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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곤 칼럼] 이번 설 명절 떡국상에 정치 한 그릇 올리자
  • 민병곤 작가
  • 등록 2026-01-05 15: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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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문제 종교와 달라… 성역화될 수 없어

정치는 공동체 안에서 자기의 생각을 말하고, 타인의 생각을 듣고, 함께 조율해가는 과정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둘러앉는 명절 밥상머리,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하지 말자”는 말이 어느새 뉴노멀이 되었다. 괜한 다툼 만들지 말고 조용히 넘어가자는 일종의 ‘암묵적 예절’로 굳어졌다. 이러한 새로운 예절을 아무런 의심 없이 너무 오래, 너무 깊게 내면화해왔다.


이제는 과연 그것이 맞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정치를 단순히 자리다툼으로만 본다면, 정치 이야기를 금기시하는 게 타당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를 공동체 안에서 자기의 생각을 말하고, 타인의 생각을 듣고, 함께 조율해가는 과정으로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정치의 학문적 카테고리가 철학과 외교 사이에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치란 서로 다른 생각이 갈등과 대화를 거쳐 공존의 해법을 찾아가는 실천 과정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터부시되는 대화 주제, 즉 ‘종교와 정치’를 같은 선상에 두지만 둘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종교는 검증이 아닌 최고 존엄에 대한 믿음의 영역이다. 서로 다른 신념은 충돌을 낳기 쉽다. 종교 문제는 ‘정반합’의 과정이라기보다 절대 상호 인정이 전제될 때 대화가 가능하다.


그러나 정치는 절대 존엄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여러 의견은 ‘정반합’의 과정을 거쳐 수렴되어야 하며, 또한 그때만이 정치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정치의 본질은 서로 다른 의견이 충돌을 넘어 공동체의 합의로 수렴되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정치 대화의 소재 중 ‘존엄’과 ‘성역’은 존재할 수 없다. 


대통령도, 부정선거도, 중공(중국공산당)도,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도 모두 대화의 테이블에 올릴 수 있다. 또한 어떤 주장은 독선과 아집이 아닌 성찰과 공부가 선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정치가 종교와 같은 존엄의 믿음으로 굳어지는 순간, 민주주의의 숨통은 끊어진다. 우리는 이미 검증 없는 맹신이 낳은 나치 전체주의와 마르크스-레닌 공산주의를 경험했다. 그들은 정치를 ‘권력 투쟁’으로 이해했고, 이는 모두 시민의 냉철한 판단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우리 헌법 제1조 제1항은 분명히 선언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이 짧은 문장 안에는 두 개의 분명한 약속이 담겨 있다. ‘민주’란 곧 국민이 주권을 가진다는 ‘목표와 권리’를 말하고, ‘공화’란 공동체가 함께 합의한다는 ‘절차와 의무’를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권리만을 요구했고 절차와 의무는 간과해 왔다.


정치 대화는 하지 말자는 것은 결국 공화의 의무를 포기하자는 권유다. 국방과 납세의 의무처럼 ‘공화’는 민주공화국의 국민에게 따르는 책무다. 


정치 화두를 꺼내는 사람을 향해 ‘이기적이고 시끄럽다’고 손가락질할 수 있지만 정작 중요한 건, 스스로 ‘나는 이 사회와 미래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고 말하는 주체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시작이다. 주권자가 정치를 말하지 않을 때, 정치는 독재자의 곁으로 간다. 


정치를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민주공화국의 시민이자 주권자다운 모습이다. 독재국가야말로 말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것이 정치 이야기다.


올해 떡국상에는 정치를 한 그릇 올리자. 좋은 술 예절을 집안 어른에게 배우듯, 좋은 정치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가정에서부터 잘 싹튼 ‘공화’의 문화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튼튼한 뿌리가 될 것이다.


정치다큐멘터리 작가 





◆ 민병곤 작가 


현) 정치다큐멘터리 작가 

현) 국민의힘 인천시당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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