은 윤리가 아니라 권력이 된다.

 

이제 그 언어는 법사위의 절차 속으로 들어왔다. 절차의 이름으로 권력을 휘두르고, 합법의 형식으로 남용을 감춘다.

 

도덕의 문법이 권위를 낳고, 

감정의 문법이 대중을 움직이며, 

차의 문법이 권력을 완성할 때, 


그것이 바로 폭정의 서사다.

 

제퍼슨은 말했다. “폭정은 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 다수가 침묵할 때 시작된다.” 국민은 이제 그 침묵을 거부해야 한다.

 

권한이 권력으로 바뀌는 순간, 민주주의는 멈춘다.

 

법사위의 완장은 제도의 장식이 아니라, 권력의 경계선을 가리키는 경고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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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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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oomok2025-10-21 12:08:01

    명문중의 명문이다. 지금의 좌파들의 권력이 된 완장들의 끝판을 진단한 언어의 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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