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조기 대선을 앞두고 5월2일,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찾은 한덕수 전 총리가 광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의 반발에 가로막히자 “저도 호남 사람”이라며 참배를 허락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우리가 무려 1000년을 이어져 온 해묵은 지역 차별의 원한과 비극을 씻어내고 싶다면, 전라도 사람들의 한(恨)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전라도인의 가슴 켜켜이 쌓인 한을 외면한다면, 이 문제는 영원히 해결할 수 없다.
필자는 독이 있는 곳에 약도 있다고 믿는다. 난제(難題)는 있을 수 있으나, 답이 없는 문제는 없다고 굳게 믿고 있다.
훈요십조·풍전세류의 굴레부터 벗기자
호남에 관한 해법도 마찬가지다. 난제일 수는 있으나, 그 문제를 풀지 않고 영원히 지속되게 놔둘 수는 없다. 문제는 호남의 해법에 대해, 그 해법을 찾는 데에 전 국민이 얼마만큼 진심을 갖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를 풀기 위한 용기를 가져야 한다. 고려 태조 왕건이 남긴 훈요십조 제8조에는 “차현 이남, 공주강 외의 사람을 등용하지 말라”는 구절이 있어 호남 차별의 기원이 되었다.
그러나 역사학계에서는 이 구절이 왕건 사후 거란의 침입 등으로 자료가 소실된 틈을 타서 특정 정치 세력이 호남을 배제하기 위해 삽입한 것이라는 조작설을 내놓고 있다.
그렇다. 이제 우리는 훈요십조는 잘못된 조작이며, 전라도 사람의 성품을 말하는 ‘풍전세류’(바람 앞에 나부끼는 가는 버들·싹싹하고 영리하지만 상황에 따라 태도를 바꾸거나 기회주의적인 성품을 빗대는 말) 역시 잘못된 해석이라고 용기 있게 말해야 한다.
무엇이든 해결하려면 반드시 용기가 따라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라도 사람들의 눈을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마주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위해 죽을 수 없다”던 1960~ 80년대 전라도 청년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전라도 사람들의 원망 어린 시선을 피하지 말고 마주하라. 그리고 천 년 동안 가슴을 찢어 놓았던 훈요십조가 조작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풍전세류도 호남의 선비들이 지닌 멋진 풍류였음을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 차별의 역사 오류 인정하면 5·18의 해법도 보일 것
지역 차별의 역사가 진정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용서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가선다면, 호남인들이 가슴을 닫고 있을 이유가 없다. 바로 그 눈빛으로 5·18을 바라본다면, 5·18도 해법을 내보일지 모른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민주화 유공자라는 이름으로 스며든 불순 세력, 가짜 유공자들을 몰아낼 수 있다. 이석기 같은 이들이 5·18과 광주·호남의 명예를 훼손하는 진정한 주범들이기 때문이다. 이들로 인해 5·18 광주가 주사파의 본거지가 되고, 이적단체의 모태가 된 상황을 우리는 참된 마음으로 질타해야 한다.
그리고 최근 롯데 칠성이 광주를 떠나고, 전남대학교 앞 상권은 물론 광주 전 지역 상가 공실률이 48%에 이르는 비참한 현실을 끄집어내 주어야 한다.
호남의 대표기업 금호타이어가 폴란드로 떠나는 이유가 광주형 일자리 때문임을 알려 주어야 한다. 노동자 중심의 기업이란 게 얼마나 공허한 주장인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도록 깨우쳐 주어야 한다.
이석기는 분명 북한을 위해 테러를 일으키겠다고 했던 반역자다. 그러나 이석기도 목포 출신이다. 그가 1962년생이니 전라도 차별이 극심했던 시기를 살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석기도 전라도 차별을 온몸으로 겪었던 시대의 피해자였을지 모른다. 그 또한 대한민국을 위해 죽을 수 없는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라도 사람들의 아픈 가슴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이석기가 반역의 길을 택하게 된 배경에 스민 아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전라도를 차령 이남 배역지라는 훈요십조의 시각으로, 혹은 풍전세류처럼 간사하고 경박하다는 시각으로 본다면,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불행한 역사 정면으로 마주해야 해법의 길 열린다
그러므로 불행한 역사일지라도, 역사는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진심을 다해 용기를 갖고 잘못된 지난날에 대해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해법은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고, 마음에서 결실이 맺어지는 것이다.
대부분의 영남인은 이 지역 차별 문제와 관련이 없을 수 있다. 지리산이라는 산맥과 강으로 서로 왕래가 막힌 조선조 시절, 언제 그들이 전라도 사람들을 만나기나 했을 것인가.
벼슬길에 올라 한양에 터를 잡은 영남학파 유학자들이 기록한 것을 읽고, 제자들이나 후인(後人)들 중에 호남 차별에 앞장선 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서울과 경기·충청 지역민들도 유학자 중심의 소수가 차별의 가해자였으리라 짐작된다.
안동 김씨 60년 세도와 그 폐해도 지금 안동 지역에 살고 있는 분들의 책임이 아니다. 모든 것은 한양으로 터를 옮긴 서울 안동 김씨들의 소행이었다.
우파의 앞길 막고 있는 지역 차별주의자들
보수우파가 과거를 청산하지 못하고 진화하지 못한 이유가 있다.
조국 근대화 시기를 보낸 국민의힘 원로들은 지역 차별에 앞장섰던 주체들일 수 있다. 지역 감정을 이용해 정치인으로서 영화를 누린 게 바로 그들이다. 지난 윤 대통령 탄핵 당시 팔짱 끼고 관망하던 그들이다.
더러운 것 손에 안 묻히고 사는 도덕군자연(道德君子然)하던 이들이 현재 보수우파의 길을 막고 있다. 금수저 출신 선민의식(選民意識)으로 가득찬, 마인드가 썩어빠진 자들이기에 세대교체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누군가는 전라도는 독립하라 하지만, 그런 우매한 소리 또한 전라도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전라도 사람들만큼 강인한 사람들은 없기 때문이다.
13척의 배로 300척이 넘는 왜군을 상대한 사람들이다. 차별의 시대를 온몸으로 이겨낸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전라도 독립은 민족 분열의 마지막 결말일 것이다.
광주 5·18… 호남 차별의 시대가 낳은 아픔의 산물
민족 분열을 해결하기 위한 해법이 없을 수 없다. 먼저 전라도 사람들의 외로운 눈빛을 피하지 말라. 또한 불행했던 호남 차별의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라. 피하지 말라. 5·18도 호남 차별이 극심했던 시대가 낳은 아픔의 산물이다.
먼저 이해하고 너와 나의 감정을 공유하면서, 화합을 도모해야 이 난제를 풀어낼 수 있다. 지역갈등을 풀 수 있는 해법은 역사의 이해와 정서의 공유에 있다. 다시 말하지만 답이 없는 문제는 없다.
영웅의 첫째 조건은 용기를 갖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큰 용기를 지녔던 분이다. 그리고 조국 근대화라는 민족 숙원의 길을 완성하셨다. 그렇듯이 우리 모두 지역갈등의 문제를 풀기 위해 용기를 가져야 한다.
기도하는 마음뿐이다. 필자도 곧 세상을 떠나야 한다. 죽기 전에 민족이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세상을 보았으면 한다. 이것이 어찌 나만의 소원이겠는가, 사람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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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학 시인
시인, 국가유공자, 칼럼니스트, 박정희 대통령 홍보위원, 전라도에서 36년 교직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