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한미일보 심층기획 – ❶] 죽음을 소비하는 사회… 안동댐 시랍 시신
  • 김영 기자
  • 등록 2025-07-22 13:53:33
  • 수정 2025-07-22 20:58:59
기사수정
  • 시신은 말이 없는데, 우리는 너무 많은 말을 덧붙였다
  • 환청과 인과착각, 죽음을 둘러싼 상상과 왜곡
  • 시랍화된 진실, 소비되는 죽음, 망자를 클릭하는 사회
15년 만에 떠오른 안동댐 시신은 과학적으로 ‘시랍화’된 상태였습니다. 경찰은 자연사로 결론지었고 유족은 조용히 장례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온라인에서는 미신, 환청, 정치적 음모론이 난무했습니다. 이번 편은 죽음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 죽음을 어디까지 이야기할 권리가 있는가를 살펴보고, 이 사건을 둘러싼 사회적 프레임이 어떻게 ‘감정의 정치화’를 거쳐 ‘죽음을 소비하는 구조’로까지 이어졌는지를 추적합니다.<편집자 주>

안동댐. 경북도 홈페이지

안동댐 시랍 시신과 음모론, 인간 심리의 그림자

 

목차

1. 안동댐 시랍 시신과 음모론, 인간 심리의 그림자

2. 세월호 10주기, 기억이 권리 아닌 권력으로 바뀌다

3. 5.18 기억의 제도화 , 국가가 정한 진실은 진실인가


 

2025년 5월 중순, 경북 안동댐 수심 30m 진흙 바닥에서 한 시신이 발견됐다. 유전자 감식 결과, 2010년 8월 이 댐 인근에서 실종된 안동 Y중학교 교감 A씨로 확인됐다. 시신은 몸통이 시랍화된 상태였고, 머리와 팔·다리 일부가 훼손돼 있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를 바탕으로 “타살 혐의점은 없다”며 사건을 종결했다.

 

그러나 사건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구조 당시 참여했던 전직 수난구조대장은 “이보게, 날 좀 데려가시게”라는 환청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일부 언론은 이를 그대로 인용했고, SNS에서는 ‘죽은 자가 스스로 발견을 유도했다’는 식의 미신적 해석이 순식간에 퍼졌다. 유튜브 채널에서는 이 시신과 정치적 사건을 연결하며 “정권이 감추고 있던 진실이 드러난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 온라인상에서 강하게 결합된 서사가 하나 있다. 바로 모스 탄(Morse Tan) 전 미국 국제형사사법 대사의 연결이다. 일부 커뮤니티와 유튜브 콘텐츠는, 모스 탄이 한국에서의 인권 유린과 감춰진 진실을 언급한 뒤 이 시신이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실관계는 정반대다. A씨의 시신은 5월 15일에 이미 인양됐고, 모스 탄은 5월 27일 KCPAC 국제선거감시단 기자회견에 참석했으며, 본격적인 부정선거 관련 발언은 7월 15일 입국 이후에 시작됐다. 그럼에도 온라인상에서는 “모스 탄 발언 → 시신 발견”이라는 역순의 인과관계 서사가 마치 사실처럼 유포됐다.

 

이는 법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편향(cognitive bias), 그중에서도 인과착각 이론(illusory correlation)의 대표 사례다. 인과착각은 서로 관련 없는 두 사건이 시간상 인접했을 때, 이를 마치 원인과 결과처럼 착각하는 인간 심리 현상이다. 시신 발견과 탄의 발언 사이의 순서를 혼동하거나, 인지상 의미 있는 연결고리를 만들고자 할 때 이 오류는 자주 발생한다.

 

법의학적으로도 이 사건은 전형적인 시랍화 사례로 평가된다. 안동댐 수심 30m는 연중 수온이 6도 안팎으로 낮고, 혐기성 진흙층이 두껍게 쌓여 있다. 이는 부패를 억제하고, 지방 조직이 밀랍처럼 굳는 시랍화 환경을 형성한다. 시신은 가라앉은 상태에서 오랜 시간 동안 가스 발생 없이 부력 없이 머물 수 있으며, 몸통은 보존되고 사지는 유실되는 양상을 보인다.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죽음이 미신적 상상과 음모론으로 덧칠되는 현상은 낯설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반응 역시 인간의 해석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죽음은 말이 없고 설명도 없다. 그 공백을 사람들은 이야기로 채우고 싶어한다. 때로는 종교, 때로는 정치, 때로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그 이야기를 제공한다.

 

문제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진실을 가리는 수단이 된다는 점이다. ‘환청’은 구조자의 주관적 경험일 수 있지만, 그것이 시신 인양의 원인이었다는 식의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 모스 탄의 발언과 시신 발견의 시점을 바꿔 연결하는 프레임은 사실에 기반한 비판이나 의혹 제기라기보다 감정적 연결 욕구의 산물에 가깝다. 유족의 고통은 고려되지 않고, 죽음은 또 한 번 소비된다.

 

시랍 시신이 말하고 있는 것은 침묵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침묵 위에 환상과 의심, 믿음을 쌓아올렸다. 그리하여 한 인간의 죽음은 유튜브의 콘텐츠가 되었고, 커뮤니티의 도구가 되었으며, 정쟁의 재료가 되었다. 죽음은 이제 ‘조용히 떠난 자’가 아니라 ‘해석되어야 할 신호’로 소비된다.

 

우리는 지금, 시신을 과학이 아니라 감정으로 읽고, 증거가 아니라 상상으로 판단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망자의 시간이 음모론자의 언어로 채워지고, 유족의 침묵은 클릭 수의 함성에 지워진다. 그것이 진실의 이름으로 포장된다는 점에서 더욱 위태롭다.

 

죽음을 말하는 것은 언론의 책임일 수 있다. 그러나 죽음을 해석하려는 욕망을 경계하는 것, 그 또한 언론의 마지막 양심이어야 한다.

 

이제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질문은 이 하나다.

죽음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 죽음을 어디까지 이야기할 권리가 있는가.

 


#안동댐시랍시신 #모스탄 #인지편향 #인과착각 #법의학 #죽음과심리 #음모론해부 #한미일보기획 #죽음을소비하는사회 #시랍화



관련기사
1
유니세프-기본배너
국민 신문고-기본배너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