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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곤 칼럼] 공산전체주의 혁명의 쌍둥이: 5·18 성역화와 부정선거
  • 민병곤 정치다큐멘터리 작가
  • 등록 2026-08-22 16: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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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전남대학교 앞에서 군경과 학생들이 대치하고 있다. [흑백사진을 컬러로 바꿈]

올림픽공원에서 자발적으로 불붙은 부정선거 재선거 시민운동이, 늘 부정선거와는 거리를 뒀던 국민의힘 지도부와 장동혁 대표까지 끌어들이며 가열차게 전개되고 있다. 급기야 특검 출발이라는 결실을 낳았다. 이러한 가운데 국회에서는 이진숙 의원이 쏘아올린 5·18 성역화 논쟁이 정치권과 시민운동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부각되고 있다.

부정선거 투쟁에 집중해 온 보수·우파 일각에서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왜 하필 지금, 부정선거 투쟁의 화력을 집중해야 할 시기에 5·18 이슈로 전선을 분산시키느냐는 우려다. 모든 비극의 근원이 가짜 권력을 양산해 낸 부정선거에 있으니, 이 근본 고리부터 끊어야 모든 문제가 풀린다는 주장이다.

이는 절반의 진실이 만들어낸 착시다. 표면적으로 이 둘의 양상은 전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계속 별개로 보는 것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를 전복하려는 공산전체주의 혁명의 입장에서 본다면, 5·18 성역화와 부정선거는 결국 한 뿌리를 둔 ‘혁명의 쌍둥이’일 뿐이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 낮의 지킬 박사는 도덕적인 신사의 얼굴을 하고, 밤의 하이드는 음습한 본능을 발산한다. 그 둘의 모습은 정반대인 것 같지만 결국 ‘하나의 영혼’을 공유한다. 5·18 성역화와 좌파가 획책하는 부정선거는 또 다른 낮과 밤, '지킬과 하이드'의 관계와 닮아 있다.

성스러움으로 포장된 표현의 자유 억압, 성역화

낮의 지킬 박사처럼 5·18을 성역화하는 행태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문화적 헤게모니(Cultural Hegemony)’ 투쟁을 본뜬 도덕의 가면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학술적 검증이나 비판조차 법과 여론으로 봉쇄하는 순간, 역사학은 정치에 줄을 서고 표현의 자유는 사상적 검열에 갇히게 된다. 5·18 유공자 명단 공개 요구에는 ‘묻지마’식으로 입틀막하며 그에 대한 역사적 검증마저 회피하는 모습은 결코 민주주의가 아니다. 특정 성역을 신성불가침화하여 대중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사상 통제의 본질은, 김일성 세습 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창조된 북한의 '백두혈통' 우상화 구조와 본질적으로 궤를 같이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아래 대한민국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앞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인정하는 순간, 대한민국은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 사회라 할 수 없다.

올림픽공원. Ⓒ한미일보

부정선거 투표함, 이제 봉인을 풀어 진실을 밝혀라

밤의 하이드처럼 디지털 시대의 부정선거는 검증 불가능한 선거 시스템의 그늘 뒤에 숨고 있다. 대만식 수개표처럼 오직 ‘더하기’만 있으면 되는 선거제도의 사칙연산에 ‘사전투표 보정값’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개념이 등장한다.

비상식적인 사전투표와 본투표의 득표율 차이, 인쇄소에서 찍어낸 것으로 의심케 하는 ‘배추잎’ 투표지, 투표 현장에서는 발급될 수 없는 여백 불균형 투표지, 관리관 도장이 뭉개진 ‘일장기’ 투표지, 재검표 현장에 단골로 등장하는 신권 다발 투표지 등 수많은 부정한 증거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선관위와 정치권은 오직 ‘부실’은 있을지언정 ‘부정’은 없다고 못 박은 채 형식적인 검증만을 떠들고 있다.

과학철학자 칼 포퍼가 강조했듯, 민주적 정당성은 시민 개개인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반증할 수 있는 투명한 절차에서 나온다. 부정선거 의혹을 대하는 선관위와 정치권의 태도는 칼 포퍼의 명제와 정반대로 가고 있으며, 이미 민주주의의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했다. 이 부정한 토대 위에서 출범한 정권과 그들의 정책은, 역설적으로 자신들이 얼마나 반(反)자유민주적인가를 스스로 증명할 뿐이다. 이들이 다가가 구축하는 것은 공산전체주의의 그늘이며, 파괴하며 멀어지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빛이다.

화려한 수사 뒤에 숨은 뉴막시즘의 가면을 벗겨라

역사의 성역화가 이성을 마비시키는 ‘양지의 공작’이라면, 부정선거 획책은 민주적 정당성을 허무는 ‘음지의 공작’이다. 이는 결국 초기 공산주의 혁명 모델이 기술문명이 고도화되는 시대에 맞춤형으로 재탄생한 뉴막시즘(Neo-Marxism)의 혁명 패턴이다.

결국 5·18 성역화를 추진하는 세력과, 자유 우파 국가에서 부정선거를 통해 좌파 정권을 구축하려는 세력은 체제 전복을 목표로 움직이는 정확히 같은 세력이다. 한쪽에서는 역사적 성역을 내세워 정신적·사상적 진지를 점령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고도화된 기술 뒤에 숨어 민주주의의 핵심인 선거 절차와 주권을 해체해 나가는 방식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자유민주주의 시민이 자신의 주권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공산전체주의 기획자들이 사악해지는 것 이상으로 더 똑똑하고 냉철하게 그 본질을 파악하고 대처해야 한다. 우파 내부에서 "어느 전선이 더 우위인가"를 두고 분열하는 것은 기획자들이 가장 바라는 함정이다.

건국기 공산주의의 침탈 위기 앞에서 던졌던 이승만 대통령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경구가 그 어느 때보다 가슴을 울린다. 사상과 절차라는 양면 전선에 용기 있게 나선 정치권의 결단에 박수를 보내며, 우리 애국시민사회는 이미 체제를 수호할 준비가 되어 있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더하는 주마가편(走馬加鞭)의 심정으로 요구한다. 멈추어 서거나 주저하는 정치는 이 거대한 체제 전쟁의 시대를 감당할 수 없다. 지금 머뭇거리며 달리지 않는 말은 결국 목을 칠 수밖에 없다. 이제 제도권 정치권 전체가 아집과 분열을 넘어 시민사회와 손잡고 목숨을 건 강력한 투쟁의 대열에 함께 서라.

비록 작더라도 하나하나의 깨어있는 불꽃이 모일 때, 결국 시대를 밝히고 자유와 민주를 지켜낼 거대한 횃불이 될 것이다. 


◆ 민병곤 작가 

정치다큐멘터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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