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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캄보디아 스캠의 덫… 왜 한국만 유독 많이 당하나
  • 김영 기자
  • 등록 2025-10-21 17:3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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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린스그룹의 그늘, 캄보디아 스캠의 중심에 선 한국인
  • 제재 없는 나라, 해외취업의 환상이 만든 범죄의 통로
  • 금융의 사각지대가 국민을 표적으로 만들었다
캄보디아 스캠센터는 단순한 해외사기가 아니다. 한국 청년이 가장 많이 피해를 입었고, 그 배후엔 제재 공백과 금융의 허점이 있었다. 이번 기획은 프린스그룹을 중심으로, 왜 한국이 국제범죄의 표적이 되었는지 그 구조적 이유를 추적한다. <편집자 주>

캄보디아 스캠의 그늘, 사라진 목소리들. 빈 연단 위에 남겨진 신문 한 장은, 제재 없는 국가가 외면한 한국인의 실종을 상징한다. 한미일보 그래픽

 

프린스그룹의 그림자, 330명 실종… ‘제재 없는 국가’의 국민이 표적이 됐다

 

한국인 피해가 유독 많은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캄보디아의 스캠센터를 운영한 프린스그룹은 미국과 영국에서 ‘초국적 범죄조직(TCO)’으로 지정됐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단 한 차례의 공식 제재도 받지 않았다. 그 사이 피해자는 쌓였고, 국내 은행에는 이 조직과 연관된 예치금 912억 원이 동결된 상태다.

 

한미일보는 외신 기록과 금융당국 자료, 피해자 증언을 종합해 이 사태의 구조를 분석했다.


한국인 피해자는 지난 1년 새 최소 330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피해 유형은 대부분 고임금 해외취업을 미끼로 한 구인사기였다. 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 등지의 온라인 채용공고에는 “월 500만 원 보장”, “영어 불필요” 같은 문구가 붙었다.

 

도착한 순간 피해자들은 여권을 압수당하고, 외부와의 연락이 끊긴 채 온라인 사기나 암호화폐 투자 유인 행위에 강제 동원됐다. 현지 경찰 조사에서는 이 과정에 한국인 중개인들이 연루된 정황도 일부 드러났다.

 

스캠센터라는 말은 범죄조직의 ‘온라인 농장’을 뜻한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전역에 이런 시설을 운영하며, 강제노동과 인신매매, 폭행을 통해 이윤을 창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미국 법무부는 프린스그룹 회장 첸즈(Chen Zhi)를 ‘강제노동을 통한 온라인 사기 운영’ 혐의로 기소했고, 미 재무부는 그룹과 관련된 146개 법인과 개인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영국 역시 런던 내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을 동결했다.

 

그러나 한국의 대응은 달랐다.

 

프린스그룹과 직접 연계된 법인이 국내에 없다는 이유로, 정부는 독자 제재를 내리지 못했다. 한국에는 미국의 ‘글로벌 매그니츠키법’처럼 해외 인권침해자나 범죄조직을 제재할 법률이 존재하지 않는다. 유엔 안보리 결의가 없는 한, 외국 기업을 국내법으로 제재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그 결과, 캄보디아 현지 국민·신한·우리·전북은행 법인에 남아 있는 프린스그룹 관련 예치금 912억 원은 단순 ‘동결’ 조치에 머물고 있다. 법적 몰수나 범죄수익 환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 같은 제도적 공백은 한국인을 향한 범죄의 표적화를 낳았다.

 

미국과 영국이 제재로 차단한 통로가 닫히자, 범죄조직은 규제가 약한 한국 시장을 ‘대체 루트’로 삼았다. 한국 내 은행은 국제 제재망 밖에 있기 때문에, 자금세탁이나 송금 통로로 악용될 위험이 커졌다.

 

해외 취업을 꿈꾸는 청년층은 이런 구조 속에서 손쉬운 희생양이 되었다.

 

문화적 요인도 작용했다.

 

스캠조직들은 ‘한국식 신뢰 코드’를 정밀하게 모방했다. ‘서울 지사’, ‘한국 담당팀장’ 등 실제 존재하지 않는 명함과 계약서를 제시하며, 정식 채용절차를 흉내 냈다. 한국인들은 문서와 형식을 신뢰하는 경향이 강해, 서류가 완벽할수록 경계심이 낮아진다.

 

외신에 따르면 스캠센터로 유입된 한국인은 대만·말레이시아보다 비율상 두세 배 높았다.

 

정부 대응은 뒤늦었다.

 

외교부가 시하누크빌과 프놈펜 일대에 여행경보 ‘블랙코드’를 발령한 것은 사망사건 발생 석 달 뒤였다. 피해자 가족들은 현지 수사에 접근하지 못했고, 국제공조망에서도 한국은 옵서버 수준에 머물렀다.

 

결국 국민은 ‘자국의 보호 밖에 있는 시민’으로 남았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제재 공백을 “제도 없는 선진국의 맹점”으로 지적한다. 


경제력은 선진국이지만, 제재와 인권 대응은 개발도상국 수준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지금이라도 미국식 ‘독자 제재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외교적 부담을 이유로 제재를 미루는 사이, 프린스그룹의 자금은 여전히 캄보디아 현지에서 회전하고 있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예치금은 동결돼 있지만 법적 몰수는 어렵다”며 “국제공조를 통해 범죄수익임이 확인돼야 비로소 제재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확인’은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 사이 또 다른 한국인 청년이, 또 다른 구직공고를 통해 같은 덫에 걸려들고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이 피해가 큰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해외취업과 투자에 대한 환상이 낳은 개인의 허점,

둘째, 해외 범죄에 대응할 제도적 장치가 없는 국가의 무능,

셋째, 제재를 두려워하지 않는 국제범죄조직이 한국을 ‘쉬운 나라’로 본 결과다.

 

한국이 제재를 하지 않는 사이, 세계는 이미 한국인을 보호 대상으로가 아닌 ‘대상(Target)’으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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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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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SKim33162025-10-22 05:52:26

    한국사람은 신중하고 조심성있게 처신하지 않고 주변의 선동이나 감언이설에 쉽게 휘둘리는 면이 있다.
    그래서 캄보디아나 월남사람들에게 곧잘 호구취급을 받는다.
    조심성 있다고 해서 겁쟁이가 아니다.
    매사에 덤벙대지 말고 한번 더 생각해서 백번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것을 차제에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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