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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필규 칼럼] 한미 팩트시트, 논쟁이 아닌 추진계획으로 국익을 검증해야
  • 박필규 객원논설위원
  • 등록 2025-11-18 0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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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외 협상에서 정치적 계산이 앞서면 국익 손실 초래


한미 팩트시트. 연합뉴스

객원논설위원·육사 40기한미 ‘조인트 팩트시트’를 둘러싼 여야 공방은 ‘국익 시트’ 대 ‘백지 시트’라는 감정적 프레임이 충돌하고 있다. 한쪽은 외교적 승리라 하고, 한쪽은 정권 유지를 위한 과도한 바치기라고 공격한다. 이런 대립 속에서 중요한 질문은 “이 문서가 실제로 국가 안보에 무엇을 이롭게 하고, 무엇을 요구하며, 앞으로 어떤 각론을 채워야 하는가”라는 본질이다.  


팩트시트가 담고 있는 안보 관련 핵심은 세 가지다. 미국의 핵추진 잠수함(SSN) 건조 지지, 한국 기업의 대규모 대미 투자, 그리고 첨단 무기·확장억제 협력 확대다. 하지만 이것이 곧 전쟁 방지와 국익 성취와 생존 실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문서는 어디까지나 총론이다. 추진을 위해 넘어야 할 세부 과제가 산적해 있다.


팩트시트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분명하다. 미국은 처음으로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지지한다’고 문서화했다. 한국은 국방비를 GDP 대비 3.5% 수준으로 확대하고, 2030년까지 미군 장비 구매 250억 달러, 주한미군 330억(현재 매년 10억)달러 지원이라는 대규모 재정 의무를 명시했다. 한국의 전략적 역할은 북한을 넘어 대만 해협과 인도-태평양 전역으로 확대했다.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위해 너무도 큰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외교의 상징적 성과라고 하지만, 핵잠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기술과 미국내 법적 기반은 단 하나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다. 핵잠은 선언만으로 완성되는 사업이 아니다. 핵잠 ‘지지’ 한 줄에 호들갑을 떨 필요도 없다.


이 시점에서 호주의 핵추진 잠수함 경험은 중요한 교훈을 준다. 2021년 호주·영국·미국 세 나라 간의 삼자 안보 파트너인 오커스(AUKUS) 결성을 통해 호주의 핵추진 잠수함이 공식화되었다. 호주는 중국의 해군력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핵잠을 선택했지만, 전력화는 2040년대 후반으로 미뤄졌고 총비용은 천문학적 수준으로 치솟았다. 비핵보유국의 핵 추진체 사용을 둘러싼 국제적 논란도 팽팽하다. 


무엇보다도 호주는 핵연료·정비·훈련을 미국과 영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핵잠 추진이 외교·기술·산업·국제법이 얽힌 초(超)복합 프로젝트임을 보여준다. 기술력이 충만한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실제로 한국의 핵잠 추진은 한미 정상이 큰 틀에서 공감대를 이뤘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구조적 난제를 안고 있다. 


첫째, 법적·제도적 장벽이 거대하다. 현재의 한미 원자력 협정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사용을 금지하고 있어 핵잠 도입의 출발선조차 넘을 수 없다. 핵잠 추진을 위해서는 협정의 개정 또는 별도 조약 체결이 필요하다. 이는 미국 의회의 승인을 요구하는 고난도 절차다. 즉, ‘지지’라는 말 한 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둘째, 핵잠 도입 방식에 대한 한미 간 각론 차이가 크다. 한국은 핵연료 승인과 기술 이전을 바탕으로 국내 건조를 희망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조선소에서 건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전략 자산 확보라는 목표와 미국의 산업·고용·기술보안 전략이 정면으로 충돌한다. 우리가 원하는 핵연료 승인과 기술 이전 관련 각론 합의를 하려면, 친중을 고수하려는 현 정부에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요구할 것이다. 


셋째, 미국 조야는 기술 이전을 막을 것이다. 핵잠 기술은 미국 내에서도 제한된 인원만 접근하며, 영국과 호주조차 일부 제한된 범위만 공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실제로 어느 정도 수준의 기술 협력을 받을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이 세 겹의 난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한국의 핵잠 추진은 ‘미완의 전략 설계도’ 혹은 확률적으로 잃을 게 많은 ‘도박’이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


결국 팩트시트의 진짜 쟁점은 ‘지지’라는 표현 자체가 아니다. 비어 있는 각론을 채울 실행 계획에 있다. 핵잠 사업은 국가 생존 전략의 중추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수십조 원의 재정과 국제법적 리스크가 중첩된 초대형 프로젝트다. 


지금 국회가 할 일은 감정적 논쟁이 아니라 냉정한 검증이다. 한미 실무협상의 단계별 목표와 마지노선을 공개하고, 건조 일정과 예산을 포함한 로드맵을 제시하며, 국회·전문가가 참여하는 상시 검증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투명하지 않은 핵잠 추진은 국익이 아니라 정치적 착시이고, ‘지지’ 문구는 성취가 아니라 가능성에 불과하다.


국익은 선언이 아니라 검증으로 지켜진다. 세 겹의 난공불락인 법적·제도적 장벽과 각론 명시와 핵연료와 기술 이전을 뚫지 못한다면, 핵잠은 전략 자산이 아니라 국가 부채가 된다. 


국민은 대외 협상에서 정치적 계산이 앞서고 미래 부담을 고려하지 않은 즉흥적 결론에 좌절한다. 협상 역량은 국익의 첫 방어선이며, 실물 검증과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 정권의 일시적 이익과 감정이 아니라 국가 계속성 유지가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 핵잠은 정치보다 군(軍)에 책임제 임무로 맡기는 게 그 결과가 빠를 것이다.  


진짜 군심은 핵잠 추진보다 명령 질서 회복과 지휘체계 정립을 요구한다. 막강한 힘으로 뒤에서 군을 조정·통제하는 이상한 밀실 지시를 근절해야 한다. 군 관련 주요 의사 결정은 그 지휘라인이 명확해야 한다. 반대 진영의 반발과 책임 소재를 의식하여 명령의 원점을 감추는 야비한 짓은 멈춰야 한다. 


합참의장의 ‘합참 장성 전면 교체’ 발언과 11월17일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 육군사관학교 개최 결정은 최상위 결정권자가 아니면 내릴 수 없는 명령으로 보인다. 파도의 물결을 보면 어디서 바람이 시작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세상이다. 군심은 핵잠보다 투명한 명령체계를 촉구한다. 


박필규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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