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좌)과 이재명 대통령(우) [사진=연합뉴스]
범여권이 조희대 대법원장을 불러내자 야권은 이재명을 소환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 의원들이 한덕수·이상민·김건희 사건의 상고심 지연 책임을 조 대법원장에게 물으며 ‘직무유기’와 탄핵, 법왜곡죄 처벌까지 거론하자 야권이 “그렇다면 1년 넘게 멈춰 있는 이재명 재판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맞받은 것이다.
이재명 재판 재개 요구는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대통령 취임 후 형사재판이 잇따라 중단되면서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러나 지난 7월9일 대법원이 대통령 불소추특권에 관한 새로운 법리를 내놓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여기에 범여권이 다른 사건의 재판 지연을 대법원장 탄핵 사유로까지 끌어올리자 오래된 재판 재개론이 다시 정치권 전면으로 부상하고 있다.
조희대 겨눈 범여권…나경원 “이재명 재판은 왜 멈췄나”
범여권 법사위원들은 16일 “내란 및 국정농단 사범 재판을 지연하는 대법원장의 직무유기에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며 조 대법원장에게 구체적인 전원합의체 심리기일과 최종 선고 시점을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특검법이 규정한 상고심 3개월 이내 판결 조항을 근거로 한덕수·이상민·김건희 사건의 전원합의체 회부와 심리 지연을 문제 삼았다. 조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과 법왜곡죄 처벌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17일 이 논리를 이재명 재판에 돌려세웠다.
나 의원은 “재판 지연의 원조가 누구인가”라며 “그 논리라면 이재명 재판을 수년 끈 것, 재판이 중단된 것이야말로 세계사에 남을 국기문란”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재명 사건 담당 재판부를 향해 “쟁점이 정리된 선거법 파기환송심 등 중단된 이재명 대통령의 재판 기일을 즉각 지정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이번 발언에서는 지난 7월9일 대법원 판례를 직접 근거로 들었다. 기존 재개 요구가 주로 정치적 형평성이나 사법정의 문제에 집중됐다면 대법원이 새로 제시한 헌법 제84조 법리를 중단된 재판에 연결한 것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 정점식 원내대표 등도 최근 잇따라 재판 재개를 요구했다. 개혁신당에서도 같은 주장이 나왔다.
정치권 밖에서도 재개 요구는 이어졌다. 지난해 11월 국민수사대·청년이데아·시국에 행동하는 대학연합(시대연)·전국학생수호연합·행동하는자유시민 등 시민단체는 이재명 재판 재개를 요구하는 12만9196명의 서명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7·9 판례가 바꾼 법적 환경
재개 요구가 새로운 국면을 맞은 변곡점은 7월9일 대법원 2026도6500 판결이다.
대법원은 헌법 제84조의 ‘형사상의 소추’와 관련해 “‘소추’는 사전적으로 ‘형사 사건에 대하여 공소를 제기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판시했다.
또 대통령 불소추특권은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상 원칙에 대한 예외인 만큼 그 적용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해서는 안 된다는 법리도 제시했다.
여기서 형사소송법 제246조가 새로운 연결고리가 된다.
형사소송법 제246조는 “공소는 검사가 제기하여 수행한다”고 규정한다. 법 조문 자체가 공소의 ‘제기’와 ‘수행’을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이재명의 중단된 형사사건들은 모두 대통령 취임 전에 이미 공소가 제기됐다.
따라서 7·9 판례 이후에는 헌법 제84조가 금지하는 ‘소추’의 범위를 대통령 취임 전에 이미 끝난 공소제기를 넘어 공소수행과 재판 계속까지 확대할 수 있는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대법원이 ‘소추’의 사전적 의미를 공소제기로 제시했고 형사소송법은 공소의 제기와 수행을 별도로 표현하고 있는 만큼, 취임 전에 이미 제기된 공소를 유지하는 것까지 헌법 제84조가 금지한다고 볼 것인지 다시 따져볼 법적 근거가 생긴 셈이다.
다만 7월9일 판결 자체가 취임 전에 기소된 대통령의 기존 형사재판을 임기 중 계속할 수 있는지를 직접 판단한 것은 아니다. 판결의 직접적인 쟁점은 대통령 불소추특권과 재직 중 수사의 관계였다.
따라서 7·9 판례만으로 이재명 재판이 자동으로 재개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대법원이 공소수행은 헌법 제84조상 ‘소추’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직접 판시한 것도 아니다.
결국 새 판례의 법리를 기존 재판에 어떻게 적용할지는 각 담당 재판부가 다시 판단해야 할 문제로 남아 있다.
한상대 “검찰 기일지정 요구 가능”…법원 내부는 ‘갈등’
법조계에서도 7·9 판례 이후 검찰과 법원이 재판 재개 여부를 다시 판단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상대 전 검찰총장은 한미일보에 “새로운 판례가 나왔으니 재판 재개를 위한 검찰의 기일지정 요구는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 전 총장은 현재 검찰과 법원이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는 “문제는 권력의 눈치를 보는 검찰과 대법원이 이와 관련해 서로 눈치를 보는 상황”이라며 “정치권의 압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이 먼저 기일지정을 신청해 법원의 판단을 구할 수 있지만 검찰과 법원 모두 선뜻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진단이다.
법원 내부의 기류가 단순하지 않다는 전언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한미일보에 “기일지정에 대한 판단은 기본적으로 재판부의 몫이긴 하지만 사실상 대법원장의 의지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전해 들은 법원 내부 흐름을 요약하면 ‘갈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전했다.
개별 사건의 공판기일을 정하는 것은 해당 재판부의 권한이다. 대법원장이 특정 재판부에 재판 재개를 지시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이 전직 법원장 출신 인사의 전언대로라면 7·9 판례 이후에도 기존 재판 중단 상태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를 놓고 법원 내부에서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범여권이 문제 삼은 한덕수·이상민·김건희 사건과 이재명 사건의 법적 구조는 동일하지 않다. 전자는 현재 진행 중인 상고심의 심리 속도가 쟁점이고, 후자는 대통령 취임 전에 시작된 재판을 헌법 제84조를 이유로 중단한 뒤 다시 속행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다.
그러나 범여권 스스로 ‘재판 지연’을 직무유기라고 규정하고 조 대법원장의 책임을 묻겠다고 나서면서 야권에는 이재명 재판을 다시 소환할 계기를 제공했다.
이재명 재판 재개 요구는 오래됐다. 새로운 것은 7·9 대법원 판례 이후 그 요구를 둘러싼 법적 환경이 달라졌고 정치권이 다시 전면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7·9 판례 이후 쟁점은 단순히 재판 재개가 가능한지를 넘어 법원과 검찰이 달라진 법적 환경을 반영해 기존의 재판 중단 상태를 다시 판단할 것인지로 옮겨가고 있다.
조희대를 불러낸 범여권에 야권은 이재명으로 맞섰다. 여기에 시민사회와 법조계의 목소리까지 다시 맞물리면서 결국 질문은 법원과 검찰로 돌아가고 있다.
"새로운 대법원 판례가 나온 뒤에도 이재명 재판을 계속 중단할 것인가. 아니면 재개 여부를 다시 판단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